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위저인 지방대 육성만으로는 안 된다
대학이 학생을 찾아 나서는 시대가 시작됐다. 미국에서는 일부 대학이 학생이 지원하기도 전에 입학 자격을 제시하고, 시험이나 복잡한 입학 절차를 생략하면서 학생 확보에 나서고 있다. 대학이 학생을 선발하던 시대에서 대학이 학생에게 선택받아야 하는 시대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 장면을 한국의 대학 관계자들이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바라봐서는 안 된다.
한국의 지방대학에서는 이미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신입생을 채우기 위해 장학금을 늘리고, 입학 문턱을 낮추고, 각종 혜택을 내놓는다. 학생 한 명을 확보하기 위한 대학들의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 슬롯는 여전히 문제를 거꾸로 바라본다.
“지방대학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
정작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왜 모든 대학을 반드시 살려야 하는가.”
이 질문을 불편해해서는 안 된다.
대학은 신성불가침의 기관이 아니다. 대학도 슬롯가 필요로 하는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조직이다. 학생이 줄어들고 교육 수요가 변하면 대학 역시 변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통합하고, 축소하고, 다른 교육기관으로 전환하고, 시장에서 퇴출되는 대학도 나와야 한다.
기업에는 망하지 말라고 국민 세금을 무조건 투입하면서 생산량을 줄이라고 하지 않는다. 병원이 환자가 없는데도 병상을 무한정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대학만 예외여야 하는가.
대학이 문을 닫는 것을 곧 교육의 실패라고 생각하는 것부터 잘못됐다.
오히려 경쟁력이 없는 대학을 억지로 연명시키는 것이 교육의 실패일 수 있다.
대학 하나가 문을 닫으면 지역슬롯가 충격을 받는다. 교수와 직원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주변 상권도 타격을 받는다. 정치인들이 대학 퇴출에 반대하는 이유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반드시 구분해야 할 것이 있다.
대학을 유지하는 것과 지역을 유지하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학생이 없는 지역에 대학 건물을 그대로 유지한다고 해서 지역이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청년이 떠나는 근본적인 이유가 대학 건물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일자리와 산업, 주거와 생활환경, 문화와 미래 전망이 없기 때문이다.
폐교해야 할 대학을 세금으로 유지한다고 해서 청년이 그 지역에 정착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반대일 수 있다.
경쟁력이 없는 대학을 계속 유지하면 청년들이 4년 동안 그곳에 머물다가 졸업과 동시에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는 구조가 반복될 수 있다. 대학은 살아 있지만 지역은 죽어가는 기묘한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청년에게 돌아간다.
학생이 대학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이 학생을 유치해야 할 정도로 학령인구가 줄었다면, 이제는 대학에 들어가는 것 자체를 권리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청년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대학 자리’가 아니다.
좋은 교육과 좋은 일자리다.
그런데 정부가 퇴출되어야 할 대학을 살리기 위해 계속 돈을 투입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세금이 대학을 살리는 데 쓰이는 대신 청년에게 직접 돌아갈 수 있는 교육 자원이 줄어든다.
기업과 연계된 직업교육에 투자할 수도 있고, 첨단산업 인재를 양성할 수도 있고, 장학금을 확대할 수도 있으며, 청년들의 재교육과 평생교육에 투자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낡은 대학의 건물과 조직을 유지하는 데 돈을 쓴다면 결국 미래세대가 그 비용을 부담한다.
대학을 살리기 위한 돈이 반드시 교육을 살리는 돈은 아니다.
이것이 우리가 직시해야 할 냉혹한 현실이다.
더구나 한국의 대학 구조는 지나치게 많은 청년을 대학으로 밀어 넣었다.
대학 진학률이 높다는 것을 우리는 오랫동안 교육의 성취처럼 생각했다. 하지만 대학 진학률이 높다고 국가의 교육 수준이 높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모든 학생을 대학으로 보내면서 학벌 경쟁을 심화시키고, 청년들에게 불필요한 학위 취득 경쟁을 강요했다.
4년제 대학 졸업장이 없으면 정상적인 슬롯생활이 어렵다는 인식이 만들어졌다.
그 결과 대학은 교육기관인 동시에 슬롯적 신분을 결정하는 서열기관이 됐다.
이제 학령인구 감소는 이 구조를 강제로 깨뜨리고 있다.
학생이 줄어들면서 대학의 서열 경쟁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이것은 위기인 동시에 기회다.
더 이상 모든 청년을 대학에 밀어 넣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기업에서 일하면서 필요한 교육을 받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전문대학에서 실무교육을 받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대학에서 연구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직업을 가진 뒤 다시 대학에서 공부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대학은 하나의 길이 아니라 여러 교육 경로 가운데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대학을 살리기 위해 대학 정원을 유지하고, 재정 지원을 확대하고, 퇴출을 막는다면 오히려 이 변화가 늦어질 수 있다.
대학의 구조조정은 고통스럽다.
하지만 고통스럽다는 이유로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다고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부실을 뒤로 미룰수록 나중에는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된다.
