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의 위선과 아시아의 딜레마, 그리고 상처받은 이방인들
지중해의 험난한 파도 위를 위태롭게 떠도는 낡은 고무보트들, 그리고 견고하게 솟아오른 국경의 철바카라 앞에서 어린아이를 안고 절망하는 낯선 얼굴들. 세계 곳곳에서 매일같이 들려오는 난민들의 비극적인 소식을 접할 때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가슴 한편이 먹먹하다.
미국과 유럽의 여러 선진국은 카메라 앞에서 아주 도덕적인 얼굴을 한 채 이렇게 묻곤 한다.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한 한국과 일본, 중국 같은 아시아 국가들은 왜 난민 수용에 앞장서지 않냐고. 하지만 그 질문의 방향은 시작점부터 완전히 어긋났다. 우리는 변방의 국가들에게 왜 이주민을 받지 않느냐고 추궁하기 전에 과연 누가 저 평범했던 사람들을 따뜻한 고향에서 무참히 쫓아냈는지 그 근원적인 바카라임을 먼저 따져 물어야 마땅하다.
가까운 2026년 봄의 참상만 보아도 진실은 명확해진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무리한 군사 개입과 멈추지 않는 폭주로 인해 중동의 화약고는 걷잡을 수 없이 터져버렸다. 그 결과 레바논에서는 전체 인구의 상당수인 100만 명 이상이, 이란에서는 무려 320만 명이라는 거대한 인구가 하루아침에 지붕을 잃고 길거리로 나앉았다. 평범하게 밥을 먹고 일상을 나누던 이웃들이 순식간에 폭격을 피해 국경을 넘는 디아스포라의 행렬에 섞여들었다. 이 참혹한 생존의 위기는 자연재해나 우연한 비극의 결과가 아니라 거대한 무력과 자본을 쥔 국가들의 탐욕이 만들어낸 인위적인 재난에 가깝다.
제국의 카르마와 벌거벗겨진 생명들
오늘날 중동과 아프리카, 그리고 수많은 분쟁 지역에서 빚어지는 유혈 사태의 뿌리를 깊이 거슬러 올라가면 어김없이 과거 제국주의 열강들의 거대한 폭력과 마주하게 된다. 식민지를 지배하던 열강들은 그 땅에서 수천 년을 살아온 사람들의 고유한 문화나 종교, 민족적 배경을 철저히 무시한 채 오로지 자신들의 행정적 편의와 자원 수탈을 목적으로 국경선을 그었다.
먼 이국땅으로 시선을 돌릴 필요도 없이, 당장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한반도야말로 그 폭력적인 분할의 흉터가 가장 깊고 선명하게 남아있는 공간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전승국들의 지정학적 이해관계에 따라 허리춤에 억지로 그어진 선 하나는 수천 년을 함께한 민족을 남과 북으로 갈라놓았고, 수백만 명의 실향민과 이산가족이라는 우리만의 아픈 디아스포라를 낳았다. 그렇게 자의적으로 분할된 땅 위에서 사람들은 억지로 적이 되어 싸워야 했고, 강대국들은 물리적 지배가 끝난 오늘날까지도 지정학적 이권을 챙기기 위해 끊임없이 대리전을 부추기며 첨단 무기를 팔아넘기고 있다.
이탈리아의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은 법과 제도의 테두리 밖으로 밀려나 그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하고 생물학적인 숨결만 남은 가여운 존재들을 가리켜 '호모 사케르'라고 명명했다. 텐트 하나에 의지해 혹독한 추위를 견디는 난민들은 원래는 국가 안에서 온전한 정치적 권리를 누리며 살아가던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그러나 제국주의의 폭력은 이들을 그저 하루하루 목숨을 부지하는 데 급급한 벌거벗은 생명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참으로 역설적인 사실은, 열강들이 외부로 뿜어냈던 폭력의 파편들이 이제는 디아스포라라는 이름이 되어 다시 제국의 심장부를 향해 맹렬하게 역류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럽연합은 첫 입국 국가에서 난민 심사를 강제하는 '더블린 조약' 같은 기만적인 방파제를 쌓아 올렸다. 더블린 조약은 난민이 유럽 영토에 첫발을 디딘 국가에서 의무적으로 지문을 등록하고 망명 심사를 받도록 규정한 원칙을 뜻한다. 겉보기에는 체계적인 난민 관리 규정 같지만, 실질적으로는 지리적 특성상 지중해와 맞닿아 있는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등 남유럽 외곽 국가들에게 막대한 수용 비용과 정치적 부담을 고스란히 떠넘기는 제도다. 부유한 서유럽과 북유럽의 중심부 국가들이 자기 앞마당으로 이주민이 직접 밀려드는 상황을 차단하기 위해 세워둔 위선적인 장벽과 다름없다. 하지만 이 견고한 장벽조차도 일자리와 최소한의 인권을 찾아 서유럽과 북유럽으로 향하는 생존자들의 처절한 발걸음을 끝내 막아내지 못하고 있다. 제국주의 국가들에게 과거 자신들이 피워 올린 파괴의 불씨가 결국 스스로를 태우는 거대한 불길이 되어 돌아오는 현상은 역사적 카르마의 발현이다.
오리엔탈리즘의 오만과 변방의 치열한 생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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