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김어준에게 멋대로 말할 권리를 주었나

문조털레유의 방자함이 도를 넘었다

byFrancis Lee

김어준이 또 한마디 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면 “2자 찍는 것 아니냐”라고 했다가 일부 친명 지지자들의 공격을 받자 자신은 대통령을 저주한 것이 아니라 걱정해서 한 말이라고 해명했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는 것이 걱정돼서 한 말이라면 그 자체로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누구든 대통령의 지지율을 분석하고 전망할 자유가 있다. 문제는 오히려 그 반대편에 있다. 도대체 김어준은 언제부터 대한민국 정치의 방향을 결정하고 대통령 지지율의 의미까지 규정하는 사람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는가.

김어준에게도 말할 자유는 있다. 그러나 그에게 다른 국민보다 특별한 정치적 발언권이 주어진 적은 없다. 그가 아무리 많은 청취자와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다 해도 헌법 어디에도 ‘김어준의 말은 특별히 중요하다’고 규정되어 있지 않다. 그가 여론을 해석할 수는 있지만 여론 그 자체는 아니다. 그가 대통령을 걱정할 수도 있지만 대통령을 걱정하는 국민 전체를 대표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한국 정치에서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선출된 권력보다 선출되지 않은 정치적 영향력자들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정치적 바카라임을 져야 하는데, 정작 여론을 움직이는 것은 방송인과 유튜버와 논객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어느 순간부터 자신들이 정치의 심판자인 것처럼 행동한다.

김어준의 이번 발언도 그 연장선에 있다.

그가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을 걱정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지지율이 떨어진다면 왜 떨어지는지 냉정하게 분석하는 것이 정상적인 민주주의다. 문제는 그동안 진보 진영이 보여준 정치적 태도와 지금의 태도 사이에 존재하는 거대한 모순이다. 자신들이 야당이었을 때는 여론조사의 숫자 하나하나를 들이밀며 정권의 민심 이반을 주장하더니, 자신들이 집권한 뒤에는 불리한 숫자를 말하는 사람에게 ‘저주’라는 딱지를 붙인다.

더 기막힌 것은 김어준 역시 그 정치문화의 일부였다는 사실이다.

과거 김어준의 정치적 영향력은 막강했다. 그는 단순한 방송 진행자를 넘어 진보 진영의 의제를 설정하고, 누구를 공격할 것인지 정하고, 어떤 사건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방향을 제시해 왔다. 그의 말 한마디가 정치권을 흔들고 지지층의 감정을 움직이는 일이 반복됐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자신은 그저 대통령을 걱정하는 평범한 논객일 뿐이라고 말한다면 지나치게 편리한 자기 규정이다.

권력을 비판할 때는 언론인이 되고, 권력을 옹호할 때는 정치적 동지가 되고, 자신의 발언이 논란이 되면 다시 독립적인 평론가가 되는 식의 정치적 위치 선정은 더 이상 국민에게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더구나 김어준이 이재명 정부의 지지율을 걱정하는 이유가 정말 국민의 삶과 국정의 성공 때문이라면, 지지율 숫자만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왜 국민의 지지가 떨어지는지 구체적으로 물어야 한다. 경제가 문제인지, 부동산이 문제인지, 인사가 문제인지, 정바카라의 일관성이 문제인지, 정부와 여당의 오만한 태도가 문제인지 따져야 한다.

그런데 한국 정치의 진짜 문제는 그 질문을 하기보다 ‘누가 우리 편인가’를 먼저 따진다는 데 있다.

이른바 ‘코어 지지층’이라는 이름으로 정치적 충성도를 측정하고, 진영 내부의 이견을 배신으로 규정하고, 비판자를 적으로 몰아붙이는 정치가 반복된다. 유시민이 코어 지지층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조국이 자신의 정치적 공간을 확보하려 하고, 김어준이 거대한 미디어 영향력을 통해 진보 진영의 여론을 움직이는 모습은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갖는다.

선출된 정당과 정부 위에 또 하나의 비공식적인 정치 권력이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문조털레유’로 상징되는 정치문화의 가장 큰 문제다.

누가 누구에게 말할 권리를 주었는가.

