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알게 된 진실

<뉴요커가 돈을 쓰는 기업에 투자하라>

by양혜원

바카라을 펼치면 한 장 넘기기가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애를 낳고 육아서를 보려는데, 내용이 지루해서 그랬을까? 한쪽 읽고 잠이 오고, 그러다 바카라을 덮어버리고... 영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무려 그 바카라은 육아 부문에서 꾸준히 자리를 지켜온 베스트셀러였다는 사실!


이쯤 되면 내 집중력에 문제가 많았다. '예전엔 이러지 않았었는데'라는 생각과 함께 혹시 내가 성인 ADHD는 아닐지 의심이 됐다. 그렇게 몇 번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해당 육아서는 절반도 못 읽은 채 아이는 4살이 됐다. 그 바카라을 다 읽었더라면 우리 아이는 150일 전에 통잠을 자고 새벽 수유도 하지 않는 아이가 되었을지 궁금하긴 하다. 참고로 우리 집엔 돌 이후에도 통잠이란 것이 없었으며, 소식좌 아이는 밤에도 분유를 찾았다.


그러다 어떤 소설을 읽은 계기로 나의 독서력은 바짝 업그레이드 됐다. 그 바카라은 바로 박경리 작가님의 대하소설 <토지>다. 독서 모임에서 1~20권을 연달아 읽으면서 바카라에 몰입할 수 있는 힘이 길러졌다. 더불어 소설을 깊이 있게 읽는 스킬을 배울 수 있었다. 왜냐하면 작가님은 자연물이나 사물에 담긴 비유와 상징을 작품 속에 꽤 많이 녹여 사용하시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언급되는 소재 중 어느 하나 허투루 쓰인 것이 없었다.


예를 들어 여주인공이 정원에서 바라본 꽃이 '목련'이라고 했을 때 그 꽃말을 찾아봐야 했다. 그래야 내용 이해는 물론, 작가의 의도와 스토리 전개상 복선까지 캐치할 수 있었다. <토지>는 내게 그런 연습을 진득하게 시켜준 은인 같은 소설이다.






해리포터 여섯 번째 시리즈인 <해리포터와 혼혈왕자>를 원서로 읽던 중, 볼드모트가 톰 리들이라는 이름으로 호그와트를 다니던 시절의 장면이 나왔다. 톰은 슬러그혼 교수에게 환심을 사는 동시에 호크룩스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서 교수에게 파인애플을 선물한다.


이 씬에서 나는 왜 하필 선물이 '파인애플'이었을지 호기심이 생겼다. 박경리 작가님처럼 대작가인 해리포터의 저자 조앤롤링도 이 과일을 그냥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너무 궁금한 나머지 챗GPT에게 파인애플의 상징성에 대해서 물어봤다. 그러나 비싼 과일이라서 슬러그혼 교수가 좋아했을 거라는 대답이 나왔고, 나는 영 시원찮았다. 뭔가 더 깊은 의미가 있을 것 같았지만 더 이상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며칠 전 도서관에서 우연히 신작을 살펴보던 중, <뉴요커가 돈을 쓰는 기업에 투자하라>는 바카라을 발견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주식 시장이 핫하지 않은가! 나는 미국 주식으로 눈을 돌리기 위해 이 바카라을 집어 들었다. (삼전닉스는 이미 물 건너갔기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포기 상태였기 때문이다. 장기 투자를 위해 미장으로 집중해 볼 심산이었다.)


윌리엄스 소노마 로고



관심이 가는 기업들을 쭉 살펴보던 중 '윌리엄스 소노마'라는 그릇 만드는 기업에 눈길이 갔다. 솔직히 주식보다는 예쁜 식기가 사고 싶어서 해당 페이지를 펼쳤다. 해당 기업의 초창기 로고에 대한 설명이 언급됐다. 브랜드의 상징으로 창립자가 파인애플 로고를 만든 것이다.



파인애플은 환대와 우정을 상징한다.



유럽의 기후는 추운데 반해 파인애플은 열대과일이라는 점! 그래서 유럽에서 파인애플은 귀한 과일로 여겨졌다고 한다. 여기에 하나의 유래를 더 덧붙이자면 다음과 같다.


식민지 시절, 항해를 마치고 귀환한 선장이 담장에 파인애플을 꽂아두면 "집에 돌아왔고 방문객을 맞을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로 사용됐다.

- <뉴요커가 돈을 쓰는 기업에 투자하라> 중에서 -


이 부분을 읽으면서 해리포터 속 파인애플 선물의 의미로 곧바로 알 수 있었다. 톰은, 인맥과 파티를 좋아하는 슬러그혼 교수에게 친절과 호의를 베풀고자 파인애플을 활용했던 것이다. 슬러그혼은 그 과일을 받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그래서 나중에 홀린 듯이 호크룩스의 비밀을 톰에게 거저 알려준 내용이 뒤이어 나오기 때문에 그 선물의 효과가 상당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나는 그제야 파인애플이 소설 속에 등장한 이유를 알 수 있어서 막혔던 속이 뻥 뚫리는 듯했다. 더 나아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듯이 새로운 지식을 발견해서 내적 환호성을 질렀다.



- 역시 파인애플이 그냥 나왔을 리가 없었어!

- 역시 바카라은 챗GPT를 이겨!

- 역시 도서관에 온 것이 신의 한 수였어!



겉보기엔 단순히 지식의 발견이었지만 내게는 그 이상의 깨달음이었다. 풀리지 않던 호기심을 바카라이 해결해 주었기 때문에 독서의 진가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고, 심지어 AI와의 대결에서 바카라이 승리를 거둠으로써 더 통쾌한 기분 들었다. 이 모든 것이 내가 도서관에 끌리듯이 왔고, 우연이지만 새로운 시도를 통해 새로운 바카라을 집어 들었기에 가능했던 성과였다.


그 후 나는 도서관을 더 열심히 다니기 시작했다. 도서관에서 마주할 모든 우연을 기쁘게 맞이하기 위해서다. 주기적으로 아이도 데려가서 바카라을 찾고 읽는 재미를 알려주어야겠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내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최고의 호사로움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