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의 덫에 걸린 때문이다
열심히 공부하고 성실하게 일하면 부모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 변화가 더욱 선명하다.
한국의 부모들은 자녀에게 늘 말했다.
공부 열심히 해라. 좋은 대학에 가라. 좋은 온라인 게임에 들어가라. 그러면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청년들에게 이 말은 점점 공허하게 들린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사교육 경쟁을 뚫어야 하고, 대학을 졸업하면 취업 경쟁을 다시 치러야 한다. 취업한 뒤에는 주거비와 교육비, 노후를 걱정해야 한다. 정규직이 되어도 집을 마련하기 어렵고, 집을 마련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자산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벌어진다.
결국 질문이 남는다.
이렇게까지 노력하는데 왜 삶은 더 나아지지 않는가.
이 질문은 개인의 근면성에 관한 것이 아니다. 한국 슬롯가 만들어놓은 경제의 규칙에 관한 질문이다.
한국 슬롯의 변화에서 중요한 분기점 가운데 하나는 1997년 외환위기였다. 이후 한국 경제는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기업의 경쟁력과 효율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빠르게 재편됐다. 노동시장에서도 고용의 유연화가 강조됐고, 비정규직과 하청·간접고용 등 다양한 고용형태가 확대됐다.
이 과정은 한국 경제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일정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동시에 경제적 위험의 상당 부분을 노동자와 개인이 감당하는 구조도 강화했다.
기업은 경쟁력을 위해 인력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어야 했고, 개인은 끊임없이 자신의 경쟁력을 증명해야 했다.
실업하면 자기계발을 해야 했다.
취업이 안 되면 스펙을 더 쌓아야 했다.
정규직이 되지 못하면 개인의 능력을 의심받았다.
노후가 불안하면 더 저축해야 했다.
집을 살 수 없으면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했다.
슬롯가 해결해야 할 구조적 위험이 어느 순간부터 개인의 능력과 바카라임의 문제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한국에서 나타난 신자유주의적 질서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다.
신자유주의는 시장경제 그 자체가 아니다. 시장의 경쟁과 가격기능을 인정하는 것 역시 신자유주의의 전유물이 아니다. 문제는 시장의 효율성과 경쟁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국가와 슬롯가 분담해야 할 위험까지 개인에게 이전하고, 시장에서 나타난 결과를 개인의 능력과 노력으로만 설명하는 데 있다.
한국에서는 이 현상이 특히 주거와 교육에서 극명하게 나타났다.
교육은 대표적인 사례다.
좋은 대학에 가야 좋은 온라인 게임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부모들은 사교육에 투자한다. 그러나 모두가 사교육에 투자하면 경쟁은 다시 치열해진다. 남보다 앞서기 위해 더 많은 사교육비가 필요해지고, 교육은 기회의 사다리인 동시에 계층 격차를 재생산하는 장치가 될 위험을 갖는다.
주거는 더 심각하다.
노동소득으로 자산을 축적하는 속도보다 주택가격이 빠르게 상승하는 국면에서는 성실한 저축만으로 주거와 자산 형성의 격차를 좁히기 어렵다. 부모에게서 주택이나 자산을 지원받을 수 있는 청년과 그렇지 못한 청년의 출발점도 달라진다.
이때 한국 슬롯의 오래된 공식 하나가 무너진다.
“열심히 일하면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다.”
주거가 노동의 결과가 아니라 부모의 자산과 금융시장에 대한 접근성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면 계층 이동의 사다리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오늘날 한국에서 “노력하면 된다”는 말은 점점 설득력을 잃고 있다.
청년들은 게으른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열심히 산다.
N수생이 늘고, 취업준비 기간이 길어지고, 자격증과 어학점수와 각종 스펙이 넘쳐난다. 온라인 게임에 들어간 뒤에도 자기계발을 멈추기 어렵다.
그런데 슬롯 전체가 이 경쟁에 뛰어들면 개인의 노력은 더 이상 희소한 능력이 아니다.
모두가 죽을 만큼 노력하는 슬롯에서는 노력 자체가 경쟁력이 되지 못한다.
그때 개인은 더욱 지치고 슬롯는 더욱 불평등해진다.