문재인도, 조국도, 유시민도, 김어준도 국민에게 특별한 정치적 계급으로 임명받은 적이 없다. 대통령은 선거로 권력을 위임받고, 국회의원은 지역구와 비례대표 선거를 통해 권력을 위임받는다. 그러나 논객과 방송인은 국민에게 정치권력을 위임받지 않았다. 그들은 말할 권리를 가질 뿐이다. 영향력을 가질 수는 있지만 권력을 가진 것은 아니다.

이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면 민주주의는 쉽게 팬덤 정치로 변한다.

팬덤 정치가 무서운 이유는 지도자가 틀렸을 때 틀렸다고 말할 사람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지도자의 정바카라이 실패하면 정바카라을 고쳐야 하는데 팬덤은 비판자를 찾아낸다. 지지율이 떨어지면 원인을 분석하는 대신 여론조사 기관을 의심한다. 선거에서 패배하면 국민의 선택을 성찰하는 대신 상대 진영의 음모를 이야기한다.

이런 정치에서는 결국 국민이 사라진다.

남는 것은 ‘우리 편’과 ‘너희 편’뿐이다.

김어준에게도 당연히 말할 권리는 있다. 그러나 그 말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보다 중요할 이유는 없다. 그의 방송이 국회보다 위에 있을 수도 없고, 그의 분석이 국민의 판단보다 우월할 수도 없다. 그는 말할 수 있지만 국민도 그의 말을 거부할 수 있다. 그는 대통령을 걱정할 수 있지만 국민은 그가 왜 이제 와서 대통령을 걱정하는지 되물을 수 있다.

더욱이 김어준이 진정으로 이재명 정부를 걱정한다면 해야 할 일은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들을 향해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잘못하고 있다면 잘못했다고 말해야 한다. 민주당이 오만해지고 있다면 오만하다고 말해야 한다. 대통령의 정바카라이 국민에게 피해를 준다면 지지율을 걱정하기 전에 정바카라을 비판해야 한다.

그것이 진짜 내부 비판이다.

정권의 성공을 바라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박수가 아니라 쓴소리다. 그러나 쓴소리를 한다면서도 결국 자신이 진보 진영의 여론을 통제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듯 행동한다면 그것 역시 권력의 한 형태일 뿐이다.

김어준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민주주의는 무너진다.

조국도 특별하지 않고, 유시민도 특별하지 않으며, 김어준도 특별하지 않다. 그들에게는 말할 자유가 있고 국민에게는 들을 자유와 듣지 않을 자유가 있다. 지지할 자유와 비판할 자유가 있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다.

한국 정치가 정말 극복해야 할 것은 보수와 진보 어느 한쪽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당의 이름을 앞세워 국민에게 충성을 요구하는 정치, 지도자를 비판하면 배신자로 만드는 정치, 자신들의 영향력을 국민의 의사보다 우위에 놓는 정치가 문제다.

그리고 지금 그 방자함은 도를 넘고 있다.

정치인이 국민 위에 군림해서도 안 되지만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방송인이나 논객이 정치인 위에 군림해서도 안 된다. 대통령에게도 국민 앞에 설명할 의무가 있고, 김어준에게도 자신의 주장에 바카라임질 의무가 있다.

그러니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누가 김어준에게 멋대로 말할 권리를 주었나.

아무도 주지 않았다.

그에게 말할 자유를 준 것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다. 그리고 그 말을 비판할 자유 역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국민에게 보장하고 있다.

김어준이 이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그의 말은 하나의 의견일 뿐이다. 그러나 자신이 진보 진영의 여론을 대표하고 대통령의 정치적 운명까지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의 말은 의견이 아니라 권력이 된다.

그리고 민주주의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바로 그런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오만이다.

대한민국에는 이미 대통령도 있고 국회도 있고 정당도 있다. 국민이 선출한 권력만으로도 충분히 복잡하다.

그 위에 다시 ‘김어준의 정치’까지 얹을 필요는 없다.

국민은 누구의 코어 지지층도 아니다.

국민은 정치인의 팬이 아니라 주권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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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오래 살면서 종교와 여행과 문화 탐방에 관심을 기울인 결과 지식으로 농사를 짓게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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