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향한 늦은 반성문

by조하나

10년의 방황 끝에 마주한 나의 진짜 이름


지난 10년, 나는 치열한 경쟁과 획일적인 정답만을 강요하는 듯한 한국의 슬롯적 압박감을 견디지 못해 도망치듯 고국을 떠났다. 나를 옥죄는 모든 것들로부터 최대한 멀어지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된 타국 생활이 10년이나 이어졌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낯선 이국 땅에서 'Korea'라는 이름이 갖는 무게감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을 생생히 목격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해외에서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열 중 아홉은 "남한이냐, 북한이냐"를 먼저 물었고, "김정은을 잘 아느냐"며 조롱 섞인 농담의 소재로 삼기 일쑤였다. 하지만 세계 지도 한구석의 분단국가에 머물던 얄팍한 인식은 어느덧 전 세계인의 강렬한 호기심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뀌어 있었다.


도망치듯 떠나는 길이었지만, 내 짐가방 속에는 한국어 교사 자격증이 들어 있었다. 언어는 곧 사유의 집을 짓는 기초이고, 그 안에는 한 민족의 정서와 문화, 고유한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 특유의 끈질긴 기질과 복잡다단한 마음의 결을 가장 완벽하게 담아내는 그릇인 '한국어'와 '한글'을 가졌다는 사실은 타지에서 나를 버티게 하는 단단한 자부심이었다. 오늘날 전 세계 대학과 세종학당에서 한국어 학습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현상은, 우리의 고유한 사유 방식이 세계인과 매력적으로 교감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내가 땀 흘려 이룬 성취가 아님에도, 훌쩍 높아진 조국의 위상은 타국에 머무는 나의 일상을 거대한 우산처럼 조용히, 그리고 강력하게 지탱해 주었다. 그때 나는 밀려오는 부끄러움 속에서, 조국을 외면하려 했던 나 자신이 실은 누구보다 한국을 사랑하고 긍지를 느끼는 뼛속 깊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까이 있을 때는 숨 막히는 단점만 보이더니, 10년의 물리적 거리를 두고 나서야 비로소 한국이라는 나라가 가진 거대한 저력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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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생적 한계를 뒤집은 독보적인 생존 방식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한국의 기적 같은 성취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다시 바라본다. 한국은 인구가 적고 영토도 작다. 그마저도 대부분이 험준한 산지이며, 천연자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척박한 땅이다. 스위스나 대만 같은 여타 강소국들은 이런 악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금융이나 특정 IT 부품 등 하나의 특화된 산업에 집중하는 전략을 택했다. 하지만 한국은 대단히 예외적인 길을 개척했다. 자본도 자원도 없는 텅 빈 상태에서 철강, 조선, 석유화학, 자동차 등 막대한 인프라가 필요한 거대한 중화학 공업을 세계 최정상으로 키워냈다.


과거의 영광에 머물지 않고, 오늘날 한국은 인공지능, 첨단 반도체, 2차 전지 등 미래 핵심 산업의 글로벌 공급망을 주도하는 경제 강국으로 진화했다. 국방력 또한 세계 5위권의 강력한 종합 군사력을 갖추고, 독자적인 첨단 무기 체계를 전 세계 주요국에 수출하는 방산 강국으로 우뚝 섰다. 자본과 기술이 전무했던 전쟁의 폐허에서 출발해, 이제는 독자적인 발사체와 달 탐사선을 우주로 쏘아 올리며 세계 7대 우주 강국의 반열에 올랐다.


일상의 인프라 역시 경이로운 수준을 자랑한다. 70%를 웃도는 OECD 최고 수준의 청년층 고등교육 이수율과 1% 미만의 기계적 문맹률을 바탕으로 압도적인 IT 인프라와 전자정부 시스템을 구축했다. 특히 전 국민을 포괄하는 국민건강보험 제도는 전 세계 어디와 비교해도 탁월하며, 누구나 적은 비용으로 가장 빠르고 질 높은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든든한 슬롯적 안전망 역할을 수행한다. 전국 어디서나 터치 몇 번으로 행정 업무를 처리하고, 24시간 빠르고 안전한 물류와 치안 서비스를 누린다. 스크린도어 설치율 100%에 달하는 철저한 안전 시스템과 쾌적한 환경을 갖춘 대중교통망은 전 세계 여행객들의 찬사를 받는다. 여기에 더해 과거 압축 성장기의 상징이었던 장시간 노동 관행에서 벗어나, 이제는 주 4일제 도입 논의와 유연근무제가 활발히 이루어지며 일과 삶의 균형을 적극적으로 찾아가는 성숙한 슬롯적 변화까지 일구어내고 있다.


그와 동시에 전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대중문화 생태계까지 완벽하게 구축했다. K팝과 한식 등 강력한 문화적 소프트파워로 글로벌 트렌드를 선도하며, 독립 영화부터 스트리밍 시리즈까지 아카데미상과 에미상을 석권하고, 노벨문학상 수상 등 기초 예술 분야에서도 글로벌 스탠다드를 제시하고 있다. 가장 무거운 제조업과 최첨단 과학기술, 그리고 가장 유연한 문화 예술 산업을 모두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이끌어낸 동력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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