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많던 아이는 눈물을 삼킬 줄 아는 어른이 되고 있었다.
가끔은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순간에
눈물이 차오른다.
만화나 영화를 보다가도,
아무 가사가 없는 음악을 듣다가도,
누군가 건네는 다정한 말 한마디에도,
길을 걷다 문득 스쳐 지나가는 계절의 냄새에도.
분명 슬픈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닌데,
마음 한구석이 천천히 젖어든다.
예전의 나는 그런 아이였다.
눈물이 참 많았다.
혼나서 우는 아이도 아니었고,
아파서 우는 아이도 아니었다.
친구가 속상해하면 같이 속상했고,
만화와 드라마 속 주인공이 울면 함께 울었고,
길에서 자기 몸집보다 큰걸 옮기고 있는
개미를 보다가도 마음이 오래 머물렀다.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종종 말했다.
"왜 그렇게 눈물이 많아?"
"너는 참 별것도 아닌 걸로 다 운다."
"그만 좀 울어."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조금씩 배웠다.
아, 눈물은 들키지 않는 게 좋은 거구나.
언제부턴가 울음을 참는 일이 익숙해졌다.
울고 싶을 때는 웃는 법을,
괜찮지 않을 때는 괜찮다고 말하는 법을,
눈물이 차오르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는 법을.
그렇게 나는 눈물을 삼킬 줄 아는 어른이 되었다.
사람들은 어른이 되면 단단해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단단해진 것이 아니라,
조용해졌을 뿐인 것 같다.
여전히 누군가의 슬픔은 내 마음을 흔들고,
누군가의 기쁨은 내 일처럼 반갑다.
다만 예전처럼 울지 않을 뿐이다.
눈물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눈물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를 알게 된 것이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어린 나는 지금의 나를 보면 뭐라고 말할까.
"왜 그렇게 참아?" 하고 물을까.
아니면
"이제는 괜찮아?" 하고 조용히 안아줄까.
나는 아직도 그 답을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안다.
나는 눈물이 많았던 그 아이를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그 아이 덕분에
누군가의 마음을 오래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고,
쉽게 지나칠 수 있는 다정함을 발견하게 되었으며,
지금도 이렇게 그때의 감정을
문장으로 쓰게 되었으니까.
돌이켜보면 눈물이 많았던 아이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조용한 모습으로,
조금 더 단단한 얼굴을 하고,
내 안에서 여전히 살아가고 있었다.
오늘도 나는 그 아이와 함께 살아간다.
조금 울고,
조금 웃고,
조금 더 다정해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