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즐기는 생성형 문화생활

사람이 원래부터 즐겨 온 방식으로

by상모솔새

우리 아파트 앞 편의점 사장님은 남편과 안면이 있는 사이다. 들를 때마다 두 사람은 반갑게 취미 이야기를 한다. 통기타와 노래, 주 종목은 다르지만 음악을 즐긴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서로 알게 된 것도 몇 년 전 지역 문화센터에서 진행한 통기타 수업에서였다던가? 우리 집 기타는 조카에게 빌려준 지 오래되었지만 말이다.


얼마 전엔 사장님이 상기된 목소리로, 십 분 거리에 연습실을 한 군데 얻었다고 알려 주셨다. 마당이 작게 딸린 단독주택인데, 주변 집들과 거리가 있어 마음 놓고 연주할 수 있는 곳이라며. 편의점 단골손님이 저렴하게 빌려주셨다고 한다. 기회가 되면 놀러 와도 좋다시면서.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곳에서 악기 연주를 하거나 노래하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사실 남편도 나도 노래하는 걸 아주 즐기는 편인데, 나와 달리 남편은 실력이 상당해 수상 경력도 있고 종종 불러 주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별달리 내세울 성과는 없지만,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해서 팔 년 전부터 엑셀 파일로 정리한 선곡 리스트가 있고 삼백 여곡 정도가 여기에 들어있다고 하면 그 열정이 짐작되실까 싶다. 이런 두 사람이 처음 데이트 명목으로 만난 장소가 노래방이고 거기서 4시간가량 노래만 불렀다는 건 놀랍지도 않다…


남편은 얼마 전, 지역 예술인 모임에 초대되기도 했다. 모임의 회장님은 지역 식품회사 사장님이셔서 회사 한편에 공연장을 마련해 두고 모임장소나 공연장소로 활용하신다고, 모임에 다녀온 남편이 부러운 기색을 숨기지 못하며 말해주었다. 동네 어느 택시기사님도 색소폰 동호회를 운영하신다고 탈 때마다 말씀하시는데, 워낙 그 택시를 타는 게 가끔이라 그런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하신다. 이곳에는 혼자서 또 모여서 연주하고 노래하는 사람들이 곳곳에 소리 없이 지내고 있다.


악보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에게도 즐길 거리는 꽤 있다. 흔히들 시골에서 즐기기 좋은 취미로 독서와 글쓰기를 떠올리는데, 나도 쉬는 날에는 카페에서 바카라을 읽고 글을 쓴다. 그럴 때 창 밖으로 보이는 초록빛이, 그리고 산의 나무들이 하늘과 이루는 경계가 아름답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바깥 풍경이 번잡할 때에 비해 글이 얼마나 잘 써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라는 바카라의 저자조차 시골에서 집필 활동을 한 걸 보면 세간의 예상과 실제가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읍내 주요한 다리 앞에서는 선선한 계절이면 버스킹 공연이 열리는데, 때에 따라 바뀌기는 하지만 대체로 멤버가 정해져 있다. 악기 연주와 노래 외에도 시낭송이 셋 리스트에 포함된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지역의 평생학습 수업에서 모임이 시작되었다는데, 종종 큰 대회에서 수상했다는 현수막이 걸리곤 한다. 지역의 문화센터에는 분기마다 수강생들의 그림과 사진과 공예작품들이 전시된다. 색소폰 수업도 프로그램에서 빠질 수 없는 인기 강의다. 지난달에는 반갑게도 보컬 수업이 개설되어 나도 수강했다. 배우고 익히고 펼치는 일련의 과정들이 쉽게 열려 있다.


대신 문화를 소비할 기회는 제한적이다. 대형 가수를 만나볼 기회는 지역 축제가 전부이고, 지역 공연장에는 매달 공연 일정이 잡혀 있지만 내가 고를 수 있는 건 ‘그 공연을 볼지 안 볼지’ 일 뿐, 내가 원하는 아티스트의 공연은 선택지에 없다. 작은 규모의 공연장으로는 수용 가능한 공연 자체도 제한된다. 최근 지역마다 보급된 작은 영화관 덕분에 최신 영화를 보는 일은 그나마 쉽다. 객석은 합쳐서 백 석 남짓정도이니 정말 작긴 하지만. 50석짜리 관람관에서 최근 개봉한 <오디세이>를 보며 생각했다. ‘어차피 용아맥(용산 아이맥스)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평등한가…’


우리 가족은 차로 이동할 때면 항상 노래를 부른다. 차에서 사용하던 블루투스 마이크가 말썽이라 새 제품을 알아보던 중, 품질이 아쉬워 일반 마이크까지 검색해 보게 되고… 결국엔 생각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버스킹용 스피커를 살 수 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다. 남편은 예전부터 버스킹 장비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곤 했었다. 장비만 있으면 적당한 장소에서 버스킹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나도 마음속으로 동의했었다.


나중에 용돈이 모이면 어느 장비를 살지 후보를 추리면서 나는 선사시대 사람들의 악기를 생각한다. 새뼈로 피리를 만들어 불기 전에도 그들은 나름의 문화를 만들어 즐겼으리라고, 그보다 먼저 노래하는 사람이 있었으리라고. 3시간짜리 영상도 AI가 단 3줄로 요약해 주는 시대이지만,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즐거움은 포기할 수 없다. 데뷔가 꿈이 아니더라도 이 길은 푸르고 아름답다.

이전 10화멀 수도, 가까울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