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블로프의 개

B. 마음이 머무는 곳들 #07

by우드노트
기억에 남는 여름휴가지가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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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다는 건 일종의 강한 자극이다. 온몸의 세포들을 끊임없이 활동하여 더위에 대응하도록 자극한다. 웬만한 다른 자극으로는 더위가 주는 자극을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찾게 된다. 베트남 도시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코끝을 찌르는 강한 향신료 냄새와 맛, 호텔 창문을 뚫고 들어오던 시끄러운 클럽 음악 소리 같은 것들이 더위를 이겨내기 위한 그들의 발버둥처럼 느껴졌었다. 더위라는 일상을 견디기 위해 우리는 비일상적인 자극을 찾는다.


여행, 휴양이라는 것은 언제나 달콤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날씨가 더워지면 팍팍한 일상에 더위라는 자극이 더해지니 비일상에 대한 환상이 더 커져만 간다. 여행지가 줄 수 있는 자극으로서 가장 극단적인 것은 역시 바다다. 물에 몸을 온통 담그고 끝을 알 수 없는 곳을 바라보며 헤엄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자극적인가. 집 밖을 나서자마자 사우나에 온 것 같은 상태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요즘 같은 날씨에 감히 대응할만한 자극은 온몸을 더운 공기가 아닌 시원한 물에 담그는 행위 말고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바다에서의 휴양은 또한 스펙터클로서의 자극으로 우리 시각을 자극한다. 무더운 날 에어컨 빵빵한 카페나 숙소에서 통창을 통해 바라보는 철썩임,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은 사물과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도시인의 맥시멀리즘 풍경에 미니멀리즘으로 반박한다. 바다가 주는 시각적 스펙터클은 바다와 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듯한 착각으로부터 비롯된다. 그 옛날 잘 그려진 그림이 그 자체로 무지한 자들에게 정보를 주었듯이, 그 단순 명료한 형태에 추울 정도의 에어컨 냉기가 곁들여지면 바다는 시각과 촉각의 공감각적 정보로서 하나의 시원함이 된다. 예전 강릉에서 통창으로 바다를 바라보며 물회를 먹었을 때, 나중에 사무실을 차린다면 강릉 바다가 라이브로 생중계되는 빔 프로젝터 벽을 하나 둬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실제로 몇 년 전 카이센동을 전문으로 하는 매장에서는 한 쪽 벽면에 바다 영상을 틀어놓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는 그 벽을 보고 물회에 떠있는 살얼음의 냉기를 파블로프의 개처럼 연상하게 된다.


글을 쓰는 동안 줄곧 땀을 뻘뻘 흘리며 바다를 상상한다. 다음 주에는 포항으로 여행 간다. 다소 기억력이 나쁜 파블로프의 개가 되어가고 있다. 무뎌져가는 시각 촉각 정보 말고 어서 온몸으로 바다를 느끼고 싶다.








거실에서 맞이한 여름


여전히 바다가 좋다. 파도를 잡지도 못하고 늘 넘어지기만 했던 서핑도 이제는 조금이지만 감을 잡아가는 중이다.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며 마음속 잡념을 하얗게 비워내는 바다의 스펙터클은 여전히 거부하기 힘든 매력을 지녔다. 올해도 그래서 동해 묵호항으로 향했다.


건축 도면 작업에 파묻혀 살던 내게 여행지에서 일을 한다는 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모니터 몇 대와 도면이 널린 사무실을 벗어나면 작업 자체가 불가능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내가 하는 일은 맥북 한 대만 들고 있으면 어디서든 이어갈 수 있다. 이번 동해 여행에도 가방에 맥북을 챙겨 떠났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테이블에 앉아 일과 휴가의 경계를 슬그머니 허물어보는 '워케이션'을 경험하며 괜히 마음이 들뜨기도 했다.


이번 동해에서는 뜻밖의 수렵채집생활에 열을 올렸다. 해수욕장 물속 바닥을 발가락으로 훔치다 보면 살아있는 조개들이 덜컥거리며 잡혔다. 동반자와 둘이서 목욕탕 물 바구니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조개를 주워 담았다. (바르게 해감하는 법을 미리 찾아보지 않은 탓에 맹물에 넣어두었다가 모조리 익사시키고 말았지만.) 바다라는 거대한 자연은 자체 콘텐츠가 어찌나 이리도 많은지. 파도타기나 시원한 물회 말고도 참 무궁무진하구나 싶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온 뒤에 진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긴 일주일의 일과를 마치고 돌아온 주말, 거실에 들인 우드슬랩 바카라상에 앉아 있다 문득 묘한 나른함이 밀려왔다. 창밖으로는 구축 아파트 단지 안을 빽빽하게 채운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무가 짙은 초록을 흩날리며 살랑거리고 있었고, 울려 퍼지는 매미 소리와 함께 여름 특유의 묵직하고 따스한 온도가 거실 안으로 밀려들었다. 굳이 멀리 떠나지 않아도, 땀을 뻘뻘 흘리며 자극적인 풍경을 찾아 헤매지 않아도 괜찮았다. 가만히 앉아 여름이라는 계절이 품은 시간과 날씨, 빛의 기울기, 바람의 움직임, 그리고 흙과 풀내음 같은 감각들을 가만히 느껴보고 있는 그 약간 더운 온도의 순간 자체가 내게는 완전히 여름방학의 정취를 풍겼다.


워케이션이란 단어가 그러하듯, 일과 휴양은 칼로 무 자르듯 일도양단될 수 없고 될 수 있다고 좋은 것도 아니다. 휴양과 일상 역시 그렇게 명확히 갈라지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꼭 낯선 바다에 몸을 담궈야만 휴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내 일상의 공간 속에서 계절의 결을 온전히 감각하고 마음을 놓을 수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나만의 가장 정적인 휴양지가 되어주는 것이 아닐까. 마음을 놓다라는 말이 참 좋다. 마음을 놓아둔 우드슬랩 바카라상 위로 여름 햇살이 옅은 패턴을 그리며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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