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노리는 것은 ‘기축통화’의 지위보다 ‘결제 생태계’다
중국이 미국 달러에 도전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중국은 미국과의 통화전쟁을 선언하지 않는다. “위안화가 달러를 대체할 것”이라고 외치지도 않는다. 오히려 중국은 아주 느리고 조용하게 움직인다. 오늘은 카자흐스탄과 QR결제망을 연결하고, 내일은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디지털 위안화 결제를 연결한다. 그다음에는 중국 기업의 무역대금을 위안화로 결제하게 하고, 금융기관과 중앙은행이 중국의 결제 시스템을 이용하도록 만든다.
겉으로 보면 각각은 별개의 작은 사건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중국 특유의 ‘만만디’ 전략이다. 서두르지 않지만 한번 방향을 정하면 수십 년에 걸쳐 인프라를 깔아간다.
이번 카자흐스탄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카자흐스탄은 연내 중국과 QR코드 기반 국경 간 결제 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이다. 중국을 방문한 카자흐스탄 사람이 환전하거나 새로운 결제 앱을 설치하지 않고 자신의 금융 앱으로 QR코드를 찍어 물건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단순한 결제 편의성의 문제로 보면 핵심을 놓치게 된다. 위안화가 무역과 중앙은행의 외환보유액을 넘어 개인의 일상생활로 들어가는 통로가 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노리는 것은 달러를 한꺼번에 밀어내는 것이 아니다. 미국이 수십 년 동안 구축한 달러 중심의 국제금융질서를 정면으로 무너뜨리는 것은 비용도 크고 성공 가능성도 낮다. 중국은 훨씬 현실적인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중국과 거래하는 나라에서는 위안화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편리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기축통화 경쟁보다 훨씬 현실적인 전략이다.
현재 국제 외환보유액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압도적이다. IMF 자료를 보더라도 위안화가 달러를 단기간에 대체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중국의 자본시장 개방 수준과 금융시장 접근성에도 한계가 있고, 미국 국채시장과 글로벌 금융시장이 갖는 압도적인 규모와 신뢰를 중국이 단기간에 따라잡기는 어렵다.
그러나 중국이 반드시 달러를 대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이 해야 할 일은 중국과 거래하는 국가들이 달러를 거치지 않고 중국과 직접 거래할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것이다.
그 핵심에 중국의 국경 간 위안화 결제시스템인 CIPS가 있다. CIPS는 위안화의 국경 간 결제와 청산을 담당하는 중국의 금융 인프라다. 여기에 디지털 위안화와 국경 간 QR결제가 결합하면서 위안화가 금융기관과 대기업을 넘어 개인의 소비생활까지 내려오고 있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중국이 디지털 위안화를 국내용 결제수단에 머물게 하지 않고 국경을 넘어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발전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은 홍콩, 태국,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 등과 연결되는 새로운 디지털 결제 인프라 구축에도 참여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금융기술의 발전이 아니다. 세계 경제의 운영방식 자체가 달라질 가능성을 보여주는 변화다.
과거 국제무역에서는 상품이 국경을 넘어가면 달러를 중심으로 한 금융망을 통과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중국이 자국의 상품과 물류, 전자상거래, 결제와 금융을 하나의 생태계로 묶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중국은 달러를 없애지 않아도 된다. 중국과 거래하는 세계의 일정 부분을 달러 밖으로 이동시키면 된다.
이것이 중국식 패권의 특징이다.
중국은 미국이 가지고 있는 것을 그대로 빼앗으려 하기보다는 미국과 다른 생태계를 만들어 그 안으로 다른 나라를 끌어들이려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일대일로의 의미도 달라진다.
과거의 일대일로는 철도와 항만, 발전소와 도로를 건설하는 거대한 인프라 사업으로 이해됐다. 그러나 이제 그 위에 디지털 인프라와 금융 인프라가 올라가고 있다. 물류망이 연결되고 중국 기업이 진출하고 중국산 상품이 들어간다. 중국식 전자상거래가 확대되고 결제망이 연결되며 위안화가 결제수단으로 사용된다.
도로와 항만만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 돈과 데이터와 소비자의 생활이 연결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위안화의 국제화는 중앙은행의 결정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습관에 의해 진행될 수 있다.
카자흐스탄 사람이 중국에서 커피 한 잔을 사면서 위안화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않을 수 있다. 바로 그것이 중국이 원하는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통화의 국제화가 정치적 선언이 아니라 생활의 습관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