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빠르고 싶은지 감도 안 옴

C. 나를 짓는 일 #07

by우드노트
요즘 자주 사용하는 단어가 있으신가요?


최근 가장 많이 썼던 말은 '이건 못 참지' 또는 '⦁⦁ 못 참지'였다. 진짜 많이 썼던 일반적인 단어야 따로 있겠으나 굳이 떠올렸을 때 떠오른 말은 '못 참지'였다. 그 자체로 자기 제어의 결핍을 증명하는 이 말은 그 출처를 명확히 알 수 없으나 아프리카TV나 유튜브 같은 영상 플랫폼으로부터 유래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인터넷의 유행어는 놀라울 정도의 응용력과 범주에 대한 포섭력을 발휘하는 문장만이 선정된다. '못 참지'의 경우 주로 공감의 의미를 담고 있는데, 예를 들면 '라면에 김치, 이건 못 참지'와 같이 특정 상황(라면과 김치를 함께 먹을 수 있는 상황)에 놓인 영상 속 인물에 대해 (자신이라면 주저 않고 자기 제어 없이 먹어버리겠다는)특정 선호에 대한 공감을 전한다.


'이건 못 참지'는 어떤 상황에든 쓸 수 있지만 그럼에도 어떤 상황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 아무것도 일어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쓸 수 없는 말인 것이다. 하지만 ' ⦁⦁ 못 참지'의 경우 화자가 앞에 ⦁⦁를 붙임으로써 자신이 무엇을 못 참는지를 제시할 수 있다. 여기서부터 의미의 차이가 발생하는데 도통 왜 못 참고 좋아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붙이면 재미가 가중된다. 코로나나 정치인의 이름 같은 시사 주제도 좋고, 손톱깎이나 면봉과 같은 일상적 사물, 다이어트나 집안일 같은 하기 싫고 노력이 수반되는 행위도 무방하다.


하지만 무릇 유행어란 그 범용성 때문에 너무 무분별한 남용과 주체성의 상실 같은 슬롯적 부작용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출처조차 알 수 없는 이런 유행어에 우리는 쉽게 전염된다. 그리고 말과 글에서의 어휘적 풍요를 잃게 된다. 유행어는 재미있고 알기 쉽지만 그만큼 불량하게 사용되거나 의미가 와전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성적인 대상 등에 '못 참지'를 부적절하게 사용한다든지, 의미의 차이를 이용한 '못 참지' 때문에 좋아한다는 건지 싫어한다는 건지 알 수 없어질 정도로 남용한다든지 하는 오류가 인터넷에서 흔히 발견된다.


나는 인터넷 유행어 자체가 유행하기 시작한 시점에 학창 시절을 보냈다. '못 참지'에는 일종의 계보가 있다. ㄱㄱ, 우왕ㅋ굳ㅋ, 킹왕짱, 좋은 ⦁⦁이다, 가즈아 등 좋아하는 것을 표현하는 유행어들의 흥망성쇠를 보아 왔다. 그러면서 분별력도 생긴 것 같다. 어떤 유행어가 등장하면 부적절한 유래를 가진 것은 아닌지 확인해보고, 의미를 파악해 오용하지 않도록 하며, 지나치게 남용하여 청자나 독자를 거북하게 만들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못 참지는 못 참지.







얼마나 빠르게 변하고 싶은지 감도 안 온다


최근 뉴스 인터뷰에서 "어른들도 '하이'를 'ㅎㅇ'라고 하고 그랬잖아요"라며 묘한 변명을 하던 아이들의 모습을 보았다. 하이를 ㅎㅇ라고 표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굳이 생각해보지 않는 삶. 그러니까 가는 유행어 안 잡고 오는 유행어 안 막는 그런 삶을 살고 있으니, 유행어가 쉼 없이 새로 태어나는 현장(인터뷰 하던 아이들의 세계)에서 이젠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아무리 유행어를 따라잡으려 노력한다고 해도 실제 용법의 생동감에서 당연히 한참 벗어나 있음에 묘한 쓸쓸함을 느끼면서 말이다.


하지만 서른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는 지금, 그 멀어짐은 소외가 아닌 일종의 초연함이 되었다. 이제는 시대의 휩쓸림에 굳이 발을 맞추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다. 매일같이 출처를 알 수 없는 단어들이 터져 나오고 사라지는 동안, 나는 나만의 어휘적 속도와 결을 지켜내는 어른의 여유를 얻은 듯하다. 그렇다고 풍성한 표현들이 유행어 하나로 납작하게 일축되어 사라지는 풍경을 그저 망연히 바라보며 신세를 한탄하는 할아버지 같은 태도를 취하자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빠르게 변화하는 언어의 시장, 그 속에서 상황과 감정에 '가장 적확한 단어'를 골라 쓰기 위해 조금 더 마음을 쓰게 되었다. 하나의 유행어가 수십 가지의 미세한 감정을 단숨에 뭉개버릴 때, 나는 내 일상과 온도를 정밀하게 짚어내 줄 어휘들을 되살리려 애쓴다.


그럼에도 요즘 나도 모르게 자주 입에 올리는 문장이 하나 있긴 하다. "얼마나 좋아하는지 감도 안 온다" 같은 표현이다. 사실 누군가의 욕망이나 애정이 정말 감조차 잡히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순간을 포착할 기회란 삶에 그리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그러니 이 태생적으로 건방진 유행어는 다소 과장에 가까운 수식인 셈이다. 그래도 이 말은 상대가 가진 마음의 크기를 기꺼이 인정해 주는 표현이기에 듣는 이에게도 그다지 거슬림이 없다. 예전 같았으면 어디서 시작된 표현인지, 부적절한 유래를 가진 건 아닌지 원전을 끈질기게 파헤쳤을 테지만 요즘은 그런 노력을 쏟지 않는다. 대충만 들어도 그 단어가 품은 의도의 결을 알아채는 판별력이 여태를 살아가는 동안 자연히 쌓인 덕분이다.


새로운 유행어를 부지런히 찾아보고 따라 쓰던 감각은 이제 무덤덤해졌다. 안도하지도, 초조해하지도 않는 초연한 자리. 유행어의 현장에서 멀어진 지금의 자리에서 나는 비로소 내 언어의 주도권을 쥔다. 그리고 휘발되는 단어들 너머로, 오늘 나를 스쳐간 감정과 사람들에게 건넬 가장 적절한 어휘를 가만히 가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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