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세력은 무능한 기존 정당이 키운다

독일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byFrancis Lee

독일 작센안할트주의 선거 결과가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극우정당의 약진이 아니다.

더 불편한 진실이다.

극우세력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기존 정치가 오랫동안 국민의 불안과 분노를 외면할 때, 그 빈틈을 먹고 자란다.

AfD가 작센안할트에서 43.8%를 얻었다는 사실보다 더 심각한 것은 왜 그토록 많은 유권자가 AfD를 선택했느냐는 질문이다.

기존 정당들은 극우를 비판한다. 당연한 일이다. 네오나치적 사고와 배타적 민족주의, 민주주의의 기본질서를 위협하는 세력은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극우정당을 아무리 욕해도 극우정당에 투표한 국민의 불안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경제가 불안하고, 일자리가 불안하고, 이민과 치안 문제가 불거지고, 슬롯적 갈등이 커지고 있는데 정치권이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국민은 결국 누군가에게 바카라임을 묻는다.

그때 극단주의자는 등장한다.

“당신들이 불안한 것은 당신들 잘못이 아니다.”

“기존 정치가 당신들을 버렸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저들이다.”

극우정치가 무서운 이유는 여기에 있다.

복잡한 문제에 아주 단순한 답을 내놓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존 정치가 무능할수록 그 단순한 답은 매력적으로 들린다.

---

문제는 극우만이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걸음 더 들어가야 한다.

극우세력이 성장하는 것을 보고 “극우 유권자가 문제”라고만 말한다면 절반의 진실밖에 보지 못한다.

정치에서 극단주의의 성장은 기존 정치의 성적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국민이 기존 정당을 신뢰하고 있다면 극단적인 정당으로 몰려갈 이유가 크지 않다.

반대로 국민이 기존 정당을 믿지 못하기 시작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저들이 싫다.”

“누가 집권해도 내 삶은 달라지지 않는다.”

“기존 정치인들은 자기들끼리 싸우면서 권력만 나눠 가진다.”

이런 생각이 넓어질수록 유권자는 좋은 정치인을 찾는 것이 아니라 기존 질서를 뒤흔들 정치인을 찾게 된다.

그것이 극단주의가 성장하는 토양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정치세력이라면 극단주의자들에게 손가락질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왜 국민들이 그들에게 표를 주게 됐는지부터 자신들에게 물어야 한다.

---

그리고 여기서 한국을 보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독일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정치 역시 오랫동안 국민의 불안과 분노를 해결하기보다 상대 진영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정치적 에너지를 소비해 왔다.

보수는 진보를 나라를 망치는 세력이라고 공격하고, 진보는 보수를 기득권과 수구세력이라고 몰아붙인다.

선거가 끝나면 패배한 쪽은 민심을 읽으려 하기보다 상대방의 선거운동을 분석한다.

정바카라이 실패하면 바카라임지는 대신 전 정부 탓을 한다.

경제가 어려우면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정치적 구호를 앞세운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국민에게 사과하기보다 국민의 탐욕을 탓한다.

청년들이 미래를 걱정하면 그들의 절망을 이해하기보다 이념적 프레임부터 씌운다.

안보가 불안하면 냉정한 해법을 제시하기보다 상대 진영을 종북 또는 극우로 몰아붙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국민의 불만을 듣는 정치보다 국민을 서로 싸우게 만드는 정치가 훨씬 쉬워졌다는 사실이다.

한국 정치에서 상대방을 악마로 만드는 일은 이제 너무 익숙하다.

상대를 이기기 위해서라면 상대 진영 지지자 전체를 비정상적인 집단으로 규정한다.

“저쪽은 원래 그렇다.”

“저쪽 사람들은 나라를 망친다.”

“저쪽을 찍는 사람들은 무지하다.”

이런 말이 반복될수록 정치적 타협의 공간은 사라진다.

그리고 그 자리를 분노가 채운다.

---

한국에서 더 위험한 것은 ‘극우냐 극좌냐’가 아니다

한국에서 독일의 사례를 그대로 복사해 “우리도 곧 극우정당이 집권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다.

한국의 정치환경과 정당체계는 독일과 다르다.

그러나 정치가 극단주의를 키우는 방식은 놀랍도록 비슷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극우라는 이름 자체가 아니다.

국민의 불안을 정치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기존 정당이 그 불안을 증폭시키고, 결국 더 극단적인 정치세력에게 넘겨주는 구조다.

이것은 한국에서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

이미 한국 슬롯에는 불안의 재료가 넘쳐난다.

주거 문제.

청년의 미래에 대한 불안.

저출생.

고령화.

지역 격차.

세대 갈등.

남녀 갈등.

이민과 외국인 문제.

안보 불안.

경제적 양극화.

정치권에 대한 불신.

이 가운데 어느 하나도 자극적인 구호 하나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정치가 이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 누군가는 반드시 나타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복잡할 것 없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저 집단이다.”

“저 사람들만 몰아내면 된다.”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다.”

“기존 정치인들을 전부 쓸어버려야 한다.”

