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감정을 읽어보다 ⑥

딸을 보자 폴짝 뛸 뻔했다

by신은정



둘째 딸아이가 방학이다.

학교에서 보건교사로 일하는 딸은 학교 근처에서 혼자 산다. 학기 중에는 급식실에서 점심을 먹고, 선생님들이 반찬도 조금씩 챙겨 주신다고 했다. 방학이 되면 끼니를 혼자 해결해야 한다.

“방학하면 공부 시작해야지.”

말은 느긋하게 해도 한번 마음먹으면 끝까지 해내는 아이다. 그 성실함을 알기에 결과보다 과정을 묵묵히 응원한다.

열흘 동안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사 교육을 받느라 반찬을 한 번도 챙겨 주지 못했다. 혼자 뭘 해 먹고 있을까. 생각할 때마다 마음 한쪽이 무거웠다.

교육을 마치고 깻잎김치를 담갔다.

함께 교육받던 분이 친정어머니가 담가 주셨다며 깻잎김치 한 통을 건넨 적이 있다. 식탁에 올렸더니 남편이 맛있게 먹으며 물었다.

“이거 어디서 살 수 없어?”

그 말이 떠올라 나도 한번 담가 보기로 했다. 직접 키운 깻잎을 파는 곳을 알게 되어 만 원어치를 샀는데 생각보다 양이 많았다. 물에 담가 두자 시들했던 깻잎이 금세 살아나 푸르고 풍성해졌다.

‘이걸 언제 다 하지.’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한 장 한 장 씻어 물기를 빼고 양념을 만들었다. 일부는 생깻잎으로, 일부는 살짝 쪄서 담갔다. 이렇게 많은 양을 담그기는 처음이었다.

깻잎김치만 가져다주기에는 아쉬워 남편에게 돼지고기 불고깃감과 목살, 파 한 단도 부탁했다. 손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이상하게 힘들지 않았다. 내가 먹을 것만 만들었다면 몇 번이나 힘들다고 했을 텐데, 딸에게 가져다줄 생각을 하니 힘든 줄도 몰랐다.

반찬 가짓수가 하나둘 늘어갈수록 나도 덩달아 신이 났다.

밤 9시, 반찬을 챙겨 남편과 집을 나섰다.

일찍 잠자리에 드는 나를 아는 남편이 조수석 의자를 뒤로 젖혀 주었다.

“가는 동안 좀 자.”

잠깐 눈을 붙였다. 눈을 떠 보니 어느새 딸이 사는 동네였다.

“경신아, 엄마 다 왔어. 어디야?”

“독서실이야. 조금만 기다려. 5분이면 가.”

차를 주차하는데 멀리서 딸이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순간 너무 반가워 차 안에서 폴짝 뛸 뻔했다.

얼마 만에 본다고 이렇게 반가울까.

오기 전 빈 반찬통이 몇 개나 있는지 물었더니 일곱 개쯤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반찬은 통에 담지 않고 봉지에 챙겨 왔다. 딸 방에 올라가 빈 통에 하나씩 담아 주고 싶었다.

집에 들어가려면 주인의 허락이 필요하다고 했다. 딸이 문자를 보내 허락을 받은 뒤 함께 올라갔다.

가져온 음식을 반찬통에 나누어 담고 냉장고에 차곡차곡 넣었다. 빈 통이 하나씩 채워지는 것을 보고 있자니 열흘 동안 마음에 걸렸던 것도 조금씩 내려가는 듯했다.

딸은 닭고기를 먹고 가라며 몇 번이나 붙잡았다.

“엄마, 이것 좀 먹고 가.”

먹고 싶었지만 시간이 늦었다. 공부하던 아이의 시간을 오래 빼앗고 싶지도 않았다.

“됐어. 엄마 아빠는 그냥 갈게.”

그냥 보내기 아쉬웠는지 딸이 무인카페라도 가서 차 한 잔 마시고 가자고 했다.

셋이 함께 걸었다. 남편은 복숭아티, 나는 레몬티, 딸은 자몽티를 골랐다. 남편은 자신이 고른 복숭아티가 마음에 드는지 맛있다며 연신 마셨다.

늦은 밤, 셋이 나란히 앉아 각자 다른 차를 마셨다.

거창한 이야기를 나눈 것도 아니었다. 오래 함께 있지도 않았다. 반찬을 가져다주고 얼굴을 보고 차 한 잔을 마셨을 뿐이다.

돌아오는 길, 문득 웃음이 났다.

그 많은 깻잎을 씻고 한 장 한 장 양념을 바르면서도 힘든 줄 몰랐던 나. 빈 반찬통을 채우며 마음이 가벼워진 나. 멀리서 걸어오는 딸을 보고 차 안에서 폴짝 뛸 뻔했던 나.

딸은 다 커서 자기 삶을 살아가는데 나는 여전히 반찬을 챙겨 주고 싶고, 얼굴만 봐도 반갑다.

다음 날 아침, 딸에게서 톡이 왔다.

챙겨 준 감자샐러드빵이 맛있다고 했다. 저녁에는 반찬을 꺼내 먹다가 또 톡을 보내왔다.





“엄마, 너무 맛있어. 엄마가 앞에 있는 것 같아.”

그 한마디에 마음이 환해졌다.

잘 먹었으면 좋겠고,
공부하는 동안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고,
가끔 얼굴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큰딸도 사진을 보고 한마디 했다.

“맛있어 보인다. 부럽네.”

나는 얼른 대답했다.

“언제든지 콜이야. 말만 해. 원하면 언제든지.”






#온라인카지노북 #신은정작가 #온라인카지노연재 #일상에세이 #반찬만들기 #무인까페 #깻잎김치

월요일 연재
이전 05화내 감정을 읽어보다 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