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의 언행을 소비하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슬롯가 되었다
한소희가 말했다. “가는 데는 순서가 없으니까.”
지난 17일 MBC 표준FM ‘손석희의 12시’에서 영화 ‘인턴’을 홍보하던 한소희는 최민식이 젊음이 부럽다고 말하고, 손석희가 자신도 최민식과 같은 입장에서 젊음이 부럽다고 하자 이렇게 농담했다. 순간 손석희가 “그런 말은 하시면 안 된다”고 웃으며 제지했고, 한소희는 곧바로 “죄송하다”라고 사과했다. 방송 전체의 맥락을 보면 한순간의 부적절한 농담이었다. 더구나 한소희는 이어 최민식에게서 “진짜 예술을 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았다고 말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선배에 대한 존경을 표현했다.
그런데 우리 슬롯는 이 짧은 장면 하나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누군가는 “말실수”라고 하고, 누군가는 “무례”라고 하고, 또 누군가는 과거의 사건까지 끌어와 “역시 또 입이 문제”라고 한다. 한 사람의 수십 분짜리 대화에서 나온 한 문장이 전체 인간을 규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 한국의 연예 소비문화가 가진 가장 불편한 풍경이다.
우리는 연예인을 더 이상 사람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콘텐츠로 바라본다. 오늘 재미있으면 소비하고, 내일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버린다. 오늘의 스타가 내일의 조롱거리가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몇 시간도 필요하지 않다. 한마디가 영상이 되고, 영상이 짧은 클립이 되고, 클립이 제목이 되고, 제목이 댓글을 부르고, 댓글이 다시 새로운 기사가 된다. 결국 한 사람의 인격은 몇 초짜리 영상과 몇 줄짜리 댓글 속에서 재단된다.
한소희의 경우는 이 구조가 얼마나 잔인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2024년 류준열과의 열애를 둘러싼 논란 당시에도 그랬다. 혜리가 SNS에 “재밌네”라는 세 글자를 올렸고, 한소희가 “저도 재밌네요”라고 반응하면서 사적인 관계에 관한 논쟁이 폭발했다. 이후 한소희는 자신의 대응이 경솔했다며 사과했고, 결국 블로그를 닫는 상황까지 갔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정말 그렇게까지 많은 사람이 그들의 사생활을 알아야 했던 것인가.
누가 누구와 언제 헤어졌고, 언제 새로운 사람을 만났으며, 인스타그램의 세 글자가 누구를 겨냥했는지를 수많은 사람들이 분석하고 추측했다. 당사자들의 감정은 어느 순간 대중의 오락거리가 됐다. 심지어 언론에서는 이를 ‘재밌네 대첩’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한 사람의 연애와 감정의 충돌이 ‘대첩’이라는 이름의 엔터테인먼트가 된 것이다.
프랑스 대학 논란도 마찬가지다. 한소희가 방송에서 프랑스 학교에 합격했지만 비자 문제로 가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하자, 이후 그 발언의 사실관계를 둘러싼 논란이 생겼다. 한소희는 방송 과정에서 이야기가 편집돼 와전된 것이라며 자신이 직접 설명했다.
물론 연예인도 자신의 말에 바카라임을 져야 한다. 유명인이 대중에게 공개적으로 말한 내용에 사실관계의 문제가 있다면 검증받을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이라면 비판받을 수도 있다. 이번 한소희의 발언 역시 좋은 농담이었다고 할 수는 없다. 특히 연장자 앞에서 죽음을 연상시키는 표현을 농담으로 사용한 것은 분명 신중하지 못했다.
그러나 비판과 소비는 다르다.
비판은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묻는다. 소비는 누군가의 실수를 재미있는 상품으로 만든다.
비판은 사건이 끝나면 끝난다. 소비는 과거의 사건을 다시 꺼내 새로운 사건에 붙인다.
비판은 인간에게 변화할 가능성을 남겨놓는다. 소비는 한 번 붙인 이미지를 평생 따라다니게 만든다.
지금 우리의 연예문화에는 이 차이가 사라지고 있다.
연예인이 실수하면 사과하면 된다. 그런데 우리는 사과를 받아들이는 데도 인색하다. 사과가 나오면 “진정성이 없다”라고 하고, 해명하면 “변명한다”라고 하고, 침묵하면 “뻔뻔하다”라고 한다. 무엇을 해도 다음 공격의 재료가 된다.
그러니 연예인에게 인간적인 성숙을 요구하면서도 정작 그들이 성숙할 시간은 주지 않는다.
이것은 모순이다.
우리는 연예인에게 완벽함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그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솔직한 사람을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솔직한 말을 하면 공격한다. SNS로 팬들과 가까이 소통하기를 원하면서도 한마디 잘못하면 그 소통의 창구를 닫으라고 요구한다.
