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던 소녀에게
반 고흐 미술관을 나와 안네 프랑크의 집으로 향했다. 낮 열두 시 예약이었다.
이 표를 구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방문일 여섯 주 전, 매주 화요일 현지 시각 오전 열 시에 일주일치 표가 한꺼번에 풀린다. 조카가 알람까지 맞춰두고 기다렸다가 겨우 예약에 성공했다.
프린센흐라흐트 263번지. 운하를 따라 늘어선 좁고 높은 집들 가운데 하나다.
우연히 찍은 사진 한 장에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뒤편 유리창에 비친 서쪽교회의 첨탑이 보였다. 안네가 은신처에서 그 종소리를 들었다고 일기에 적은 그 교회일 것이다.
사진 속 건물 유리벽에 안네의 얼굴이 크게 붙어 있었다. 1942년 5월에 찍은 사진이다. 그 옆에 일기의 한 구절이 적혀 있다. 좁은 새장에 갇힌 새 같은 안네의 처지가 그대로 느껴진다.
나는 이 방 저 방을 헤매고, 계단을 오르내린다. 날개가 뜯겨 나간 채 캄캄한 어둠 속에서 좁은 새장 창살에 몸을 부딪치는 새가 된 기분이다.
1943년 10월 29일
안으로 들어서자 벽에 사진 여덟 장이 붙어 있었다.
아빠 오토 프랑크, 엄마 에디트 프랑크, 언니 마르고트 프랑크, 그리고 안네 프랑크. 여기에 헤르만 판 펠스, 아우구스테 판 펠스, 페터 판 펠스, 프리츠 페퍼.
이 집 뒤편에 이 년 넘게 숨어 지낸 여덟 사람이다.
그중 살아서 돌아온 사람은 오토 프랑크 한 명뿐이다.
내가 읽은 『안네의 일기』에는 뒤의 네 사람이 다른 이름으로 나온다. 판 단 씨와 판 단 부인, 은신처에서 안네와 마음을 나눈 그 아들 페터 판 단, 그리고 치과의사 뒤셀.
안네는 1929년 6월 12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네 살 때 가족을 따라 네덜란드로 왔다.
열세 살이 되고 한 달도 지나지 않은 1942년 7월, 가족은 이 집 뒤편으로 숨어들었다. 은신처가 발각된 1944년 8월 4일까지 이 년 한 달을 그 안에서 살았다.
열세 살 생일에 일기장을 받았고, 그 뒤로 이 년 남짓 썼다. 일기장에는 키티라는 이름을 붙이고 편지를 쓰듯 적었다.
여행 전에 『안네의 일기』를 읽었다. 은신처의 공포나 죽음의 예감을 예상하고 펼쳤는데, 정작 마음에 남은 것은 다른 대목이었다.
사랑하는 키티! 내 취미와 관심사가 뭐냐고 물었지? 첫 번째는 글쓰기. 두 번째는 계보 연구하기. 세 번째 취미는 역사야. 네 번째는 그리스와 로마 신화. 나에겐 신화 바카라들도 많아. 아홉 명의 뮤즈 이름과 제우스 신의 일곱 애인 이름을 지금 당장 말해줄 수도 있어. 그 밖의 취미는 영화배우와 가족사진 모으기야.
1944년 4월 6일, 안네 프랑크 『안네의 일기』
글쓰기, 왕들의 계보 연구, 역사, 그리스 로마 신화, 가족사진 모으기.
내 취미와 똑같다.
나는 아홉 뮤즈의 이름을 외우지도 못하는데, 안네는 제우스의 연인들 이름까지 줄줄 왼다고 한다. 대단하다.
한 달 뒤 일기에는 할 일이 너무 많아 바쁘다고 적혀 있다. 갈릴레이 전기를 내일까지 다 읽어야 하고, 테세우스와 오이디푸스와 헤라클레스의 이야기를 정리해야 하고, 미론과 페이디아스도 공부해야 신과 조각상을 헷갈리지 않는다고. 그러다 성경 공부를 깜빡했다며 스스로를 나무란다.
나도 그렇다. 신화를 단원별로 정리해 두고도 읽을 바카라은 자꾸 쌓이고, 답사도 가야 하고, 성경 공부도 하고 싶다. 쓸데없이 바쁘다.
팔십 년의 시간을 두고 열네 살 소녀와 쉰 넘은 남자의 취미가 이렇게 겹친다.
다만 그 아이가 이 글을 쓴 곳은 창문도 열지 못하는 방이었다. 그것은 취미가 아니라 그 시간을 견디게 해준 힘이었을 것이다.
이 여행을 준비하며 짐 속에 그리스 로마 신화바카라을 넣으려고 했다.
안네가 은신처에서 신화를 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날부터 품어온 마음이었다. 전쟁의 한복판에서 신화의 세계로 들어갔을 소녀를 생각하면 그 장면이 쉽게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 아이가 머물렀던 방에 가서 같은 바카라을 건네고 싶었다.
그러나 바카라은 한국에 두고 왔다. 애초에 건넬 방법이 없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나는 그 아이가 읽었다는 바카라을 읽고 왔다. 같은 바카라을 읽은 사람으로 이 집에 섰다는 것, 그거면 되었다.
회전하는 바카라장 뒤에 문이 있다. 그 문으로 들어가면 은신처다.
계단이 정말 가파르다. 조심조심 올라갔다. 그 위가 안네와 가족, 판 단 가족, 그리고 치과의사 뒤셀 여덟 사람이 이 년 넘게 산 곳이다.
마룻바닥에서 삐걱 소리가 났다. 낮에는 아래층 사무실 사람들이 들을까 봐 발소리도 내지 못했다고 한다. 화장실도 쓰지 못했다.
그 일상을 어떻게 견뎠을까. 나라면 한 달도 버티기 어려웠을 것 같은데, 여덟 사람이 이 년을 그렇게 살았다.
안네의 방 벽에는 화보들이 그대로 붙어 있었다. 영화배우 사진, 잡지에서 오린 그림들. 열대여섯 소녀의 취향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유리로 덮어 그때 그대로 보존해 두었다.
전쟁이 끝난 뒤 아버지 오토가 이 집을 다시 찾았을 때, 그 사진들만은 떼지 말아 달라고 했다고 한다.
안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 방들에 대해 쓸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어쩌면 그게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나가는 길에 안네의 작은 조각상이 서 있었다. 그 뒤 벽에 안네의 손글씨를 본뜬 문장이 크게 비쳐 있었다.
Eens zal deze verschrikkelijke oorlog toch wel aflopen, eens zullen wij toch weer mensen en niet alleen Joden zijn!
언젠가는 이 끔찍한 전쟁도 끝이 날 테고, 언젠가 우리는 그저 유대인이 아니라 다시 인간으로서 살아가게 될 거예요!
1944년 4월 11일
다시 인간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말. 그때 유대인은 인간으로 여겨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열다섯도 되지 않은 아이가 그것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아프다.
1944년 8월 은신처가 발각된 후 안네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갔다가 1945년 2월 말에서 3월 초 사이, 독일 베르겐벨젠 수용소에서 세상을 떠났다. 열다섯이었다. 정확한 날짜는 남아 있지 않다. 수용소에 퍼진 발진티푸스로 언니 마르고트와 비슷한 시기에 숨진 것으로 본다.
영국군이 그 수용소를 해방시키기 불과 몇 주 전이었다.
밖으로 나오니 볕이 좋았다. 아름다운 운하가 바로 집 앞에 펼쳐져 있다.
그 아이가 이 년 넘게 보지 못한 풍경이다.
나는 이 모든 것을 매일 당연하게 누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