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마우리츠하이스

진주 귀고리 소녀를 만나다

by간서치

소설 한 권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 헤이그 평화궁을 나와 미술관에 도착하니 여덟 시 반, 개관까지는 삼십 분이 남아 있었다. 사람이 몰리기 전에 조용히 보고 싶어 아홉 시로 예약을 해두었다.


몇 개월 전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진주 귀고리 소녀』를 읽었다. 17세기 네덜란드 델프트, 가난한 집 딸 그리트가 화가 베르메르의 집에 식모로 들어가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주인과 하인, 화가와 모델, 남자와 여자. 그 모호한 경계 때문에 그리트는 집안사람들의 질시를 받는다.


소설에서 가장 숨 막히는 장면은 그리트가 진주 귀고리를 다는 대목이다. 식모가 만져볼 수조차 없던 물건이 자기 귓불에 걸린다. 베르메르가 직접 귀를 뚫어주고, 그리트는 숨이 막혔다고 말한다. 물속에서 숨을 참는 것 같았다고. 귀고리를 단 뒤에도 진주의 무게 때문에 귀가 타는 듯했다고.


그림 한 점을 보고 이런 장편을 지어낸 작가의 상상력이 놀라웠다. 이 소설 리뷰 글에 이렇게 적어 두었다. 언젠가 네덜란드에 간다면 주인공이 거닐었던 헤이그 인근 델프트의 운하와, 마우리츠하이스 미술관을 엮어서 가봐야겠다고.


그 문장을 쓴 지 몇 개월 만에, 나는 그 미술관 문 앞에 서 있다. 적어두면 이루어지는 일도 있다.




미술관에 들어서기도 전이었다. 정문에 걸린 대형 사진 속 소녀와 먼저 눈이 마주쳤다. 어깨너머로 고개를 돌린 채, 무언가 말을 하려다 만 듯한 표정. 개관을 기다리는 동안 그 시선에서 눈을 떼기 어려웠다.


그 순간을 사진 한 장과 짧은 글로 남겨보았다.




소설을 읽으며
그리던 너를 만나러
마침내 여기까지 왔다.

미처 들어서기도 전에
문 앞에 선 네가
먼저 나를 돌아보는구나.

사백 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나도
그 귓불의 진주는
여전히 무겁게 걸려 있구나.

신분의 벽 너머
스칠 수조차 없었던
진주 귀고리.

그 귀한 것을
귓불에 얹었을 때
너는 숨이 막혔다 했다.

너의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벅차오르는 숨을 삼키는 건
나다.

빛나는 아름다움 뒤에 고인
삶의 무게를 알았기에
쉽사리 발길을 떼지 못한다.




이 건물은 원래 미술관이 아니었다. 17세기에 나사우지겐의 요한 마우리츠 백작이 자신의 저택으로 지은 건물이었다. 마우리츠의 집, 그래서 마우리츠하이스다. 건물은 이후 여러 용도로 쓰이다가 1820년 네덜란드 정부가 사들였고, 1822년에 왕립 회화 컬렉션을 소장한 미술관으로 문을 열었다. 저택에서 미술관이 되기까지 이백 년 가까운 시간이 걸린 셈이다.


안에 들어가 보니 규모는 생각보다 작았다. 소장품이 854점이라고 하는데, 세계적인 명성에 비하면 아담한 편이다. 하지만 그 작은 공간 안에 렘브란트의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파브리티우스의 〈황금방울새〉가 함께 걸려 있다.


맨 먼저 베르메르가 1665년경에 그린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보러 곧장 위층으로 향했다.


막상 마주한 그림은 놀라울 만큼 작았다. 소설 속 상상과 사진으로 볼 때는 그렇게 커 보였는데, 실물은 노트북만 한 크기였다. 캔버스 안의 소녀는 여전히 고개를 돌린 채 이쪽을 보고 있었다. 검은 배경 위에 떠 있는 얼굴, 푸른 터번, 그리고 귀에 매달린 진주 하나.


먼저 눈이 간 것은 귀에 걸린 진주였다. 소설에서 가장 숨 막히는 장면이 이 물건에서 나온다. 식모가 만져볼 수조차 없던 것을 자기 귓불에 다는 장면. 베르메르가 직접 귀를 뚫어주고, 그리트는 물속에서 숨을 참는 것 같았다고 말한다.


소설을 읽는 내내 한 가지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베르메르는 이 소녀를 사랑한 것이 아닐까. 작가는 끝내 그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손끝이 귓불에 닿았다고만 쓴다. 그런데 그 문장이 어떤 고백보다 오래 남는다.


그림 속 진주는 실제 진주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고 한다. 유리나 주석 합금이었을 거라는 분석이 있다. 그래도 상관없다. 소설 속 그리트에게 그 무게는 충분히 무거웠으니까.


그리고 소녀의 머리에 두른 터번의 파란색이 예사롭지 않다. 울트라마린이라 불리는 안료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캔 청금석을 갈아 만든다. 당시 금보다 비쌌다. 성모 마리아의 옷에나 쓰던 색이다.


그런데 베르메르는 그 색을 이름 모를 소녀의 머릿수건에 썼다. 왜 그랬을까. 이 그림을 둘러싼 오랜 궁금증 중 하나가 그것이라고 한다. 모르는 것이 많은 그림에는 이야기가 붙기 마련이다. 슈발리에 작가가 이 그림에서 소설 한 편을 길어 올린 것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베르메르가 평생 남긴 그림은 서른일곱 점뿐이라고 한다.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그 몇 안 되는 그림 중 하나가 지금 내 눈앞에 있었다.


소설 속 상상의 이야기가 없었다면 나는 이 그림 앞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읽은 것과 본 것이 섞여 나만의 스토리가 하나 쌓였다.




같은 미술관에 또 하나의 작은 그림이 걸려 있다. 카렐 파브리티우스의 〈황금방울새〉. 손바닥을 조금 넘는 나무판 위에 새 한 마리가 앉아 있고, 가느다란 사슬이 발목을 묶고 있다.



이 그림에는 사연이 있다. 1654년 델프트의 화약고가 폭발했다. 소설 『진주 귀고리 소녀』의 그리트가 거닐었던 바로 그 도시다. 렘브란트에게 배웠고 더 오래 살았다면 스승을 넘어섰을지 모른다던 파브리티우스는 화약고 근처 작업실에 있었다. 서른두 살이었다. 작업실의 그림들도 대부분 함께 사라졌다.


〈황금방울새〉는 그가 죽은 바로 그해에 그린 그림이다. 그리고 살아남았다.


사슬에 묶인 채 이쪽을 바라보는 작은 새. 사연을 알고 보니 그 눈이 다르게 보였다.


1654년의 새와 1665년의 소녀. 십 년쯤 사이를 두고 델프트에서 그려진 두 그림이 지금은 같은 미술관에 걸려 있다.




같은 미술관에 렘브란트의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도 있다. 1632년 작품으로, 앞의 두 그림과 달리 벽 하나를 차지할 만큼 크다. 스물다섯 렘브란트가 처음으로 자기 본명을 서명해 넣은 그림이자, 그를 암스테르담 최고의 초상화가로 만들어준 출세작이다.



스승의 큰 그림 앞에 서 있다가 제자의 작은 새를 떠올렸다. 렘브란트는 예순셋까지 살며 수백 점을 남겼고, 파브리티우스는 서른둘에 몇 점만 남기고 사라졌다. 같은 건물 안에 스승과 제자 두 사람의 사연이 나란히 펼쳐져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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