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의 독립은 권력과 싸우는 정치적 면허가 아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다시 정치의 한복판에 섰다.
이번에는 대법관 제청 문제다. 이재명 대통령이 조희대 대법원장이 제청한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의 임명동의안을 사실상 반려하고 재제청을 요구하자, 조 대법원장은 22일 끝내 이를 거부했다. 그는 대통령의 재제청 요구 문서에 구체적인 사유와 헌법적 근거가 없다며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청와대는 즉각 대통령의 임명권을 무력화하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헌정사상 보기 드문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정면충돌이다.
문제는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것은 사법부 독립이다. 물론 사법부의 독립은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대통령도 국회도 사법부의 재판에 부당하게 개입해서는 안 된다. 조 대법원장 역시 법원의 날 기념식에서 법원이 정치권력이나 슬롯세력, 소송 당사자로부터 부당한 간섭을 받지 않고 헌법과 법률에 따라 중립적으로 재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원칙 자체를 부정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사법부의 독립과 대법원장의 정치적 존재감은 전혀 다른 문제다.
지난해부터 조희대 대법원장을 둘러싼 논란이 커진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2025년 5월 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당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던 이재명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대법원 공식 판결 기록에 따르면 사건은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에 관한 사건이었다.
판결의 법률적 당부는 법률가들이 판단할 문제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을 대법원이 대단히 빠른 속도로 처리했다는 사실 자체가 거대한 정치적 파장을 만들었다. 당시 비판자들은 이를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법적 판단이라고 주장했고, 반대편에서는 법원이 법률에 따라 사건을 처리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이 논쟁은 지금까지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대통령이 바뀌었다.
그리고 조희대 대법원장은 새 정부와 다시 충돌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국민이 묻는 것은 단순한 대법관 한 사람의 제청 문제가 아니다.
“대법원장은 누구와 싸우고 있는가?”
사법부가 대통령과 충돌하는 것은 그 자체로 잘못이 아니다. 오히려 대통령의 권력이 헌법을 넘어설 경우 사법부는 당연히 제동을 걸어야 한다. 문제는 그 충돌이 어떤 원칙과 절차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느냐이다.
이번 사건에서 조 대법원장은 대법관 제청권의 독립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청와대는 대법관 임명권자인 대통령과의 실질적 협의 없이 대법원장이 일방적으로 후보자를 제청한 것이 문제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청와대는 손봉기 후보자 제청 과정에서 충분한 협의가 없었다는 이유로 재제청을 요구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가 옳으냐를 단순히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더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
왜 대한민국의 최고 사법기관이 대법관 한 사람의 인선을 둘러싸고 대통령과 정면충돌해야 하는가.
대법관 한 자리의 공백은 이미 200일을 넘겼다. 노태악 전 대법관이 지난 3월 퇴임한 뒤 후임이 채워지지 않았고, 이는 2000년 이후 가장 긴 공백이다. 대법관 12명이 담당해야 할 상고심 사건을 11명이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재판 지연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법원은 권력투쟁의 경기장이 아니다.
더구나 대법원은 정치적 승부를 벌이는 기관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 국민에게 비치는 모습은 어떤가.
대법원장은 “사법권 독립”을 말하고 대통령실은 “대통령의 임명권”을 말한다. 여당은 대법원장의 사퇴나 탄핵 가능성을 거론하고 야당은 조 대법원장을 사법부 독립의 상징처럼 옹호한다. 결국 법률적 쟁점이 정치적 진영논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이것이 과연 사법부 독립의 모습인가.
더 심각한 문제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정치적 행보로 읽힐 수 있는 일련의 장면들이 서로 연결되고 있다는 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조희대 후보자를 대법원장으로 지명했을 때 윤 대통령은 그를 “최후의 보루인 최고법원을 이끌어 갈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조 후보자 역시 당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사법권 독립과 공정한 재판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이제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윤석열 정부의 사람이라는 정치적 이미지를 벗어나는 것도 아니고, 이재명 정부와 싸우는 것도 아니다.
오직 법과 절차로 자신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거꾸로 가고 있다.
2025년에는 대선을 앞두고 이재명 후보 사건을 둘러싸고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섰고, 2026년에는 이재명 대통령과 대법관 제청 문제로 다시 충돌하고 있다. 이 두 사건이 법적으로 전혀 다른 사안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국민이 이를 하나의 정치적 서사로 받아들이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
바로 이것이 사법부가 가장 경계해야 할 지점이다.
법관에게 정치적 의도가 있었느냐는 것은 함부로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법관의 행동이 정치적으로 어떤 결과를 만들어냈는지는 분석할 수 있다.
그리고 조희대 대법원장의 경우 그 결과가 지나치게 정치적이다.
사법부가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명제는 맞다.
그러나 사법부 독립은 대법원장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대법관 제청권 역시 헌법과 법률이 정한 권한이다. 그 권한이 대통령과의 협의 관행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지는 별도의 법적·헌법적 논쟁이다. 이번 사태가 결국 헌법재판소의 판단이나 법적 절차로 이어질 가능성이 거론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적 구호가 아니다.
“조희대를 탄핵하라”도 아니고 “이재명 정부가 사법부를 장악한다”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권한의 경계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다.
대통령은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하고, 대법원장은 대법원장의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 그리고 두 권력이 충돌할 때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어느 진영의 목소리가 큰가가 아니라 헌법과 법률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에게도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말 사법부 독립을 지키려는 것이라면, 왜 국민에게 자신의 행동이 특정 정치세력과의 대립으로 보이는지 설명해야 한다.
왜 대법관 한 자리의 제청을 둘러싸고 대통령과 정면충돌해야 하는지도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2025년 대선 직전 이재명 후보 사건을 둘러싼 대법원의 초고속 판단과 이번 대법관 제청 거부가 서로 아무런 정치적 맥락도 없는 독립적인 사건이라는 것을 국민에게 납득시켜야 한다.
사법부는 설명할 바카라임이 있다.
판결의 독립성과 법관의 양심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최고 사법기관의 결정이 슬롯 전체에 미치는 정치적 효과까지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정말 윤석열 전 대통령의 길을 걷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헌법이 부여한 사법부의 권한을 지키려는 것인지는 조 대법원장 자신이 보여줘야 한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사법부가 정치권력과 싸우는 순간마다 그것을 사법부 독립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대통령과 싸우는 것 자체가 독립은 아니다.
권력의 편에 서지 않는 것이 독립이고, 자신에게 유리한 권력에도 불리한 권력에도 동일한 법적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독립이다.
그 원칙이 무너지는 순간 대법원장은 헌법의 수호자가 아니라 정치적 갈등의 한복판에 선 또 하나의 권력자가 된다.
그리고 그때 국민이 보게 되는 것은 ‘사법부 독립’이 아니라 ‘법꾸라지 정치’일 수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마지막으로 선택해야 할 길은 권력과의 싸움이 아니다.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헌법과 법률로 자신의 정당성을 증명하는 길이다.
그것이 실패한다면 역사에 남는 것은 ‘강한 대법원장’이 아닐 것이다.
정치의 한복판에서 스스로를 소모한 대법원장일 가능성이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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