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인생이라는 건축 #07
글을 쓰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알쓸신잡에서 유시민이 토론을 하다 보면 근거를 꼭 세 가지 드는 것이 어째서인지 끌린다고 했던 것 같다. 정준하처럼 두 개는 너무 적고 네 개는 너무 많았던 것일까. 오늘 글감으로 소개받은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은 아직 읽어보지 않았으니 일단 TV에서 배운 대로 내가 글을 쓰는 이유를 세 가지 정도 들어보자. 여기서는 다른 글쓰기 활동보다도 특히 하루 10분 생각하는 글쓰기를 하고 있는 이유, 하게 된 계기 등의 내용이 될 것이다.
첫째로 나는 타고난 이야기꾼이 아니다.
어깨를 툭 치면 평소에 자신에게 있었던 일이나 생각하고 있는 것을 입에서 줄줄이 콩떡처럼 쏟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습관에서 발전된 재능인지는 모르지만 그들의 타고난 듯한 능력이 부러울 때가 많다. 사실 일상생활에서의 말솜씨와 순발력으로 이룰 수 있는 것들이 참 많다고 느낀다. 나는 그것에 뛰어난 편이 아니기에 다른 재능을 훈련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좋아하는 뮤지션의 음악 수업을 듣게 되었을 때 기억나는 내용 중 하나는 만약 그분이 제이슨 므라즈 정도의 가창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자신은 전자음악 작곡가가 되지 않았으리라는 것이었다. 내가 말하는 인간이었다면 글쓰기에 애정을 갖고 임하지 않았으리라. 나는 무언가 생산하는 것에 대한 교육을 받았고 생산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한 인간은 입력(읽기, 듣기, 경험 등)이 있으면 그것을 언젠가는 출력해야 한다. 그것이 늦어지면 활동 에너지가 되지 못하고 속된 말로 똥 된다. 출력하는 인간이 되자. 타고난 이야기꾼은 못 되니 내 이야기를 가다듬는 시간을 들일 수 있는 글쓰기가 좋겠다. 그렇게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둘째로 사고가 무뎌지는 것을 방지하고자 한다.
나이가 들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일상에서 사고의 내용이 반복되고 가벼워져 깊이 있는 사고를 하지 못하고 있다. 바카라을 읽거나 회사 업무 외의 정보를 얻는 일도 적어지다 보니 사고의 범주도 좁아지고 있다고 느낀다. 매일 생각해 볼 거리를 제공받아 거기에 대한 글을 쓰게 되면 어떤 수준이든 간에 그 분야에 관한 나의 의견을 매일 준비해야 한다. 어떤 사안에 대해 의견을 준비한다는 것은 나의 성향을 이해해가는 과정이다. 나를 더 이해해야 나를 더 잘 활용할 수 있게 된다. 내가 가지고 있는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방식을 재정비하는 시간이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글 쓰는 근육을 키우고자 한다.
한 달 반이 되어가는 글쓰기 프립을 통해 매일의 단련이 없이는 글쓰기에 익숙해지기 어렵겠다는 것을 체감한다. 어디서 주워들은 표현이겠지만 글쓰기도 단련이어서 마치 근육을 기르는 것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 글을 쓰기에 앞서 먼저 간단히 하고 싶은 이야기의 골조를 잡는 습관, 글의 분량을 생각하고 거기에 걸릴 시간을 예상하는 능력, 짧은 틈틈이 시간 안에 글쓰기에 다시 몰두해서 쓰던 글을 이어나가는 집중력 등이 발전하고 있다. 무언가를 생산하는 사람으로서 그 결과를 남들에게 보여주고 설득시키기 위해서 글은 거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한정된 시간 안에서 집약적으로 설득하는 글쓰기를 완수하고 생산에 더 많은 시간을 기울일 수 있게 된다면 이 또한 근육 기르기의 목적이 될 수 있겠다. 따라서 쓴 글을 남들에게 보여주는 과정 또한 글의 설득력을 평가받는 기회가 되기에 도움이 된다.