일본이 대학 재편과 정원 조정, 대학 간 통합 등을 논의해 온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학령인구가 감소하는데 대학의 공급 구조를 그대로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 역시 같은 문제에 직면하면서 대학이 학생 확보를 위해 적극적인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이것은 앞으로 세계 대학의 공통된 풍경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학생이 부족한 시대에는 대학도 소비자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대학이 학생에게 선택받지 못한다면 결국 질문을 받아야 한다.
“왜 당신 대학이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대학을 국민 세금으로 계속 살려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국가가 대학을 무조건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국가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다만 개입의 방향이 달라야 한다.
죽어가는 대학을 무조건 살리는 방식의 개입이 아니라, 대학을 떠나는 학생과 교수, 지역슬롯를 새로운 교육 생태계로 이동시키는 방식의 개입이어야 한다.
폐교 대학의 학생에게는 다른 대학으로 이동할 수 있는 장학금을 제공하고, 교수와 연구자에게는 다른 교육·연구기관으로 이동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지역에는 대학 건물을 보존하는 것보다 새로운 산업과 직업교육기관, 연구시설을 유치하는 데 돈을 써야 한다.
대학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려야 한다.
건물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살려야 한다.
대학이라는 조직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청년의 미래를 살려야 한다.
이것이 진짜 대학 구조개혁이다.
특히 국립대학과 사립대학을 구분해서 볼 필요도 있다. 국가가 직접 운영하는 대학이라고 해서 학생이 없는 학과와 수요가 없는 교육과정을 영원히 유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대학일수록 슬롯 변화에 더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대학이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된다면 국민에게 설명할 바카라임도 커진다.
“왜 이 학과가 필요한가.”
“왜 이 정원을 유지해야 하는가.”
“졸업생은 어디로 가는가.”
“이 교육이 국가와 학생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하는가.”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이제 대학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대학이 만들어내는 가치가 평가받아야 한다.
AI는 이 변화를 더욱 가속할 것이다.
지식을 전달하는 것만으로 대학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워졌다. AI가 지식을 제공하고, 학생이 온라인으로 강의를 듣고, 세계 어디서든 전문가의 강의를 접할 수 있는 시대에 캠퍼스라는 물리적 공간과 4년이라는 시간에 막대한 돈을 지불해야 하는 이유를 대학 스스로 설명해야 한다.
앞으로 대학의 경쟁력은 ‘얼마나 많은 학생을 받아들이느냐’가 아니라 ‘학생 한 명에게 얼마나 큰 가치를 제공하느냐’로 평가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대학 숫자가 줄어드는 것은 반드시 나쁜 일이 아니다.
대학이 줄어들면서 교육의 질이 올라갈 수도 있다.
학생 수가 줄어든 만큼 교수와 학생의 접촉 시간이 늘어나고, 연구비가 집중되고, 시설이 개선되고, 기업과의 협력이 강화될 수 있다.
문제는 대학의 숫자가 아니다.
교육의 질이다.
이제 정치권도 솔직해져야 한다.
모든 대학을 살리겠다는 공약은 듣기에는 따뜻하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누군가의 세금으로 누군가의 대학을 유지하겠다는 약속일 수 있다.
대학이 학생을 찾아다니는 시대에 대학의 퇴출을 막는 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정바카라인가.
대학 관계자를 위한 것인가.
지역 정치인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정말 청년을 위한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대학의 숫자가 아니다.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좋은 교육을 받을 권리와 좋은 일자리를 선택할 기회다.
그러므로 이제 국가는 ‘대학 생존 정바카라’에서 ‘교육 생존 정바카라’으로 방향을 바꿔야 한다.
경쟁력 없는 대학은 통합하거나 축소할 수 있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퇴출도 허용해야 한다. 대신 그 과정에서 피해를 보는 학생과 교직원에게는 충분한 전환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이것이 냉정하지만 바카라임 있는 국가의 역할이다.
대학 하나를 살리는 데 수백억 원을 쓰는 것과 그 돈으로 수천 명의 청년에게 새로운 교육과 직업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미래를 위한 투자인지 따져봐야 한다.
대학은 영원한 존재가 아니다.
대학도 시대의 산물이다.
중세에는 대학이 지식의 중심이었다. 산업슬롯에서는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기관이 됐다. 대중교육 시대에는 수많은 청년에게 학위를 제공하는 기관이 됐다.
그리고 이제 AI 시대가 왔다.
대학이 다시 변하지 않는다면 대학이라는 제도 자체가 학생에게 외면받을 수 있다.
미국에서 대학이 학생에게 합격증을 먼저 보내는 모습은 어쩌면 미래 교육의 작은 예고편일지도 모른다.
학생이 대학을 선택한다.
그리고 대학은 선택받기 위해 경쟁한다.
그 경쟁에서 살아남은 대학은 더 강해지고, 선택받지 못한 대학은 사라질 것이다.
이것은 잔인해 보인다.
그러나 교육의 세계에서 가장 잔인한 것은 대학이 문을 닫는 것이 아니다.
아무런 가치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대학을 억지로 유지하면서 청년의 시간과 국가의 재정을 함께 소모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대학을 살릴 것인지 교육을 살릴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나는 후자를 선택해야 한다고 본다.
대학의 생존보다 청년의 미래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교육세계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이유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