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이 지배하는 시골의 거리 감각
우리 가게 7분 거리에는 지역 관광명소가 있다. 물론 차를 타고 가면 7분 정도 걸리는 거리라는 뜻이다. 이 지역 안에서 장소 간의 거리를 측정할 때는 지하철 몇 정거장도 아니고 걸어서도 아닌 (자동차로) 몇 분 거리라는 표현이 기본적으로 쓰인다. 이동수단으로 자동차가 가장 보편적이기에 그렇다. 시간 단위로 셀만큼 넓은 지역은 아니기도 하고.
여기서 대부분의 시설들은 차를 운전할 수 있어야 접근가능하다. 지역 홍보팀의 자료에 실린 관광명소들은 버스를 타고는 도착할 수 없고, 아르바이트생을 구하는 구인 공고에는 때로 보이지 않는 한 줄이 추가로 적혀 있다(*버스는 다니지 않으니, 출근 시에는 자가용 승용차를 이용해 주세요). 면사무소쯤 되면 상황이 좀 낫지만 출근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여서 결국 직접 운전이 불가피하다. 혹여나 지하철을 타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하시는 독자는 없으리라 믿는다.
이쯤 되면 일상생활을 위해 운전을 배우고, 차를 장만하는 일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차를 사지 않는다면 결국 차를 산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게 될 뿐이다. 서울에서 승용차를 구입하는 일이 선택의 범주에 들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면 이 대비는 인상 깊다. 대학교 재학시절, 서울에 거주하던 친구네는 대학생 자녀가 있는 데다 부모님이 온라인 게임에 다녔음에도 차를 소유하지 않았었다. 아마 서울의 교통 혼잡도와 승용차 사용 빈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정이었으리라.
교통 면에서 시골이 대도시보다 한 가지 나은 점이 있다면, 자동차로는 같은 거리를 가더라도 훨씬 빨리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서울 중심지에서 2km 거리를 가는 데에는 교통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7분 정도 걸리는 것으로 나온다. 여기서는 같은 거리를 4분 내에 갈 수 있다. 보다 외진 곳을 달리게 되면 이 차이는 더 커지는데, 1km 거리를 가는 데에 불과 1분 정도밖에 소요되지 않는다.
직주근접의 관점에서도 이 거리감각의 차이가 십분 발휘된다. 실제 떨어진 간격이 더 멀더라도 도착하는 데 시간이 덜 걸린다면, 시간 활용의 관점에서는 더 가까이에 있다고 느껴진다. ㅇ면사무소에 근무할 당시 집과 면사무소의 거리는 6km였으나 실제로는 10분 정도 걸렸다. 당연히 승용차로.
그런데 운전을 못 하게 되면 이 거리감은 완전히 뒤집힌다. 도시에서라면 지하철 몇 정거장에 불과한 거리라도, 여기에서는 몇 시간에 한 번 오는 버스를 기다려 이동해야 할 수도 있다. 목적지는 기다림의 시간만큼 아득히 멀어진다.
본디 차로 15분 정도 걸리는 인접한 면 소재지에 계시는 큰어머님은 가끔 읍내로 나오시는데, 귀갓길 버스를 타기 전에 우리 가게에 들르시고는 한다. 다음 버스 시간까지는 한 시간이 넘게 남았다시는데도 대수롭잖게 기다리시는 모습을 보면 나는 속으로 놀라지만, 큰어머님은 익숙하신 듯했다. 기다리는 시간까지 합쳐야 도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제대로 헤아릴 수 있고, 그 합친 시간으로 셈하면 큰집은 아주 멀리에 있다.
앞서 말한 ㅇ면사무소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버스로 이동할 경우 앞뒤로 도보 13분을 포함하여 47분 정도가 걸린다고 나온다. 출근시간에 맞출 수 있을 리가…
그래도 자가용 승용차와 버스의 중간쯤에 이런저런 이동수단들이 있다. 자전거와 전동 자전거, 이륜차, 전동휠체어, 그리고 바퀴는 네 개지만 자차보험은 없을 거 같은 각종 탈것들. 가게 안에서 밖을 내다보면 시장을 가로지르는 바퀴들이 보인다. 얼마 전엔 경운기를 몰고 오신 어르신이 계셔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그마저도 이 탈것들로 시장에 나오시는 분들은 멀어봐야 근처 면 지역에서 오시는 분들이니까, 더 멀리 지내는 어르신들은 도통 다니기가 쉽지 않다.
운전을 못 해도 그나마 괜찮은 케이스는, 이런 경우다. 시장과 마트, 관공서에 걸어서 다닐 수 있는 읍내 중심지에 거주하면서 주변에 운전이 가능한 사람이 많은 경우. 바로 우리 어머님 같은 사례인데 그마저도 한창 장사를 하실 땐 아이들을 업고 짐을 이고 물건을 하러 가셨더랬다.
나의 운전실력은 서투르기 짝이 없어서 실제 운전경력도 십 년은 되어 가지만 십 분 이상 걸리는 곳으로는 직접 차를 몰고 나가지 않는다. 그간의 잊을만하면 발생하는 접촉사고들과 사고가 될 뻔한 순간들 때문에, 내 차는 최근 몇 년간 우리 지역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운전을 할 수 있어서 아침에 수월하게 출근하고, 휴무일에는 가끔 지역 카페에 방문하고, 퇴근길에 동네 마트에서 장을 보는 일이 가능하다. 이곳에서는 이렇게 간단한 일조차 다른 교통수단으로는 도저히 하기 어려운 일이 될 수 있다.
운전을 배우는 일은 생활의 범위를 넓혀준다고들 한다. 운전이 누군가의 세계를 넓히는 일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그 말은, 운전을 안 할 수도 있는 상태를 전제하고 있다. 운전은 더 나은 삶을 위한 ‘선택’으로 여겨진다.
여기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가까울지 멀지는 당신의 운전여부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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