결국 우리가 원하는 연예인은 사람이 아니라 ‘관리된 이미지’인지도 모른다.
웃을 때 웃고, 울 때 울고, 질문에 준비된 답을 하고, 정치적·슬롯적·사적 논란을 일으키지 않고, 팬들에게 친절하면서도 지나치게 솔직하지 않고, 인간적이면서도 인간적인 실수는 하지 않는 사람.
그런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연예인은 우리와 똑같이 실수하고 화를 내고 질투하고 기뻐하고 때로는 어리석은 농담을 한다. 다만 그들의 실수에는 카메라가 따라붙고, 캡처 버튼이 있고, 수백만 명의 관객이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우리 슬롯가 이러한 소비구조를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실수가 올라오면 우리는 생각하기 전에 클릭한다. 맥락을 보기 전에 제목을 읽는다. 전체 방송을 보기 전에 20초짜리 영상을 본다.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전에 댓글을 읽는다. 그리고 댓글의 분노가 충분히 커지면 그것을 여론이라고 부른다.
이제 연예인은 작품으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논란으로 소비된다.
배우가 몇 년 동안 준비한 영화보다 인터뷰에서 한 문장이 더 큰 관심을 받는다. 가수가 수년 동안 만든 음악보다 방송에서 한 농담 하나가 더 오래 회자된다. 배우의 연기보다 연애가 중요하고, 작품보다 사생활이 중요하고, 창작보다 SNS가 중요해진다.
이것은 단순한 연예계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을 대하는 우리 슬롯의 태도가 변했다는 신호다.
우리는 타인을 너무 빨리 판단하고 너무 쉽게 버린다.
정치인도 그렇고, 기업인도 그렇고, 교수도 그렇고, 연예인도 그렇다. 한 번의 실수로 사람 전체를 규정한다. 어제까지 박수를 보내던 사람이 오늘은 조롱의 대상이 된다. 팬이 안티가 되는 데도 별다른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한소희가 이번에 잘못한 것은 ‘말’이지 ‘인간 전체’가 아니다. 그 말을 문제 삼을 수는 있지만 그 말 하나로 사람 전체를 규정할 수는 없다.
더구나 이번 방송에는 중요한 장면이 하나 더 있었다. 한소희는 최민식에게서 자신이 진정한 예술가가 무엇인지 배웠다고 말했다. 자신도 예술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최민식을 보면서 진짜 예술을 하는 사람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 말까지 함께 봐야 한다.
그것이 전체 인간이다.
실수하는 한마디도 인간이고, 선배를 존경하는 마음도 인간이다. 순간적인 농담도 인간이고,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죄송하다”라고 말하는 것도 인간이다.
우리는 왜 그중에서 가장 자극적인 한 장면만 골라 그 사람의 전부라고 말하는가.
연예인을 소비하는 슬롯는 결국 인간을 소비하는 슬롯가 된다.
오늘 우리가 한소희의 한마디를 소비하고 웃고 비난하고 버린다면, 내일은 또 다른 누군가의 한마디를 소비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가 내뱉은 말 한마디가 같은 방식으로 소비될 수도 있다.
문제는 한소희가 “가는 데는 순서가 없다”라고 말한 것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우리가 사람을 버리는 데 너무 익숙해졌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몇 초짜리 영상으로 판단하고, 몇 줄의 기사로 규정하고, 댓글 몇 개로 심판하고, 새로운 논란이 나타나면 이전의 논란까지 다시 끌어내어 사람을 완성된 ‘캐릭터’로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그것을 여론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을 소비할 권리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아니다.
연예인은 공인이지만 우리의 소유물이 아니다. 대중에게 사랑받는 직업을 가졌다고 해서 인간으로서의 존엄까지 대중에게 양도한 것은 아니다.
비판할 수 있다. 실수를 지적할 수도 있다. 때로는 바카라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끝낼 줄도 알아야 한다.
사람에게는 다시 살아갈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소희의 이번 말실수는 지나간다. 아마 본인에게도 꽤 오래 기억될 것이다. 다음에는 그런 농담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충분하지 않은가.
우리가 정말 고민해야 할 것은 한소희의 말실수가 아니다.
사람의 실수를 발견하는 순간 그것을 하나의 콘텐츠로 만들고, 그 콘텐츠를 소비하면서 타인의 인격까지 함께 소비해버리는 우리의 가벼움이다.
사람을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사람을 소비하는 데는 몇 초면 충분하다.
지금 우리 슬롯가 너무 쉽게 선택하고 있는 것은 이해가 아니라 소비다.
그리고 인간을 가장 쉽게 소비하는 슬롯는 결국 인간을 가장 쉽게 버리는 슬롯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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