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은 '문조털레유'를 말해도 되나

좌파의 상호갈라치기는 이제 극에 이른 것 같다

byFrancis Lee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가 이재명 정부의 지지율 하락을 두고 ‘문조털레유’를 들고나왔다. 문재인·조국·김어준·정청래·유시민을 하나의 정치적 자산처럼 묶으면서 이들을 배척해서는 이재명 정부의 성공도, 정권 재창출도 어렵다는 취지다. 표현부터가 흥미롭다. 정치권에서 누구를 비판하는 것과 별개로, 자신과 특정 인물들을 하나의 세력으로 묶어 ‘우리가 진짜 개혁 진영’이라는 듯한 정치적 이름을 붙이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진다.

조국은 과연 ‘문조털레유’를 말할 자격이 있는가.

이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조국이 지금 비판하는 것이 바로 자신이 가장 잘 활용해왔던 정치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그 지지층과 다른 사람을 구분하고, 내부의 비판자를 배신자로 규정하고, 결국 정치적 세계를 ‘우리 편’과 ‘저쪽 편’으로 나누는 정치 말이다.

문제는 이 갈라치기가 이제 한국 진보 진영에서 거의 하나의 정치문화가 되어버렸다는 데 있다.

문재인과 조국, 김어준과 정청래, 유시민을 하나로 묶는 순간 그 안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은 자연스럽게 ‘진짜 진보’가 아닌 사람이 된다. 이재명을 지지하지만 조국을 비판하면 어떻게 되는가. 민주당을 지지하지만 김어준의 정치적 영향력을 비판하면 어떻게 되는가. 문재인 정부의 공과를 인정하면서도 조국 사태의 바카라임을 지적하면 어떻게 되는가. 유시민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서 진보가 아닌가.

정치가 언제부터 이렇게 단순해졌는가.

더 심각한 것은 조국이 ‘문조털레유’를 하나의 정치적 자산처럼 호명하면서 자신과 특정 인물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마치 진보 전체의 자산인 것처럼 취급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문재인과 조국과 김어준과 정청래와 유시민을 하나의 정치적 묶음으로 생각하고 있는가. 그것은 국민의 자연스러운 정치적 구분이라기보다 정치권 내부에서 만들어낸 하나의 진영적 프레임에 가깝다.

정치인이 자신의 지지층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자신의 지지층을 곧 국민 전체로 착각하기 시작하면 문제가 달라진다.

특히 집권세력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재명 정부의 지지율이 떨어졌다면 그 원인을 냉정하게 분석해야 한다. 경제가 문제인지, 부동산이 문제인지, 인사가 문제인지, 정바카라의 방향이 문제인지,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이 문제인지 따져야 한다. 그런데 조국은 이 복잡한 문제를 ‘문조털레유를 배척했기 때문’이라는 진영 논리로 설명하려 한다.

이것이야말로 정치의 단순화다.

국민은 문조털레유를 위해 세금을 내는 것이 아니다. 국민은 진보 진영의 정치적 지분을 나누기 위해 투표하는 것도 아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자신의 삶이 나아지는 것이다. 일자리가 생기고, 집값과 물가가 안정되고, 자녀들이 미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국가가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진보 정치에서는 언제부터인가 국민의 삶보다 진영의 명분이 앞서기 시작했다.

누가 진짜 진보인가. 누가 개혁세력인가. 누가 코어 지지층인가. 누가 배신자인가. 누가 검찰개혁에 진심인가. 누가 민주당의 정통성을 갖고 있는가.

이런 질문이 정치의 중심을 차지하기 시작하면 정치는 국민을 향하지 않고 자기 진영을 향하게 된다.

조국의 이번 발언은 바로 그 현실을 상징한다.

조국혁신당과 민주당 사이의 갈등 역시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민주당은 자신들이 집권세력인 만큼 새로운 국민적 지지기반을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반면 조국혁신당은 기존 개혁 진영의 정치적 지분을 인정받기를 원할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눈에는 그것이 결국 ‘누가 개혁 진영의 주도권을 차지할 것인가’라는 권력투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조국이 이재명 정부를 향해 ‘뉴이재명’만으로는 안 된다고 비판하면서 자신은 ‘문조털레유’라는 또 다른 정치적 울타리를 세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뉴이재명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는 것이 문제라면 문조털레유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는 것도 똑같이 문제다.

