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는 사람에서 지키는 사람으로
남편에게서 문자가 왔다.
“저녁 먹고 들어갈게.”
요즘 남편은 밖에서 저녁을 먹고 들어오는 날이 잦다. 거의 매일이다.
평소보다 천천히, 오래 운동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문득 팥죽 한 그릇이 먹고 싶어졌다. 집으로 가는 터널로 들어가지 않고 팥죽집 쪽으로 우회전했다.
쌀과 옹심이가 함께 들어간 팥죽을 주문했다. 열무김치와 보리밥이 먼저 나왔다. 점심을 걸러 배가 고팠다. 열무김치를 넉넉히 넣고 보리밥을 쓱쓱 비벼 금세 한 그릇을 비웠다.
팥죽을 기다리는 동안 옆 테이블에서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나이 든 어머니와 딸이었다.
“이거 남은 거 싸 가자.”
어머니는 남은 팥칼국수를 포장해 가자고 했다.
“엄마, 국수는 불어서 안 돼. 가져가 봐야 먹을 사람도 없어.”
딸이 말려도 어머니는 버리는 게 아까운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떠올랐다. 무엇 하나 쉽게 버리지 못하던 분이었다. 먹을 것도, 물건도 아끼고 또 아끼셨다. 어렵게 살아온 세월이 몸에 밴 것이리라.
나는 그 마음을 나와는 조금 다른 것으로 여겼다.
낮에는 남편과 자동차 정비소에 다녀왔다. 혼다와 SM3에 빨간 경고등이 들어와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수리했다. 혼다는 괜찮았지만 SM3는 다음 날 다시 경고등이 들어왔다. 원인을 찾지 못해 차를 맡겨두고 나왔다.
그 길로 중고차 매장에 들렀다.
남편은 이번에는 새 차를 리스하고 싶어 했다. 나는 반대했다.
“고정 수입도 없는데 매달 나가는 돈을 만들면 안 될 것 같아요.”
차라리 적당한 중고차를 사는 게 낫다고 했다.
팥죽을 먹으며 생각하니 조금 우스웠다.
내가 벌어서 처음 산 차는 새 차였다. 살림을 맡고 남편이 경제권을 가지면서 산 차는 중고 아반떼였다. 그 뒤로 차를 바꿀 때마다 중고차를 샀다.
남편은 이제 새 차를 타고 싶어 하고, 나는 중고차면 충분하다고 여긴다.
어느새 생각이 뒤바뀌었다.
그때 옆자리 어머니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이거 남은 거 싸 가자.”
아끼는 게 몸에 밴 세대라고, 나와는 조금 다르다고 여겼던 내가 문득 우스워졌다.
나도 다르지 않은 건 아닐까.
형편에 맞게 사는 것과 아끼는 게 몸에 밴 것. 그 사이에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까.
집으로 돌아와 그날 있었던 일을 적었다.
글을 쓰기 전이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순간이다. 글을 쓰면서부터 흘러가고 말 것들을 붙잡아 들여다보게 됐다. 상황에 맞게 살아왔다고 믿었던 일도 다시 바라보게 됐다.
형편이라고 불렀던 것이 어쩌면 익숙함은 아니었을까.
익숙함은 형편이 바뀐 뒤에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날 저녁 남편은 E300을 사라고 했다.
운전석에 앉으니 핸들이 스스로 자리를 잡았다. 여러 기능을 설명하는 말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놀랐다.
좋았다.
살 수 없는 것도 아니었다. 예전의 나라면 어떻게든 샀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망설인다.
이대로도 괜찮다고 마음 한쪽에서 자꾸 말한다. 좋으면서도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이게 형편에 맞게 사는 걸까. 아니면 이렇게 사는 게 편해진 걸까.
지난 5월, 집 하나를 정리했다. 집을 정리하면서 그동안 지고 있던 빚도 함께 덜어냈다.
돈을 벌지 않으면서 빚을 지고 살던 시간이 끝났다.
몸이 가벼워졌다. 약간의 여유도 생겼다.
그런데 그 여유를 써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 이유를 알게 된 것은 남편이 경제권을 내게 넘겨주겠다고 한 뒤였다.
10월에 세금을 내고 나면 내년부터는 내가 살림을 맡는다.
그 말을 듣고서야 알았다.
왜 있는 돈을 써버리고 싶지 않았는지.
왜 새 차 앞에서 망설였는지.
왜 중고차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지.
마음보다 몸이 먼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곧 내가 바카라임져야 한다는 것을.
남편이 경제권을 가진 세월 동안 나는 주어진 형편에 맞춰 살았다. 아끼기도 했지만 마지막 바카라임은 내 몫이 아니었다.
이제는 다르다.
내가 살림을 꾸리고, 내가 판단하고, 내가 지켜야 한다.
아끼는 것과 지키는 것은 조금 다르다.
아끼는 것이 쓰지 않는 마음이라면, 지키는 것은 무엇을 위해 쓰고 무엇을 남겨둘지 스스로 결정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노년으로 갈수록 살림은 가벼워져야 한다고들 한다.
나도 집 하나를 비우고 빚을 덜어냈다.
비우고 나서야 알았다.
가벼워진 살림 위에
더 단단한 삶을 하나 얹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이제 아끼는 사람이 아니라
지키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