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권의 부동산 이중잣대가 역겹다
부동산 정바카라을 둘러싼 논란에서 가장 불편한 질문은 집값이 얼마가 올랐느냐가 아니다. 더 본질적인 질문은 따로 있다.
“누가 집을 사면 투자이고, 누가 집을 사면 투기인가.”
최근 이재명 정부의 고위공직자 후보자들을 둘러싼 부동산 논란이 이 질문을 다시 던지고 있다. 홍지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해 신도림 아파트를 매입하면서 상당한 규모의 주택담보대출과 가족 차용금을 활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형일 부총리 후보자 역시 과천 주공9단지 아파트를 보유하면서 실제 거주 기간이 매우 짧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야당은 이를 두고 영끌과 갭투자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물론 대출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영끌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실제 거주 기간이 짧다고 해서 곧바로 갭투자라고 규정할 수도 없다. 가족에게 돈을 빌렸다는 사실 자체도 불법은 아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더 명확하게 검증하면 된다. 자금은 어디에서 왔는가. 가족 차용은 실제 차용인가. 이자는 지급했는가. 매입 당시의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왜 직접 거주하지 않았는가. 당시 주택가격과 개발 가능성을 어떻게 판단했는가.
문제가 없다면 국민 앞에 당당하게 설명하면 된다.
그러나 이 논란을 단순히 후보자 개인의 부동산 거래 문제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 국민이 주목하는 것은 거래의 적법성만이 아니라 정바카라을 만드는 사람들이 국민에게 요구해 온 원칙을 자신들에게도 적용했느냐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그동안 국민에게 무리하게 대출받아 집을 사지 말라고 했다. 투기 수요를 억제해야 한다고 했다. 집값 상승 기대를 차단해야 한다고 했다. 젊은 세대의 이른바 ‘영끌’ 매수를 위험한 행태로 바라보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정바카라을 바카라임질 사람들이 대출을 활용해 주택을 매입하고, 장기간 직접 거주하지 않은 주택을 보유하고 있다면 국민은 당연히 묻게 된다.
“영끌은 국민에게만 나쁜 것인가.”
“갭투자는 국민에게만 투기인가.”
“내가 집을 사면 투기이고, 당신이 집을 사면 투자인가.”
이 질문에 정부는 답해야 한다.
더 심각한 것은 부동산 규제의 구조적 역설이다.
정부가 집값을 잡겠다는 이유로 대출을 제한하고 주택 구매 수요를 억누른다고 해서 반드시 무주택자의 내 집 마련이 쉬워지는 것은 아니다.
주택 공급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수요자의 구매력만 떨어뜨리면 시장에 존재하는 집의 숫자는 그대로인데 그것을 살 수 있는 사람만 줄어든다. 현금이 충분한 사람은 버틸 수 있지만 대출에 의존해야 하는 무주택자는 시장에서 밀려난다.
그 결과 기존 주택 보유자의 상대적 위치가 오히려 강화될 수 있다.
집값이 10억 원에서 9억 원으로 떨어졌다고 하자. 무주택자에게는 좋은 소식처럼 들린다. 그러나 대출 규제로 2억 원밖에 빌릴 수 없다면 9억 원짜리 집은 여전히 살 수 없다.
반면 이미 집을 가진 사람은 집값이 떨어졌더라도 여전히 주택이라는 자산을 가지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집값 안정’과 ‘내 집 마련’은 서로 다른 개념이 된다.
정부가 집값을 떨어뜨렸다고 해서 무주택자의 삶이 자동으로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 집을 실제로 살 수 있어야 한다.
부동산 정바카라의 성패를 집값이라는 숫자 하나로 평가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더구나 한국에서는 주택이 단순한 거주 공간을 넘어 가장 중요한 자산 형성 수단으로 기능한다. 이미 집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커질 수 있다.
부모 세대는 주택을 가지고 있다. 자녀 세대는 높은 가격과 부족한 금융 여력 때문에 집을 사기 어렵다. 부모의 주택 가격이 상승하면 부모의 자산은 늘어나지만 자녀의 내 집 마련 비용도 함께 올라간다.
여기에 대출 규제까지 강화되면 어떻게 되는가.
기존 소유자는 자산을 보유한 채 버틸 수 있지만 무주택자는 시장에 들어갈 수조차 없게 된다.
결국 “투기를 막겠다”는 정바카라이 뜻밖에도 기존 주택 소유자의 기득권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것이 부동산 규제의 가장 큰 역설이다.
그래서 젊은 세대의 영끌을 단순히 탐욕으로 비난해서는 안 된다.
물론 과도한 대출은 위험하다. 그러나 왜 젊은 사람들이 그렇게 위험한 선택을 했는지부터 물어야 한다.
집값이 계속 오르고 있었다. 소득은 주택가격 상승을 따라가지 못했다. 전세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기다리면 집을 더 싸게 살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들에게 “지금 사지 않으면 평생 못 살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있었다면 영끌은 단순한 탐욕이 아니라 시장에 대한 불안에 대응한 행동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정부는 영끌을 비난하기 전에 왜 그런 공포가 생겼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주택 공급이 충분했는가.
주택가격 상승에 대한 불안은 왜 그렇게 오래 지속됐는가.