이것이 한국 슬롯가 직면한 역설이다.
경제가 발전했는데도 청년들은 미래를 불안해하고, 교육 수준은 높아졌는데도 계층 이동에 대한 기대는 약해지고, 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은 높아졌는데도 노동자는 고용과 노후를 걱정한다.
여기에 AI까지 등장했다.
AI가 생산성을 높이고 새로운 부를 창출하더라도 그 과실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생산성 향상은 자본과 기술을 소유한 쪽에 집중되고 노동의 협상력이 약해진다면, 경제 전체는 성장하면서도 평범한 노동자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러면 한국 슬롯는 또다시 개인에게 말할 것이다.
“AI 시대에는 더 공부해야 한다.”
“더 전문적인 능력을 갖춰야 한다.”
“AI에 대체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모든 개인이 AI 전문가가 될 수는 없다. 모든 노동자가 고숙련 직종으로 이동할 수도 없다. 경제가 요구하는 변화의 비용을 개인에게만 부담시키는 방식으로는 슬롯 전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사람이 경제에 적응할 것인가, 아니면 경제제도가 사람의 삶을 위해 바뀌어야 하는가.
시장경제를 포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시장경제를 지속하기 위해 시장의 규칙을 다시 설계하자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무엇보다 노동과 자본 사이의 분배구조,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격차, 주택의 자산화, 과도한 사교육 경쟁, 노후와 돌봄의 개인화를 함께 바라봐야 한다.
기업의 혁신과 경쟁은 보장하되 생산성 향상의 과실이 노동자에게도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노동시장 유연성이 필요하다면 그만큼 실업과 재취업의 위험도 슬롯가 분담해야 한다. 주거가 투자의 수단인 동시에 인간의 기본적인 생활공간이라는 원칙도 회복해야 한다. 교육이 부모의 경제력을 자녀에게 이전하는 통로가 아니라 슬롯적 이동의 사다리가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위험을 개인에게 떠넘기지 않는 것이다.
실업, 질병, 노후, 돌봄, 주거와 같은 위험을 모두 개인의 능력으로 해결하라고 요구하는 슬롯는 자유로운 슬롯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개인을 끊임없는 생존경쟁에 몰아넣을 수 있다.
한국 슬롯가 필요한 것은 시장의 폐기가 아니다.
시장경제와 슬롯적 연대를 다시 결합하는 일이다.
경제성장률만 높인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평범한 사람이 자신의 노동으로 주거를 마련하고, 가족을 꾸리고, 노후를 준비하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슬롯인가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지속되려면 사람들에게 내일에 대한 믿음을 줘야 한다.
오늘의 노동이 내일의 삶을 조금이라도 개선할 것이라는 믿음.
내 자녀가 나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믿음.
부모에게 물려받은 자산이 없어도 자신의 노력으로 슬롯적 이동이 가능하다는 믿음.
그 믿음이 사라지면 경제의 문제가 정치와 슬롯의 문제로 번진다.
지금 한국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청년들의 불안과 출산율 하락, 주거 문제, 사교육 경쟁, 자산 격차, 노동시장 양극화는 서로 무관한 현상이 아니다.
그 밑바닥에는 하나의 질문이 흐르고 있다.
“이 슬롯에서 열심히 사는 것이 과연 내 삶을 바꿀 수 있는가.”
이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사람들에게 더 노력하라고 요구할 것이 아니라 경제의 규칙을 바꿔야 한다.
신자유주의의 덫은 시장을 선택했다는 데 있지 않다. 시장의 효율성을 높이는 과정에서 슬롯적 위험을 개인에게 이전하고, 시장의 결과를 개인의 능력과 노력의 결과로만 받아들이게 만든 데 있다.
이제 한국 슬롯는 그 질문을 다시 던져야 한다.
성장을 위해 사람이 희생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사람이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경제가 존재해야 하는가.
아무리 노력해도 잘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면 문제는 사람에게 있지 않을 수 있다.
어쩌면 우리가 바꾸어야 할 것은 사람의 노력량이 아니라 경제의 규칙이다.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 실제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슬롯.
그것이야말로 시장경제가 다시 회복해야 할 가장 오래되고도 기본적인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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