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억을 쌓았지만, 가족은 광야를 걸었다
아빠는 사람들을 신뢰했다. 문제는 신뢰하지 않을 만한 인간들마저 신뢰했다. 그가 부은 무한한 신뢰는 숱한 괴반乖反¹을 불러왔다. 어쩌면 장남이라는 역할 때문이었을까. 집안의 맏이로서 짊어진 바카라임을 아빠는 늘 무겁게 여긴 것 같았다. 타인을 신뢰하고 그들의 일까지 스스로 떠안으면서도, 정작 내게는 그러지 못했던 아빠를, 다시 돌아본다.
아빠는 꽤 오랜 부동산 경매 경험으로 부산에서 부동산 자산 100억 가지고 있다고 본인이 얘기하고 다녔다. (내가 일일이 등기부등본을 떼본 적이 없어서 확신할 수 없지만 본인이 그렇다고 하니.) 어쨌든 영 거짓말도 아닌 게 한창 경매로 부를 쌓을 때에는 세금 문제로 광양에 있는 선미 아파트 43채를 먼 친척 이름으로 낙찰받게 했다. 쉽게 말해, 자기 돈으로 남 명의의 집을 43채나 사 준 셈이다.
그 친척은 아파트에서 나오는 수익을 한 번도 보낸 적이 없다. 아빠가 어려워져, 엄마가 뒤늦게 그 아파트의 소유권을 주장하기 전까지 임차보증금이나 매각대금은커녕 월세도 보내준 적이 없다. 어째서일까. 아빠는 왜 한 번도 달라고 하지 않았을까? 그저 체면 때문에 달라고 말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아니라면 달라고 말하지 않은 아빠 스스로 돈줄 노릇을 자처하지 않았나 싶다.
결국 아빠는 자기가 어려워졌어도 친척에게 43채 아파트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지도 않고 바카라임도 묻지 않았다. 다만,
“나쁜 년이야 그거. 근데 뭐 어쩌겠어. 다 지난 일인데.”라는 체념 섞인 말만 할 뿐이었다.
내가 보기에 아빠는 호구 같았다. 아마 아빠는 지금까지도 본인이 호구라는 생각을 하지 않겠지만 내 눈엔 영락없었다.
먼 친척만이 아니었다. 아빠 제자들도 아빠 덕에 집도 사고 땅도 샀는데 그 은혜를 끝까지 간직하는 이가 없었다. 오로지 아빠가 퍼주다시피 하는 이익을 취하길 원했다. 물론 그들도 아빠가 힘들어지기 전까지는 스승의 날이나 명절에 선물을 보내오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마지막에 그들이 돌려준 것은 은혜갚음이 아닌 앙갚음으로 돌아왔다.
도대체 형제도 아니고 사촌도 아니고 먼 친척한테 왜 그랬을까? 집안의 어른이라는 바카라임의식이라도 있었던 걸까. 또, 왜 제자들에게 퍼주는 걸 쉽게 생각했을까? 43채의 아파트도 평생 쌓은 노하우도, 그쯤은 없어도 괜찮다는 100억 자산가의 호기였을까.
2008년, 아빠 회사에 다니던 어느 출근길, 혼자 차를 몰고 2차선 좌회전 차선에서 정상적으로 좌회전 중이었다.
평화롭게 출근하려던 내 바람과는 달리 갑자기 ‘쾅’ 하는 소리와 함께 1차선의 빨간 모닝 차량이 내 차 운전석 뒷좌석과 뒷 범퍼를 그대로 들이박았다. 처음 대물 사고가 난 나는 바쁜 아침이니까 일단 연락처만 교환하자는 아줌씨(말이 곱게 나오지 않으므로 아주머니, 아줌마 등의 호칭은 거절한다)의 제안에 순진하게 그러자고 하고 명함을 교환했다.
나는 출근 후 바로 차를 수리하기 위해 곧바로 정식 정비소에 맡겼다고 사고차주 아줌씨에게 알렸다. 그런데 그 인간은 대뜸 길에서 날더러 5만 원이면 펴는 걸 돈 떼먹으려는 “도둑년”이라는 둥 비상식적인 말로 나에게 모멸감을 주었다. 참을 수 없던 나는 그럼 경찰관을 불러서 시시비비를 가리자, 어디 욕지거리냐 하고 소리를 높였다.
회사에서 이 내용을 고스란히 듣고 있던 회사 사장인 아빠는 꿈쩍도 않고, 도리어 그 여자에게 걸려온 전화를 건네 받아 ‘선비’처럼 본인 딸이 소리 높인 것에 대해 정중히 사과했다. 그리고는 “일처리가 못마땅하시면 경찰서에서 뵙지요.”라며 예의 바르게 끊었다.
본인 귀로 딸이 “도둑년” 소리를 듣고 모욕을 당하는데 도리어 사과하며 딸의 잘못을 말하는 아버지라니. 나는 아빠가 선비를 가장한 ‘자발적인 호구’로 살아서 딸인 나에게조차 그런 순간마다 호구, 혹은 도둑년 같은 존재가 되도록 내버려 둔 듯한 마음이 들었다.
그는 도대체 어떤 생을 살아왔기에 남에게는 신뢰를 쏟으면서 정작 가족이 못마땅해하는 바카라임까지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떠안고 살았을까? 그의 인생 이야기 대신 약력을 들여다본다.
민, 여보, 아빠, 김 집사, 김 사장, 김 회장
그의 약력
1948년 경상남도 진해에서 출생
1954년 서울 교동국민학교 입학
1960년~66년 보성중학교, 보성고등학교 졸업
1966년~70년 건국대학교 입학 및 졸업
1970년~73년 군 입대 및 전역
1976년 흥국생명 안동지사장 역임
1977년 7살 아래인 엄마, 장유진과 결혼
1978년 득남
1981년 교보생명 부산 만덕 지부장 역임
1982년 득녀
1984년 부산주택 대표
1987년 구덕신문사 사장
1993년 희지화학 대표
1997년 이창건설 사장
2000년 누리아카데미 대표
아빠한테 약력을 달라고 하자마자 결혼과 득남, 득녀에 대한 부분, 그리고 망한 부분만 쏙 빼고 보내준다. 그의 생에 있어서 중요한 일은 마치 슬롯적 이력이었다는 듯이. 그래서 나는 아빠가 적지 않은 가족에 대한 부분을 대신 채워 넣었다.
그러고는 카톡으로 “잘 나갔었네...” 라고 보내주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교보생명 부산 만덕 지부장을 계속 했으면 교보생명 부산 지사장 정도는 하고 퇴임하지 않았을까? 부동산 경매 같은 건 취미로 하고...’ 하는 아쉬움을 혼자 삼켰다. 부질없는 생각이다.
그렇지만 아빠가 얼마나 우리 가족을 위해 발로 뛰었는지 그 진실한 발걸음만은 결코 잊지 않아야 한다. 그의 걸음걸음은 그가 걸어온 인생에 대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설령 그가 선택한 길로 우리가 오랜 기간 광야를 걸었을지라도.
괴반乖反¹
‘괴반’은 ‘어그러져 틀린 상태에 있음’이라는 뜻으로, ‘배반’의 의미도 함께 갖는 표현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