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정당의 무기력이 결국 극단주의 정치를 낳는다
독일 정치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단순한 지방선거의 이변이 아니다. 오히려 독일의 기존 정치질서가 얼마나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경고음에 가깝다. 9월 6일 치러진 작센안할트 주의회 선거에서 극우 성향의 독일을위한대안(AfD)은 무려 43.8%를 얻었다. 2021년의 20.8%와 비교하면 23%포인트나 상승한 수치다. 반면 기민당(CDU)은 37.1%에서 17.2%로 무려 19.9%포인트 추락했다. AfD는 41개 지역구 가운데 38곳에서 직접의석을 차지했고, 2021년 40곳을 휩쓸었던 CDU는 단 한 곳에서도 직접의석을 얻지 못했다.
이 숫자만 놓고 보면 독일의 보수 유권자 상당수가 CDU에서 AfD로 이동했다고 해석하는 것은 충분히 합리적이다. 물론 투표 이동에 관한 정확한 유권자 추적자료가 없는 상태에서 AfD의 23%포인트 상승분 전부가 CDU에서 왔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번 선거의 투표율 자체가 77.8%로 2021년보다 크게 상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CDU가 전통적으로 대표해 온 보수·중도우파 유권자의 상당수가 더 이상 CDU를 자신들의 정치적 대리인으로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더욱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독일 국민들도 AfD가 CDU나 SPD처럼 오랫동안 국정을 운영해 본 정당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연방정부를 운영한 경험도 없고, 주정부를 안정적으로 운영해 본 경험도 없다. 더욱이 AfD의 정바카라 가운데 상당수는 경제·재정·외교·유럽통합이라는 복잡한 현실과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라이프니츠 경제연구소 할레(IWH)가 작센안할트 AfD의 선거공약을 분석한 결과, 재정적으로 산정 가능한 정바카라들의 비용과 재원 사이에는 최소 연간 22억 유로의 격차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AfD는 새로운 부채를 늘리지 않으면서도 세금을 낮추고 복지와 공공서비스를 확대하겠다고 주장하지만, 연구진이 확인한 절감 재원은 그 비용을 감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그런데도 독일 국민은 AfD에 압도적인 표를 던졌다. 왜일까?
바로 여기에 이번 선거의 본질이 있다. 독일 유권자들이 AfD를 지지하는 이유를 “AfD가 국정을 잘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라고만 해석하면 현상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오히려 상당수 유권자들에게 AfD는 “잘할 정당”이기 이전에 “기존 정치의 판을 뒤집을 수 있는 정당”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 차이는 매우 중요하다.
정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슬롯에서 유권자는 후보와 정당의 능력을 비교한다. 누가 경제를 더 잘 살릴 것인지, 누가 복지를 더 효율적으로 운영할 것인지, 누가 외교와 안보를 더 안정적으로 관리할 것인지를 따진다. 그러나 기존 정치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 유권자의 선택 기준 자체가 달라진다. “누가 가장 잘할 것인가?”보다 “누가 지금의 정치판을 바꿀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 된다.
AfD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들었다.
독일 국민 가운데 상당수는 현재의 독일 정치가 자신들의 불안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낀다. 경제성장은 둔화됐고, 자동차와 제조업을 중심으로 산업경쟁력에 대한 불안이 커졌으며, 에너지 전환의 비용을 둘러싼 갈등도 계속되고 있다. 이민과 난민 문제는 문화적 갈등을 넘어 주거·복지·치안·교육 문제와 결합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국방비와 대외지원에 대한 부담도 커졌다. 여기에 고령화와 노동력 부족, 연금개혁이라는 장기적인 문제가 동시에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 기존 정당들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 국민에게 불편하지만 분명한 해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서로 바카라임을 떠넘기거나 복잡한 타협을 반복해왔다.
특히 CDU의 위기는 이 지점에서 결정적이다. CDU는 전통적으로 독일의 보수적이고 실용주의적인 유권자들에게 “안정”의 정당이었다. 경제를 성장시키고 국가를 관리하며 유럽의 중심국가로서 독일의 위치를 지키는 것이 CDU의 정치적 브랜드였다. 그러나 이제 상당수 유권자들은 CDU를 변화의 정당이 아니라 기존 질서를 유지하는 정당으로 보기 시작했다.
AfD는 바로 그 불만을 정치적 자산으로 바꾸었다.
AfD는 “우리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라고 설득하기 전에 “기존 정당들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라고 공격했다. 이 전략은 매우 강력하다. 국정운영 능력을 증명할 필요가 없는 야당에게는 모든 실패의 바카라임을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가 어려우면 정부 탓이고, 이민 문제가 복잡해지면 정부 탓이며,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 정부 탓이고, 우크라이나 전쟁의 비용이 커지면 정부 탓이다.
그리고 AfD는 여기에 매우 단순한 정치적 메시지를 결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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