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슬픔이 내 하루를 흔든다

타인의 감정이 너무 오래 내 안에 머무는 사람의 이야기.

by고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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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가끔 내게 공감 능력이 좋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나는 한동안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공감을 잘한다는 건 그저 상대를 이해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게 공감은 조금 달랐다.

나는 가끔 타인의 감정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사람이었다.




처음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고등학교 때였다.

연극을 시작하면서 대본을 받았는데, 이상하게도 대사가 어렵지 않았다.

친구들은 인물 분석에 시간을 많이 쏟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 사람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왜 화를 내는지.

왜 울고 있는지가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감정을 따라가다 보니 대사는 저절로 외워졌고, 표현하는 일도 어렵지 않았다.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되어보는 기분이었다.


그때 처음 생각했다.

'아, 나는 사람의 감정을 잘 느끼는 사람이구나.'




몇 년 뒤, 스무 살이 되어 대학 MT를 갔다.


버스 안에서는 영화 한 편이 상영되고 있었다.

바로 <추격자>였다.


원래 나는 잔인하거나 무서운 영화를 잘 보지 못한다.

19세 관람가 영화는 일부러 피할 정도였다.


그래서 그날도 제대로 보지 않았다.

고개를 돌린 채 화면을 곁눈질로만 흘끗흘끗 바라봤다.

그런데도 충분했다.


화장실에 갇힌 피해자의 공포가 마치 내 바로 옆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느껴졌다.


숨이 턱-하고 막혔다.


'너무 무서워.'

그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나는 영화를 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 공간에 함께 갇혀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손도 발도 움직일 수 없고,

도망칠 수도 없고,

살고 싶다는 마음만 남은 사람.

나는 어느새 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감정이 나를 집어삼켰다.

'저 사람이 죽으면 그다음은 내가 죽을 것 같다.'


슬퍼서가 아니었다.

불쌍해서도 아니었다.


정말 이상하게도,

그 공포가 내 것이 되어 버렸다.

결국 나는 버스 안에서 참지 못하고 엉엉 울어버렸다.


주변 사람들은 갑자기 우는 나 때문에

많이 놀라고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영화를 보다가 우는 사람은 있어도,

그렇게까지 무너지는 사람은 흔치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내게 그것은 영화를 본 시간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견딘 시간이었다.




그 이후에도 비슷한 일은 자주 있었다.


누군가의 슬픈 이야기를 들으면 그 표정이 오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드라마 속 인물의 아픔도 며칠 동안 내 마음에 남았다.


예전에는 이런 내가 조금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다.


감정이 너무 많은 사람.

유난스러운 사람.

조금은 무뎌져야 하는 사람.


하지만 이제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이건 약해서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쉽게 지나치지 못하는 성향이라는 것을.


물론 여전히 피곤할 때도 있다.

세상에는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많은 감정들이 있으니까.


그래서 요즘은 하나를 배우고 있다.

공감과 바카라임은 같은 말이 아니라는 것을.


누군가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과,

그 사람의 삶까지 대신 살아내는 것은 다른 일이라는 것을.


아직도 나는 종종 그 경계를 잊는다.


그래도 이제는 안다.

이 마음은 나를 힘들게도 했지만,

동시에 사람을 더 깊이 바라보게 만들었다.


말보다 표정을 먼저 읽게 했고,

괜찮다는 말 뒤에 숨어 있는 마음을 알아차리게 했다.


그래서 나는 이 능력을 미워하지 않으려 한다.


여전히 남의 슬픔이 내 하루를 흔드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하지만 누군가의 마음을 쉽게 지나치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조금은 서툴더라도,

조금은 흔들리더라도.


그것이 내가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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