영혼의 지질학: 다층적 지층으로 읽어내는 한국 종교의 연대기
한 지붕 아래의 부처와 예수
한국의 일상에서 종교는 물 흐르듯 아주 자연스럽게 섞여 돌아간다. 피 끓는 청춘들은 군대에서 주말마다 주어지는 달콤한 초코파이와 간식을 위해 교회, 성당, 절의 문턱을 거리낌 없이 번갈아 넘나든다. 한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도 어머니는 산사에 올라가 불공을 드리고, 아버지는 주일마다 교회 예배당 앞줄에 앉으며, 자녀는 그 어떤 신도 믿지 않는 무교의 삶을 살아가는 풍경이 한국 슬롯에서는 전혀 어색하지 않다. 부처님 오신 날이나 크리스마스가 되면 수녀님과 스님, 목사님이 한데 모여 합창을 하며 서로의 기념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국가적 재난이나 민주화 운동의 험난한 고비마다 종교계 지도자들이 앞장서서 시민들과 어깨를 걸고 스크럼을 짰던 끈끈한 연대의 역사는 전 세계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한국 특유의 다종교 공존을 상징하는 굳건한 표지판으로 기능한다.
통계를 살펴보면, 현재 한국 성인의 51퍼센트는 종교를 갖고 있지 않다. 반면 종교를 가진 49퍼센트의 인구를 구체적인 수치로 나누어 보면 개신교 20퍼센트, 불교 16퍼센트, 천주교 11퍼센트 순으로 교세 비율이 형성되어 있다. 한국은 특정 신앙을 가진 사람보다 비종교인이 확고한 과반을 차지하는 슬롯로 완전히 접어들었다. 특히 18세에서 29세 사이 청년층을 들여다보면 무려 72퍼센트가 탈종교를 선언하며 기성 종교에서 빠르게 이탈하고 있다.
최근 불교계는 디제이 파티와 불교 박람회를 결합해 MZ 세대에게 가장 힙한 문화 콘텐츠로 엄청난 호응을 얻었다. 승려 복장을 한 디제이가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 비트에 맞춰 불경을 외며 춤판을 벌이고, '번뇌 멈춰', '극락도 락(樂)이다' 같은 재치 있는 불교 밈이 적힌 굿즈들이 오픈런과 함께 순식간에 매진되는 등 엄숙주의를 완벽하게 벗어던진 파격적인 행보가 청년들의 폭발적인 열광을 불러일으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산사로 머리를 깎고 출가하는 청년 승려의 숫자는 해마다 가파르게 곤두박질친다. 한국의 모든 종교 대형 교단들은 유례없이 심각한 고령화와 존립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보이는 둥글둥글한 평화 아래, 각 종교 교단들은 세속화의 물결이 휘몰아치는 현대 슬롯 속에서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다시 증명해 내야 하는 아주 무거운 위기의 강을 건너는 중이다. 종교가 일상의 지배력을 잃어가는 탈종교화 현상은 전 세계적인 추세와 맞닿아 있지만, 한국은 그 변화의 속도가 유독 빠르고 급격하게 나타나고 있다.
권력을 베고 피어난 교리
지금 우리가 마시는 유연하고 관용적인 종교의 공존은 처음부터 평화롭게 주어졌던 축복은 아니다. 5천 년 한반도의 역사를 깊이 파고 들어가면, 종교와 정치 이념이 맹렬하게 부딪치며 뜨거운 피를 흘렸던 격렬한 단층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삼국시대와 고려 시대를 관통하며 국가 통합의 도구이자 막강한 경제력을 쥔 기득권 권력 집단으로 군림했던 불교는, 조선 건국과 함께 역사의 전면에서 철저히 밀려났다. 신진사대부들이 들고 온 성리학이라는 새롭고 합리적인 정치 철학은 부패한 불교 권력을 무섭게 배격했다. 그 과정에서 전국 수많은 사찰이 폐쇄되었고 승려들의 신분은 가장 낮은 계급으로 추락하는 구조적 탄압이 끈질기게 가해졌다.
갈등은 시대를 관통하며 거듭 반복되었다. 조선 후기 서양에서 들어온 천주교는 신분제의 철폐와 인간 평등을 주장하며 유교의 제사 문화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수만 명의 신자가 처형당하는 끔찍한 대학살의 박해를 온몸으로 견뎌야 했다. 부패한 지배 계층의 억압에 맞서 죽창을 들고 일어났던 19세기 말 동학 농민 운동 또한 민중의 굳건한 종교적 신념이 국가 권력에 의해 피투성이로 무너져 내린 비극적인 역사로 기록된다.
심지어 광복 이후에도 낡은 껍질을 깨기 위한 피바람은 매섭게 불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이 조선의 불교를 통제하기 위해 이식했던 대처승(아내를 두고 가정을 꾸린 불교 승려) 제도의 찌꺼기를 몰아내야 했다. 일본 불교는 메이지 유신 이후 승려의 결혼과 육식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세속화되었다. 일제는 조선을 강점한 후, 한국 불교를 통제하고 일본 불교에 동화시키기 위해 조선의 승려들에게도 결혼을 장려하며 대처승 제도를 본격적으로 도입했다.
그 결과 광복 직후에는 가정을 꾸린 대처승들이 한국 불교계의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 이후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고 독신 수행이라는 전통 불교의 맑은 정신을 되찾자는 비구승들의 반발이 커졌고, 이들이 주축이 되어 전통적인 청정 수행의 명맥과 사찰의 운영권을 되찾기 위해 불교계 내부에서 엄청난 물리적 폭력과 기나긴 법적 분쟁을 동반한 '불교 정화 운동'이 일어났다. 현재 한국 불교의 최대 종단인 대한불교조계종은 대처승을 인정하지 않고 오직 독신 출가자만을 승려로 받아들인다.
한국의 현대 종교 지형은 서로의 낡은 교리를 무참히 베어내고 상처를 아물게 하는 지난한 담금질 끝에 비로소 형태를 갖춘 결과물이다. 이러한 피투성이의 뼈아픈 역사는 역설적이게도 오늘날 서로 다른 신앙이 어떻게 존중하며 공존해야 하는지에 대한 값진 슬롯적 면역력을 제공하는 밑거름으로 작용했다.
8천 번의 생이 쌓인 마음의 지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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