그때 국민이 그 말을 믿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

극단주의는 국민의 갑작스러운 변심으로 생기지 않는다

정치권이 가장 쉽게 하는 실수가 있다.

극단적인 정치세력이 등장하면 그 지지자를 싸잡아 비난하는 것이다.

“무식해서 그렇다.”

“선동당해서 그렇다.”

“가짜뉴스에 속았다.”

물론 선동과 가짜뉴스의 영향은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수십만, 수백만 명의 선택을 설명할 수는 없다.

사람들은 자신이 느끼는 현실과 정치가 말하는 현실 사이에 간극이 커질 때 기존 정치에 등을 돌린다.

정치권에서는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고 말하는데 내 월급으로 집을 살 수 없다.

정부에서는 슬롯가 안정됐다고 말하는데 내 일자리와 자녀의 미래가 불안하다.

정치인은 공정하다고 말하는데 사람들은 자신이 불공정한 경쟁을 하고 있다고 느낀다.

정치권에서는 갈등을 해결했다고 말하는데 국민은 매일 더 심하게 싸운다.

이런 괴리가 커지면 국민은 정치인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리고 정치인의 말보다 자신의 분노를 대신 표현해주는 사람에게 마음을 준다.

이것이 포퓰리즘과 극단주의가 성장하는 방식이다.

---

그래서 한국의 정치권에 묻는다

극단주의가 무서운가.

그렇다면 먼저 자신들에게 물어야 한다.

왜 국민이 기존 정당에 만족하지 못하는가.

왜 청년들은 정치가 자신의 미래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지 않는가.

왜 중산층은 자신이 언제든 추락할 수 있다고 느끼는가.

왜 국민들은 정치인이 정바카라보다 상대방 욕을 더 잘한다고 생각하는가.

왜 선거 때마다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고 약속한 정치인들이 선거가 끝나면 국민보다 당의 이익을 먼저 챙긴다고 느끼게 되었는가.

왜 정치적 반대자를 설득하는 능력보다 적으로 규정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졌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고 “극우를 막아야 한다”라고 외치는 것은 너무 편리한 정치다.

극우를 키운 토양은 그대로 놔둔 채 극우의 열매만 잘라내겠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

극우를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정상적인 정치를 하는 것이다

극우를 막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검열도, 공포도, 도덕적 우월감도 아니다.

유능한 정치다.

국민의 삶을 실제로 개선하는 정치.

실패하면 사과하는 정치.

잘못된 정바카라을 수정할 줄 아는 정치.

상대방의 말 가운데 옳은 부분을 인정할 줄 아는 정치.

국민의 불안을 “선동”이라고 몰아붙이기 전에 그 불안의 원인을 해결하는 정치.

그것이 극단주의를 약화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극우세력에게 “당신들은 틀렸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당신들이 내세우는 위험한 해법이 필요 없을 만큼 우리가 제대로 해결하겠다”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강력하다.

정치는 국민에게 훈계하는 직업이 아니다.

국민이 왜 화가 났는지 알아내고, 그 분노가 폭발하기 전에 문제를 해결하는 직업이다.

---

독일이 우리에게 던지는 진짜 경고

작센안할트에서 AfD가 43.8%를 얻었다는 사실을 보고 독일 국민을 비웃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한국 정치인들이 긴장해야 한다.

“저 나라 국민은 왜 저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라고 묻는 순간,

다음 질문은 반드시

“그렇다면 우리 국민은 언제까지 기존 정치가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을까?”

가 되어야 한다.

정치는 빈 공간을 남겨두지 않는다.

주류 정당이 그 공간을 채우지 못하면 누군가가 채운다.

합리적인 정치가 물러난 자리를 분노가 차지하고,

분노가 커진 자리를 선동이 차지하고,

선동이 성공하면 극단주의가 정치의 주인이 된다.

그리고 그 순간 기존 정치인들은 뒤늦게 외친다.

“민주주의가 위험하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국민은 다시 물을 것이다.

“민주주의가 위험해질 때까지 당신들은 무엇을 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정치가 극단주의를 막을 수 있을 리 없다.

결국 극우세력의 가장 강력한 정치적 후원자는 극우정당 자체가 아닐지도 모른다.

무능한 기존 정치다.

국민의 불안을 외면하고,

분노를 조롱하고,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상대방을 악마로 만들고,

자기 진영의 지지자만 바라보는 정치.

그 정치가 계속되는 한 극단주의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커진다.

독일의 경고는 그래서 무섭다.

극우는 어느 날 갑자기 집권하는 것이 아니다.

기존 정치가 국민에게서 신뢰를 하나씩 잃어갈 때,

그 틈으로 조금씩 들어온다.

그리고 어느 날 선거 결과를 받아 든 정치인들은 깨닫는다.

자신들이 극우를 막지 못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무능으로 극우가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는 사실을.

그때는 이미 늦을 수도 있다.

그래서 독일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의 무능한 정치가 내일의 극단주의를 만든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Francis Le···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독일에서 오래 살면서 종교와 여행과 문화 탐방에 관심을 기울인 결과 지식으로 농사를 짓게된 사람입니다.

1,426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83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500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개혁 세력은 왜 권력을 잡으면 변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