다시 생각해 본 세 가지 이유
5년 전, 하루 10분(이라고 적고 반나절을 꼬박 고민하던)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유시민 작가가 말했던 '세 가지 이유'의 유용함을 빌려왔다. 그때 꼽았던 세 가지는 타고난 이야기꾼이 아닌 내가 나를 표현하기 위한 출력 도구라는 점, 무뎌지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함이라는 점, 그리고 남을 설득하기 위한 글쓰기 근육을 기르기 위해서라는 실용적인 목적이었다. 그사이 5년이 흘렀고, 그 글들에 매일 글을 얹어두는 내 마음의 결도 조금씩 달라졌다. 여전히 나는 근육을 기르듯 글을 쓰지만, 지금 내가 글을 써 내려가는 세 가지 이유는 그때와는 조금 달라졌다.
첫째, 글은 나라는 존재를 타인에게 건네는 가장 저렴하고도 밀도 높은 방식이다. 말솜씨와 순발력이 부족한 대신 생각을 가다듬는 출력을 선택했던 과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셈이다. 나를 표현하고 세상에 건네는 글을 쓰는 데에는 거창한 장비나 화려한 조건이 필요 없다. 펜 한 자루 또는 노트북 한 대면 족하다. 게다가 글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대체로 은근히 높이 평가해 주곤 한다. 바카라을 읽으면 좌파된다고 못 읽게 하기까지 하는 세상이라지만, 여전히 글을 쓰는 능력만큼은 세상의 인정을 받는 일 중 하나다. 내 세계의 가장 깊은 레이어와 미세한 감정의 온도를 타인에게 정직하게 전달하고 연결되는 데에 글만큼 효율적이면서 소란하지 않은 매개도 없다.
둘째, 잘하는 게 별로 없다고 느껴질 때 나를 지켜주는 자존감이 되어준다. 살아가다 보면 세상의 비약적인 속도와 뛰어난 사람들 사이에서 문득 스스로가 아득히 초라해지는 순간을 마주한다. 그럴 때 의외로 '나는 글을 쓸 줄 안다'는 사실 하나가 단단한 척추가 되어 나를 세워준다. 정작 글을 쓰는 찰나에는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는 실감이 나지 않지만 말이다. 결국 글을 쓸 줄 안다는 것은 나만의 방식으로 깊게 생각할 줄 안다는 뜻이고, 그 생각의 힘이야말로 기획이든 설계든 마케팅이든 삶의 수많은 판을 짜는 모든 본질적인 능력의 뿌리가 되어준다.
마지막으로, 글쓰기는 흩어진 내 존재의 주도권을 되찾는 정직한 정리정돈의 시간이다. 각잡고 깊고 길게 회고하는 셈이다. 남을 설득하고 결과를 증명하기 위한 훈련의 차원을 넘어서자, 복잡한 업무와 세상살이 속에서 나를 바로 세우는 일과 마주섰다. 일상에서 무수한 역할과 타인의 기대에 치이다 보면 내 에너지는 허공으로 산산이 흩어지기 일쑤다. 매일 10분이라도 앉아 나라는 존재와 면담하는 시간을 가질 때, 오늘 나를 스쳐 간 감각과 아이디어들은 비로소 허공으로 날아가지 않고 내 언어로 묶여 포획된다. 내가 가진 어휘로 오늘 하루를 다시 재정의하는 그 비움과 정돈의 과정을 거치며, 나는 비로소 내 삶의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게 된다.
5년 전의 내가 남에게 보여주고 설득하기 위한 '광고'로서의 글을 훈련하면서 썼다면, 지금의 나는 나 자신으로 온전히 서기 위한 '실존'의 차원에서 글을 쓴다. 이렇게 오늘도 나는 사람들이 그다지 읽어주지 않을 글을 나 자신을 위해 열심히 써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