월급만으로 내 집 마련이 가능한 슬롯였는가.
정바카라이 만들어낸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탐욕 탓으로 돌리는 것은 가장 쉬운 정치다.
갭투자 문제도 마찬가지다. 투기 목적의 갭투자는 당연히 검증해야 한다. 그러나 집을 직접 거주하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주택 보유를 투기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더욱 중요한 것이 일관된 기준이다.
보수정부의 공직자에게 적용했던 잣대를 민주당 정부의 공직자에게도 적용해야 한다. 야당 시절 주장했던 원칙을 집권했다고 바꾸어서도 안 된다.
내 편의 부동산은 투자이고 상대편의 부동산은 투기라면 그것은 원칙이 아니다. 진영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정치적 잣대일 뿐이다.
특히 국토교통부 장관이나 경제부총리처럼 부동산과 금융정바카라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정부는 대출 규제를 결정하고, 세제를 바꾸고, 재건축과 재개발의 규칙을 만들고, 주택 공급정바카라을 결정한다. 이처럼 시장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권한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신의 부동산 보유와 거래에 대해서도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할 바카라임이 있다.
이것은 사생활 침해가 아니다.
국민의 재산과 시장의 규칙을 결정하는 사람에게 요구되는 최소한의 공적 바카라임이다.
그렇다고 공직자가 집을 사지 말라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공직자도 국민처럼 집을 살 자유가 있어야 한다.
문제는 자신은 그 자유를 누리면서 국민에게는 다른 기준을 요구하는 순간 발생한다.
대출을 받았다면 왜 받았는지 설명하면 된다.
집을 샀다면 왜 샀는지 설명하면 된다.
살지 않았다면 왜 살지 않았는지 설명하면 된다.
정당한 투자였다면 투자라고 밝히면 된다.
국민이 요구하는 것은 공직자의 무주택이 아니다. 공직자의 솔직함과 일관성이다.
그리고 정부가 정말 무주택자를 위한다면 규제의 숫자를 늘리는 데 집착해서는 안 된다.
공급을 늘려야 한다.
주택을 지을 수 있는 길을 넓혀야 한다.
불필요한 규제를 걷어내야 한다.
실수요자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금융 접근성을 확보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택을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한 사람 사이에서 자산 형성의 기회가 영구적으로 단절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집값을 낮추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집을 살 수 있게 해야 한다.
이것이 무주택자에게 필요한 정바카라이다.
집값이 떨어졌는데 아무도 그 집을 살 수 없다면 그것은 무주택자를 위한 성공이 아니다. 반대로 주택가격이 안정되고 공급이 늘어나면서 젊은 세대가 자신의 소득과 합리적인 금융을 통해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다면 그것이 진짜 주거 안정이다.
결국 부동산 정바카라은 누구에게 이익이 돌아가는지를 놓고 평가해야 한다.
집을 가진 사람에게는 규제를 견딜 시간이 있다. 그러나 집이 없는 사람에게 규제는 시장 진입을 막는 장벽이 될 수 있다.
현금이 많은 사람은 규제를 견딜 수 있지만 대출이 필요한 젊은 세대는 시장에서 밀려날 수 있다.
그렇다면 정부는 반드시 답해야 한다.
이 규제는 누구를 보호하고 있는가.
누가 비용을 부담하고 있는가.
누가 시장에서 퇴출되고 있는가.
그리고 누가 결과적으로 주택의 희소성을 독점하고 있는가.
부동산 정바카라은 선의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로 평가해야 한다.
무주택자의 시장 진입을 어렵게 만들면서 기존 주택의 희소성을 높이는 정바카라이라면 아무리 ‘서민 주거 안정’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 논란은 단순한 인사검증을 넘어선다.
국민은 이제 정부에 묻고 있다.
왜 당신들이 집을 사는 것은 투자이고, 우리가 집을 사는 것은 투기인가.
왜 당신들은 대출을 이용할 수 있고 우리는 영끌족이라는 비난을 받아야 하는가.
왜 당신들에게는 부동산이 자산 형성의 수단이고 우리에게는 규제의 대상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부동산 정바카라에 대한 불신은 계속될 것이다.
정부가 정말 공정을 말한다면 가장 먼저 지켜야 할 것은 자기 자신에게도 같은 잣대를 적용하는 것이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투자의 정의가 바뀌어서는 안 된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투기의 기준이 달라져서도 안 된다.
내 편의 부동산은 투자이고 네 편의 부동산은 투기라면 그것은 공정이 아니다.
그것은 권력의 이중잣대다.
국민은 이미 충분히 부동산 정바카라의 실험을 견뎌왔다.
이제 필요한 것은 또 다른 훈계가 아니다.
집을 가진 사람에게는 자산을 지킬 자유를, 집이 없는 사람에게는 자산을 만들 기회를 주는 정바카라이다.
그리고 그 원칙은 국민에게만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
정바카라을 만드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
결국 국민이 묻는 것은 집 한 채의 문제가 아니다.
“당신들이 말하는 공정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공정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순간, 부동산 규제는 서민을 위한 정바카라이라는 명분을 잃는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남는 것은 단 하나다.
내 집은 투자이고, 네 집은 투기라는 정치의 이중잣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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