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차 마을에서
첫째 딸과는 이준 열사 기념관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헤어졌다. 딸은 위트레흐트 기숙사로 돌아갔다. 내일 서머스쿨 수료식을 마치고 암스테르담 안네 프랑크의 집 근처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어젯밤 인천공항을 떠나 새벽에 암스테르담에 닿았고, 곧장 헤이그로 가서 평화궁과 마우리츠하이스와 이준 열사 기념관을 방문했다. 다시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와 호텔에 짐을 풀었는데 아직 오후 네 시였다. 첫날부터 강행군이다.
그런데 방에서 잠깐 쉬고 나니 다시 몸이 움직인다. 창밖은 여전히 환했다. 네덜란드의 여름도 해가 늦게 진다.
네덜란드 하면 풍차 아닌가. 여기까지 와서 풍차를 보지 않고 갈 수는 없었다. 동화 속에서 걸어 나온 것 같다는 그 마을, 잔세스칸스. 호텔이 있는 슬로테르데이크역에서 기차로 얼마 걸리지 않았다.
역에서 내려 이십 분쯤 걸어가니 마을 어귀에서 첫 번째 풍차가 모습을 드러냈다. 커다란 날개가 저녁 하늘을 가르고 서 있다. 그 앞에 서니 오래된 궁금증이 다시 올라왔다. 왜 하필 이 나라에 풍차인가.
최근에 다시 읽은 이원복의 『먼나라 이웃나라』 네덜란드 편에 답이 있었다. 네덜란드라는 이름이 '낮은 땅'이라는 뜻이란다. 땅 상당 부분이 바다보다 낮다. 여기 사람들에게 물은 구경거리가 아니라 살고 죽는 문제였다.
그래서 바다에 둑을 쌓았다. 둑 안에 갇힌 물을 퍼내야 땅이 생긴다. 그 물을 퍼 올린 게 풍차다. 몇 년씩 쉬지 않고 돌려야 마른 땅 하나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지금 이 마을이 서 있는 초록 들판도 그렇게 얻은 땅이다.
재미있는 건 그다음이다. 이 사람들은 바람으로 물만 퍼내지 않았다. 1594년, 한 풍차 주인이 날개의 회전을 톱의 움직임으로 바꾸는 장치를 만들어냈다. 사람이 종일 켜야 했던 통나무를 바람이 대신 켜기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배 만드는 속도가 몇 배로 빨라졌고, 그 배로 네덜란드는 바다를 장악했다.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가 조선 기술을 배우러 이 동네까지 찾아왔다고 한다.
기름을 짜는 풍차, 코코아를 가는 풍차, 곡식을 찧는 풍차. 바람이 하는 일은 계속 늘어났다. 물감 원료를 빻는 풍차도 있었다. 오늘 아침 헤이그 마우리츠하이스에서 본 진주 귀고리 소녀의 푸른 터번, 금보다 비쌌다는 그 파란색도 이런 풍차에서 갈려 나왔을 것이다. 헤이그의 그림이 이 마을 바람과 이어져 있는 셈이다.
한때 이 일대에 육백에서 칠백 개의 풍차가 돌았다고 한다. 산업혁명이 오고 증기기관이 들어서면서 대부분 헐렸다. 지금 남은 것은 열두어 개, 그중 실제로 도는 것은 여섯 정도다.
마지막 남은 풍차들 앞에서 이런 생각을 적었다.
<풍차의 세월>
둑을 쌓고 물을 퍼내야
겨우 땅이 되는 낮은 나라.
치켜올린 날개가 내려올 때마다
물 한 줌이 뭍 한 뼘이 되었다.
증기가 그 일을 넘겨받자
바람은 천천히 일손을 놓았다.
남은 몇 기만 돌며
땅이 아니라 사람의 눈길을 붙잡는다.
오늘의 풍경이 된 저 날갯짓도
한때는 누군가의 치열한 전부였다.
저녁 일곱 시가 다 되어가는데도 해가 지지 않는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지 않았다. 관광객이 빠져나간 마을은 오히려 마을다웠다.
운하를 따라 걷다가 부두 끝에 앉았다. 수련이 떠 있는 물 위로 물닭 한 마리가 지나간다. 건너편에는 흰 창틀의 집 한 채, 물에 비친 그 집이 한 채 더.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는데 조카가 뒤에서 사진을 찍어주었다. 오늘 남은 사진 대부분이 그렇게 찍혔다.
풀숲에서 어미 오리가 새끼들을 데리고 나왔다. 앞장선 어미는 태연한데 뒤따르는 새끼들이 풀에 파묻혀 고개만 내민다. 새끼들은 아직 사람이 무서운가 보다.
초록색 목조 가옥들이 운하를 따라 늘어서 있다. 흰 창틀에 붉은 기와. 카타리나 호베라는 이름이 붙은 집 앞에 무료 치즈 체험 안내판이 서 있었다. 그 옆 아치형 나무다리 위에 올라섰다.
우유통을 실은 검은 수레가 풀밭에 놓여 있다. 그 너머로 초록 풍차가 서 있고, 사람들이 그 앞을 천천히 걸어간다. 여기서는 아직 무언가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다.
조금 더 걸어 나가니 넓은 목초지 건너로 풍차 네댓 개가 한꺼번에 눈에 들어왔다. 젖소 한 마리가 그 앞에서 풀을 뜯는다. 울타리에 기대어 한참을 바라봤다.
강가로 나가자 붉은 날개를 단 풍차가 나타났다. 초가로 덮인 몸통에 흰 천을 두른 날개. 그 뒤로 또 다른 풍차들이 강을 따라 늘어서 있다.
마지막으로 초록 풍차 아래에 섰다. 가까이서 보니 생각보다 훨씬 크다. 날개 하나가 사람 키의 몇 배는 된다. 저 날개가 사백 년 동안 돌았다.
돌아오는 길에 문득 생각했다. 암스테르담에는 왜 그렇게 운하가 많을까.
이유는 같았다. 낮은 땅이라서다. 물을 빼내려면 물길이 있어야 했다.
암스테르담을 북쪽의 베네치아라고들 한다. 그런데 두 도시는 좀 다르다. 베네치아는 원래 있던 물길 사이로 사람이 들어가 산 곳이고, 암스테르담은 사람이 직접 판 곳이다. 도시를 감싸는 반원 모양의 운하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운하와 풍차는 결국 같은 질문의 답이었다. 이 물을 어떻게 할 것인가.
낮은 땅에 사는 사람들은 바다를 원망하는 대신 바람을 빌렸다. 그렇게 만든 땅 위를 지금 내가 걷고 있다.
https://blog.naver.com/customs_man/224392487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