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도착한 내 마음을 외면하지 않고 바라봐주는 일
나는 다른 사람의 마음에는 참 많이 신경을 썼다.
친구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조금 가라앉아 있으면 무슨 일이 있는지 물었고,누군가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면 그 마음을 오래 생각했다.
괜찮다는 말을 그대로 믿지 못할 때도 있었다.
정말 괜찮은 건지, 괜찮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건 아닌지,혹시 내가 모르는 슬픔을 혼자 삼키고 있는 건 아닌지.
나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꽤 오래 들여다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에는 서툴렀다.
내가 힘든 건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조금 피곤한 것뿐이라고 했고,
조금 속상한 것뿐이라고 했다.
이 정도는 누구나 겪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나에게만 유난히 빨리 괜찮아지기를 요구했다.
눈물이 나면 그만 울어야 했고, 마음이 무거우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했다.
슬퍼할 이유를 찾기보다는 슬퍼하지 않을 이유를 찾았다.
그러다 어느 날, 아주 사소한 일에 눈물이 났다.
정말 별것 아닌 일이었다.
그런데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왜 우는지 나도 몰랐다.
한참을 울고 나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아마 그 일 하나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동안 괜찮다고 밀어두었던 마음들이 한꺼번에 찾아온 것뿐이었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내 감정은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내가 나중으로 미뤄두었을 뿐이었다.
남의 슬픔은 그렇게 잘 알아차리면서 내 슬픔은 왜 이렇게 늦게 알아차렸을까.
생각해보면 나는 나를 대하는 방식이 늘 비슷했다.
잘했을 때는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잘하지 못했을 때는 이유를 찾기보다 나를 탓했다.
힘들어도 조금 더 참으라고 했고, 지쳐도 이 정도는 견뎌야 한다고 했다.
다른 사람에게는 쉽게 건네던 말을
나는 나에게 거의 해주지 않았다.
“괜찮아.”
“그럴 수 있어.”
“오늘은 쉬어도 돼.”
“많이 힘들었겠다.”
이런 말들.
누군가에게는 너무 자연스럽게 건네던 말인데, 나에게 하는 것은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그래서 조금씩 연습하기 시작했다.
나를 바꾸는 것보다 먼저 바라보기로 했다.
힘든 날에는 왜 이렇게 힘든지 억지로 이유를 찾지 않았다.
그냥 힘든 나를 가만히 두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에는 나를 게으르다고 부르지 않았다.
오늘은 많이 지쳤구나, 하고 생각했다.
괜히 눈물이 나는 날에는 또 시작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울고 싶은 만큼 울게 했다.
예전에는 감정이 생기면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분이 나쁘면 좋아져야 했고, 슬프면 털어내야 했고, 불안하면 괜찮아져야 했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모든 감정이 당장 해결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어떤 마음은 해결하는 것보다 먼저 곁에 있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그래서 가끔은 내가 나를 안아준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두 팔로 나를 꼭 끌어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 마음을 밀어내지 않는 것.
힘든 나를 보면서 왜 또 그러냐고 묻지 않는 것.
넘어진 나에게 왜 넘어졌는지 따지기보다 일단 일으켜 세워주는 것.
잘하지 못한 날에도 내가 나라는 이유만으로 나를 미워하지 않는 것.
그게 지금 내가 배우고 있는 나를 안아주는 방법이다.
물론 아직 잘하지 못한다.
어떤 날에는 또 나를 몰아붙이고, 또 어떤 날에는 내 감정을 뒤늦게 알아차린다.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하며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그래도 예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이제는 뒤늦게라도 알아차린 마음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 내가 많이 힘들었구나.”
그 말을 조금씩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말을 하고 나면
내 마음이 아주 조금 편안해진다.
무언가를 해결해서가 아니다.
누군가에게 이해받아서도 아니다.
그저 내가 나를 외면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다.
나는 아직 나를 잘 모른다.
어떤 날에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겠고, 왜 마음이 무거운지도 모른다.
그럴 때마다 예전에는 빨리 답을 찾으려고 했다.
지금은 조금 기다린다.
내 마음이 말할 준비가 될 때까지.
나는 이제 나에게도 시간을 주려고 한다.
조금 늦게 알아차려도 괜찮다고.
당장 괜찮아지지 않아도 괜찮다고.
오늘의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오늘의 나를 버리지는 말자고.
어쩌면 나를 사랑하는 일은
나를 늘 좋아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마음에 들지 않는 날에도 나를 바라봐주는 것.
부족한 모습까지 모른 척하지 않으면서도
그 부족함 때문에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
그리고 힘들어하는 나를 발견했을 때
가장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이 되어주는 것.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의 마음을 살피느라 정작 나를 놓치지 않는 사람.
남의 슬픔에 흔들리면서도 내 마음의 작은 신호를 지나치지 않는 사람.
늦게 도착한 내 감정을
이번에는 문 앞에서 돌려보내지 않는 사람.
아직은 서툴다.
그래도 조금씩 나를 만나고 있다.
괜찮은 나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울고 있는 나도 만나고,
지친 나도 만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도 만난다.
그리고 그때마다 조용히 말해주려고 한다.
괜찮아.
오늘도 여기까지 잘 왔어.
조금 늦어도 괜찮아.
나는 기다릴게.
이제는 나도
나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