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이라고 다 같은 동맹이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당혹스러운 상황에 빠졌다. 수십 년 동안 미국과 안보·군사 협력을 강화했고 세계 최고 수준의 미국산 무기를 사들였다. 그러나 정작 전쟁의 위기가 닥치자 가장 믿었던 미국은 사우디가 기대했던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후티 반군에 대한 공습을 요청했지만 미국은 거부한 것으로 보도됐다. 미국은 사우디를 돕는 동시에 후티와도 직접 대화하고 있다.
사우디 입장에서는 허탈할 수밖에 없다. 미국산 F-15와 방공체계를 사고, 막대한 군사비를 지출하고, 미국과 전략적 협력관계를 구축해왔는데 정작 절체절명의 순간에 미국은 “그 전쟁이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는가”부터 계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을 단순히 미국의 배신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국제정치의 본질이 드러난 것이라고 봐야 한다.
국가에게 영원한 친구가 있다는 생각은 국제정치에서는 위험한 환상이다. 국가에는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 있는 것은 결국 자국의 이익이다. 동맹 역시 그 원칙에서 자유롭지 않다. 동맹은 우정의 계약이 아니라 이해관계의 결합이다.
미국은 세계 곳곳에서 그것을 보여줬다. 미국이 필요로 할 때는 동맹국과 협력하지만 전략적 필요가 바뀌면 동맹관계의 범위와 의무도 다시 계산한다. 2019년 시리아에서 미국이 쿠르드 세력에 대한 지원을 사실상 축소하면서 터키의 군사행동을 막지 못했던 사례는 이미 미국 동맹정바카라의 냉정한 현실을 보여준 바 있다. 아산정바카라연구원 역시 당시 미국의 시리아 철군과 쿠르드 문제를 ‘동맹 정치’의 대표적인 사례로 분석했다.
이번 사우디 사태도 다르지 않다. 미국은 사우디의 안보를 무조건 보장하는 국가가 아니다. 미국에 사우디는 중요한 파트너이지만 미국의 국익과 사우디의 국익이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지금 미국은 이란과의 장기적인 전쟁으로 군사적 부담을 안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사우디뿐 아니라 미국의 요격미사일 재고에도 부담이 커져 추가 지원에 한계가 있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결국 미국은 사우디를 위해 미국의 병력과 무기를 무제한으로 투입할 것인지, 아니면 미국의 국익에 필요한 수준에서 개입을 제한할 것인지를 계산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국제정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한국의 일부 정치세력이 이 냉정한 국제정치의 현실을 외면한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의 극우세력 가운데에는 미국을 하나의 국가가 아니라 마치 절대적 선을 가진 신성한 존재처럼 바라보는 태도가 있다. 미국이 무엇을 하든 옳고, 미국이 한국을 지켜줄 것이며, 미국의 판단에는 의심을 제기해서는 안 된다는 식이다.
하지만 미국 역시 국가다.
미국에도 미국의 국민이 있고, 미국의 세금이 있고, 미국의 선거가 있으며, 미국의 산업과 군사전략과 경제적 이해관계가 있다. 미국 대통령은 한국을 위해 선출된 사람이 아니라 미국 국민을 위해 선출된 사람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한국의 국익과 미국의 국익이 충돌하는 순간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는 너무나 명백하다.
미국은 미국의 이익을 선택한다.
그것을 미국의 배신이라고 비난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그것을 국제정치의 정상적인 작동 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
문제는 그런 미국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한국의 태도다.
한미동맹은 중요하다. 한국의 안보에서 한미동맹이 차지하는 전략적 가치 역시 부정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동맹이 중요하다는 것과 미국이 언제나 한국의 요구를 들어줄 것이라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오히려 진정한 동맹은 상대방을 신격화하지 않을 때 더욱 건강해진다.
미국을 믿을 수는 있다. 그러나 미국만 믿어서는 안 된다.
미국과 협력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의 국익과 한국의 국익이 언제나 동일하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미국의 군사력을 활용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국방력과 외교력과 경제력을 키우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사우디가 지금 겪고 있는 위기는 바로 그 사실을 보여준다. 사우디는 세계 최고의 무기를 샀지만, 무기를 공급한 국가가 자기 나라를 위해 모든 전쟁을 대신 싸워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됐다. 실제로 사우디가 지원을 요청한 상황에서 미국은 직접적인 군사 개입에 선을 긋고 있고, 사우디는 다른 국가들에게까지 방공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동맹은 보험증서가 아니다.
더구나 무제한 보장도 아니다.
국제정치에서 동맹은 힘과 이해관계가 만나는 지점에서 만들어진다. 그 힘과 이해관계가 변하면 동맹의 행동도 변한다.
그러므로 국가가 해야 할 일은 강대국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다. 강대국과 협력하면서도 자신의 국익을 지킬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미국을 믿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을 제대로 이해하자는 이야기다.
미국을 신으로 만들면 안 된다. 미국 역시 국익을 계산하는 하나의 국가일 뿐이다.
사우디가 오늘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동맹이라고 다 같은 동맹이 아니다. 그리고 동맹국이라고 해서 우리의 전쟁을 대신 싸워주는 나라도 아니다.
국제정치에서 마지막까지 바카라임져야 할 국가는 결국 자기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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