진영의 갈라치기는 상대편에서만 나쁜 것이 아니다.

내가 하는 갈라치기는 개혁이고 상대방이 하는 갈라치기는 분열이라고 주장하는 순간 정치적 위선이 시작된다.

한국 정치가 지금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이다.

진보와 보수의 대립을 넘어 이제는 진보 내부에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경계선이 만들어지고 있다. 문재인과 이재명, 조국과 민주당, 김어준과 비김어준, 유시민과 비유시민으로 갈라진다. 그리고 그 경계선 안에 들어온 사람들은 서로를 ‘우리 편’이라고 확인하면서 결집한다. 반대로 그 경계선 밖에 있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의심받는다.

이것은 개혁이 아니다.

이것은 진영의 자기복제다.

더구나 조국은 자신이 정치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인물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자신이 만든 정치적 진영의 한계를 먼저 돌아봐야 한다. 조국 사태 이후 한국 슬롯가 얼마나 극심하게 갈라졌는지, 정치적 지지와 반대가 어떻게 개인의 도덕성과 인격에 대한 공격으로까지 확산됐는지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다시 특정 인물들을 하나의 묶음으로 만들어 ‘우리 편’을 선언하는 것이 과연 한국 정치에 어떤 도움이 되는가.

정치는 팬클럽이 아니다.

대통령도 팬클럽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정당도 팬클럽으로 운영되어서는 안 된다. 국가는 더더욱 팬클럽의 방식으로 운영할 수 없다.

진보가 정말 개혁을 말하려면 자기편의 잘못에도 똑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조국에게도, 문재인에게도, 김어준에게도, 정청래에게도, 유시민에게도, 이재명에게도 같은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그것이 진보가 말해온 비판정신이고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 정치에서는 그 원칙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자신의 진영에 속하면 과오가 있어도 ‘정치적 탄압’이라고 하고, 상대 진영에 속하면 작은 실수도 ‘적폐’라고 한다. 자신들의 과격한 언어는 정의를 위한 투쟁이고 상대방의 과격한 언어는 혐오와 선동이라고 한다.

이런 이중잣대가 쌓이면 결국 국민은 정치 전체를 불신하게 된다.

조국이 ‘문조털레유’를 말할 수는 있다. 누구든 자신의 정치적 연대와 지지세력을 이야기할 자유가 있다. 그러나 그것을 진보 전체의 대표성처럼 주장할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리고 그 이름으로 이재명 정부의 실패를 설명하려 한다면 더욱 엄격한 검증이 필요하다.

이재명 정부가 실패한다면 그것은 문재인·조국·김어준·정청래·유시민을 충분히 끌어안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국정을 잘못 운영했기 때문일 수 있다. 반대로 성공한다면 그것 역시 특정 진영의 정치적 지분을 얼마나 배분했느냐 때문이 아니라 국민의 삶을 실제로 개선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한국 정치가 그 정도는 구분할 때가 됐다.

‘뉴이재명’도 필요 없고 ‘문조털레유’도 필요 없다.

국민은 새로운 정치적 부족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은 자신들의 삶을 바카라임질 정치세력을 원한다.

조국을 비롯한 진보 정치인들이 정말 개혁을 말하고 싶다면 이제 ‘누가 우리 편인가’를 묻는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누가 옳은가’, 더 나아가 ‘무엇이 국민에게 필요한가’를 물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문조털레유라는 이름은 진보의 연대가 아니라 진보 내부의 또 하나의 갈라치기를 상징하는 정치적 구호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 정치의 갈라치기가 여기까지 왔다면, 이제 국민이 물어야 할 질문은 하나다.

도대체 언제까지 자기들끼리 편을 가르고 싸우면서 그것을 개혁이라고 부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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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오래 살면서 종교와 여행과 문화 탐방에 관심을 기울인 결과 지식으로 농사를 짓게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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