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선을 그어 나가는 마음 #08
내 인생을 3개의 챕터로 나눈다면 어떻게 구분하고 싶으신가요?
인생을 어떤 기간을 정하여 나누는 일은 역사 공부에는 좋지만 내 인생에 적용하기에는 그다지 좋지 않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3개로 구별하여 내 인생을 나누는 것은 하지 않기로 한다. 그렇게 결정한 이유를 밝힌다. 첫째로는 내 인생 자체가 나의 마인드 셋의 변화보다는 타인에 의한 관계 전환으로 인해 바뀌어 왔기 때문에 수동적으로 기간을 정해야 하기 때문에 좋지 않다. 분명 나의 시간에 관한 것인데 식민지에 지배당한 시기처럼 다른 이에게 휘둘렸던 기억이 먼저 나올 것 같다. 둘째로는 내 다양한 의지와는 관계없이 나의 일정 기간에 대해 마치 내가 한 가지 방향성으로 살았던 것처럼 설명할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에 그렇다. 인간은 사상이 아니기 때문에 단어나 문장으로는 한 사람의 긴 시간을 다 표현하기 어렵고 단지 우리의 편의를 위해 그렇게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데에야 좋지만, 마치 자식의 사주를 자식에게 알려주지 않는 부모의 마음처럼 나는 내 인생에 당장은 이름을 붙이고 싶지 않다. 백 세 시대가 맞다면 50대쯤에나 인생의 방향성을 정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직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다.
살아남았다는 것은 강하다는 것
5년 전 나는 내 인생을 세 챕터로 나누어보라는 질문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굳이 이름을 붙여 규정당하고 싶지 않았고, 타인이나 환경에 휘둘려 끌려갔던 시간들을 굳이 내 손으로 구획해 박제해 두고 싶지 않았다. 50대쯤 되어 삶의 윤곽이 뚜렷해지면 그때나 나누어보자며 모든 가능성을 미래로 미뤄두었다. 그런데 평생 내 길일 줄 알았던 건축을 떠나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지금에 이르러서야, 삶은 이미 굵직하게 세 번의 매듭을 지어버렸음을 인정하게 된다. 결국 50대까지 기다릴 것도 없었다.
돌아보면 내 삶은 마치 서양 음악의 사조처럼 세 번의 계절을 지나왔다.
첫 번째 챕터는 학생 시절의 고전주의였다. 건축이라는 견고한 형식 안에서만 사고하던 딱딱한 시기. 건축으로 무언가 거창한 뜻을 펼치겠다는 비장함에 차 있었고, 돈을 벌고 직업인이 된다 한들 이 숭고한 태도가 변하진 않으리라 순진하게 믿었다. 경제적인 감각이나 건축 바깥의 세상에 대해선 닫혀 있었고, 학교는 그런 답답한 틀을 성실하게도 가르쳐주었다.
두 번째 챕터는 건축사사무소를 다니던 시절의 낭만주의였다. 실제 마주한 프로의 세계는 유치할 정도로 솔직했고, 덧없을 만큼 표면적이었다. 큰 뜻 대신 '작은 디테일 하나라도 내 의지대로 실현되기를' 바라는 소소한 성취에 매달렸다. 턱없이 부족한 실력이라 여겼는데 의외로 칭찬을 받았고, 직급에 비해 이것저것 화려하게 시도해 보며 일에 낭만을 끼얹기도 했다. 하지만 내 작은 의지는 상사의 개인적인 취향이나 건축주의 날것 같은 욕망 앞에 번번이 납작해졌다. 돈을 받고 일하는 노동에 너무 많은 마음을 주지 말아야 했지만, 마음을 다 빼버리고 일하는 건 더더욱 싫었다. 적어도 '자신을 다니는 회사 이름으로 소개하는 녀석'들과는 다르고 싶다는 오기 하나가 내 자존감의 전부였던 시절.
그리고 건축을 떠나 사람들을 모으고 판을 까는 지금, 나는 세 번째 챕터인 인상주의를 살고 있다. 형식과 틀을 벗어나 순간순간의 빛과 감각, 직관에 기대어 선택하고 움직인다. 막연한 요행이 아니라, 지나온 시간들이 온몸에 체득시켜 준 일종의 감각적 믿음이다. 남들이 이미 하고 있는 범주의 일이라면 나 역시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담담한 자신감. 그 직관을 믿었기에 그토록 오래 쥐고 있던 건축이라는 명함을 미련 없이 내려놓을 수 있었다.
내 삶을 선명하게 분절해 볼 수 있을 만큼 긴 시간을 통과해 왔다는 사실이 때로는 낯설고 묵직한 무게로 다가온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은근히 자랑스럽기도 하다. 타인에게 휘둘려 마지못해 끌려온 시간이 아니라, 저마다의 사조를 온몸으로 통과하며 기어코 다음 계절로 건너온 시간들. 요즘 유행하는 말처럼, 결국 살아남았다는 것은 강하다는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