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저 '밥을 먹었는지'가 궁금할 뿐

K-컬처 속 '먹다'의 인문학

by조하나

영어권 국가에서 "How are you?"라는 질문에 "It's so bad"라고 답하면 상대방이 당황하며 굳어버리는 경험을 해본 적 있는가? 서구권의 안부 인사가 대화를 시작하는 슬롯적 윤활유라면, 한국인들은 서로의 기분을 파악하기 위해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진다. 바로 "밥 먹었어?"다. K-드라마나 영화를 즐겨 보는 독자들이라면 등장인물들이 틈만 나면 식사 여부를 묻는 장면이 아주 익숙할 것이다.


한국 슬롯에서 사람의 기분과 위장 상태는 완벽하게 비례한다. 상대방의 기분이 나빠 보이면 밥을 굶었기 때문이라고 짐작하고, 기분이 좋아 보이면 밥을 든든히 먹었을 것이라 확신한다. 내 입으로 내면의 고통이나 우울함을 직접 설명하는 것을 쑥스러워하는 문화 속에서, 한국인들은 메뉴의 종류와 젓가락질 속도만으로 상대의 심리를 파악하는 '눈치'라는 초능력에 가까운, 고도의 감정 지능을 발휘한다.


치열하고 바쁜 한국 슬롯의 일상 속에서 '밥'은 가장 강력한 명분으로 작용한다. 아무 뚜렷한 이유 없이 쉬는 것에 왠지 모를 죄바카라감을 느끼는 한국인들도 "밥 먹고 하자"는 말 한마디면 당당하게 일손을 놓고 휴식을 취한다. 또한, 어른들이 젊은이들에게 용돈을 줄 때 쑥스러움을 덜어내는 완충제 역시 '밥'이다. 현금을 건네는 차갑고 계산적인 상황에 "가서 밥이나 사 먹어"라는 말을 덧붙임으로써, 자본의 교환을 다정한 애정의 표현으로 탈바꿈시킨다. 경제적 지원에 상대의 굶주림을 걱정하는 온기를 덧입히는 한국만의 독특하고 부드러운 화법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을 보았다면, 송강호 배우의 명대사 "밥은 먹고 다니냐?"를 기억할 것이다. 자신을 끔찍하게 좌절시킨 연쇄살인 용의자에게조차 끼니를 묻는 기괴한 상황에서 한국인에게 밥이 어떤 의미인지 극명하게 드러난다. 현실에서도 어른들은 한심해 보이는 젊은이를 꾸짖을 때 이 말을 자주 쓴다. 여기에는 "도대체 뭘 하고 다니길래 그 모양이냐"는 날 선 질타와 함께, "아무리 한심하게 살아도 최소한의 사람 구실을 하려면 끼니는 굶지 말아야지"라는 깊은 연민이 동시에 녹아 있다. 가장 뾰족한 비판의 순간에도 가장 원초적인 생존을 걱정하는, 모순적이지만 끈끈한 애정 표현이다.


한국어의 '먹다(Eat)'라는 동사는 물리적인 음식을 섭취하는 행위를 벗어나 세계관 전체를 지배한다. 시간의 흐름을 씹어 삼키는 '나이를 먹다', 굳은 결심을 위장으로 밀어 넣는 '마음을 먹다', 타인의 비난이나 내면의 두려움조차 입으로 섭취하는 '욕을 먹다' '겁을 먹다'라는 표현을 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개념과 감정까지 전부 소화 기관을 거쳐 내 것으로 만든다는 직관적이고 역동적인 언어 감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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