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내리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집을 나섰을 때는 내리지 않던 비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내리기 시작했고 이내 쏟아붓듯이 거세졌다. 그 빗속을 걸었다면 옷이 다 젖었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간사한지라 카페 안에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리는 비를 구경하는 마음이 더할 나위 없이 느긋하다.
평일 오전 10시. 카페 안에는 손님이 한 명도 없다. 더군다나 이 비를 뚫고 커피를 사러 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가 카페에 머문 두 시간 동안, 손님은 한 명뿐이었다. 그는 테이크아웃으로 주문한 커피를 받아 들고 바로 나갔고 카페 안에는 주인과 나 둘뿐이다.
그와 나는 이제 두 시간 정도 그림을 그릴 예정이다. 나는 오일파스텔을 사용하고 주인은 펜으로 그린 후, 수채물감으로 색을 칠할 것이다. 미리 출력한 이미지를 보며 오늘 그릴 그림을 골랐다.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 잔물결이 일렁이는 바다, 초록색 풀이 이어진 언덕에 핀 꽃을 그릴 것이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를 고민하다가 하늘을 좀 더 넓게 그리기로 결정했다. 언덕에는 꽃을 잔뜩 그려야지. 풀밭이 아니라 꽃밭을 그려야지.
하늘과 구름과 바다 그리고 꽃의 색을 고르고 채워가며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번째 만나는 우리는 지난번에 이어 대화를 이어가니 서로에 대해 점점 아는 것이 늘어간다. 사는 곳이 어디인지, 살던 곳이 어디인지, 엄마가 사는 곳이 어디인지, 대학에서 무엇을 전공했고, 어떤 일들을 하며 살아왔는지. 그리고 그림에 대한 애정과 찬사.
아니다, 실은 우리는 오늘 세 번째로 만났다. 첫 만남의 인연이 이어져서 오늘 세 번째로 만나 그녀의 카페에서 그림을 같이 그리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72색 오일파스텔 세트가 두 개 생겼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포함하니 무려 세 개가 있는데, 이걸 평생 써도 다 못 쓸 것 같았다. 그래서 그중 하나를 당근에 판매하기로 했다. 오일파스텔 판매글을 작성하며 제품 사진을 상세히 찍어 첨부했는데, 그동안 내가 그린 그림 몇 개를 자랑하려고 같이 올렸다. 내가 그린 그림도 봐 달라며. 글을 올리고 바로 구매자가 나타났다. 집 앞으로 오겠다는 구매자를 만났는데, 물건을 주고받은 후 바로 떠나지 않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림을 잘 그렸다는 칭찬에 이미 마음이 확 열린 상태였다.
그녀는 내가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나중에 걸어보니, 십 분쯤 걸렸다. 카페를 하며 붐비지 않는 시간에 혼자 그림을 그렸는데, 모임을 만들어 여럿이서 같이 그려보면 어떨까,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모임을 열기 전, 그리기 재료들을 모으는 중이라고. 그날도 색연필 세트를 구입했고, 내게서 오일파스텔을 구입하려고 왔던 것. 재료를 어느 정도 모으면 모임을 열 거라는 그녀에게 참석하고 싶으니 꼭 알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이 주쯤 지난 뒤 그림 그리기 모임이 시작되었다.
주문한 커피는 옆으로 밀쳐두고 집중했던 두 시간. 예쁜 색으로 채워진 풍경이 완성되었다. 비에 젖지 않도록 잘 포장해서 가져온 바다 풍경은 냉장고 앞에 붙여두고 오며 가며 바라본다.
장맛비가 며칠째 계속되는 어떤 날, 밖으로 나갈까 집에 머물까 두 가지 중에 선택할 수 있었다. 집에 있는 나는 분주했을 것이다. 몸이거나 또는 마음이. 미뤄두었던 일들이 쌓여있으니 종일 그 일들을 처리하며 시간을 보냈을 수도 있고, 또는 가만히 앉아서 내가 아주 잘하는 생각이라는 것을 했겠지. 그것도 아주 과도하게. 당연하게도 그건 대부분 부정적인 생각일 것이 분명하고.
밖으로 나가기를 선택한 덕분에 내가 얻은 것은 낭만이다.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실내에는 낮게 틀어놓은 음악과 커피, 탁자 위에는 흰 도화지와 알록달록한 오일파스텔. 이어졌다 끊어졌다를 반복했던 대화와 작은 웃음소리들. 완성된 풍경 하나. 오늘의 밖으로 나가 놀기 성공적. 오늘의 낭만도 성공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