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부세 논쟁이 드러낸 ‘입진보’ 정치의 치명적인 역설
조국이 다시 민주당을 겨냥했다. 이번에는 종합부동산세다. 정부가 종부세 부담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자 조국은 이를 사실상 상위 1%를 위한 정바카라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과 이재명 정부가 개혁의 원칙을 저버리고 부자에게 양보하고 있다는 취지다.
정치적으로 보면 조국의 선택은 매우 영리하다.
민주당보다 더 진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면 자신의 정치적 공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가 집권한 이상 조국혁신당이 민주당과 똑같은 목소리를 내서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민주당이 현실론을 이야기할 때 조국은 원칙론을 이야기하고, 민주당이 중산층을 의식할 때 조국은 상위 1%를 겨냥하면 된다.
문제는 그 순간 조국에게 아주 불편한 질문이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누구인가?”
조국이 부자를 비판할 때마다 따라붙는 것이 바로 ‘강남 좌파’라는 이미지다.
이것은 단순한 조롱이 아니다. 조국 정치의 구조적 모순을 설명하는 하나의 정치적 프레임이다.
조국이 부유하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부자도 진보를 말할 수 있고, 부유한 사람도 복지와 조세 형평성을 주장할 수 있다. 진보의 자격을 재산 규모로 판단한다면 그것 역시 또 하나의 계급적 사고일 뿐이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자신은 한국 슬롯의 상위 중산층이 누리는 교육·주거·자산·슬롯적 자본에서 자유롭지 않으면서, 정치적으로는 끊임없이 ‘부자 대 서민’이라는 구도를 만들어 상대방을 도덕적으로 심판하려 할 때 생기는 괴리다.
특히 조국에게는 과거 자녀 입시와 관련된 논란이 남긴 기억이 있다.
그 사건이 남긴 가장 큰 정치적 상처는 돈의 많고 적음이 아니었다. 바로 공정과 특권을 이야기하던 사람이 자신의 가족 문제에서는 다른 기준을 적용했다는 인식이었다.
그래서 조국이 다시 ‘공정’을 이야기하고, ‘상위 1%’를 비판하고, 부동산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요구할 때 일부 국민은 정바카라의 옳고 그름과 별개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다.
“당신이 말하는 공정은 누구에게 적용되는 공정인가?”
이 질문에서 조국의 정치적 확장성이 막힌다.
진보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은 가난한 척하는 능력이 아니다.
일관성이다.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는 기준을 자신에게도 적용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종부세 논쟁은 바로 이 지점을 정확하게 찌른다.
종부세를 더 걷는 것이 옳으냐, 덜 걷는 것이 옳으냐는 별개의 정바카라 문제다. 주택 가격, 보유세, 거래세, 공급, 임대시장, 지역 간 격차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야 한다.
그런데 조국은 이것을 ‘상위 1%의 이익을 지키느냐, 서민을 보호하느냐’는 도덕적 프레임으로 끌고 간다.
바로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한국의 부동산 문제를 단순히 ‘부자 대 서민’의 문제로 환원하는 순간 정바카라은 정치적 구호가 된다.
강남 아파트 한 채를 가진 은퇴자와 수백억 원의 자산을 가진 자산가를 똑같이 ‘부자’라고 부르는 순간 현실은 사라진다.
30년 동안 한 채의 집에서 살아온 고령자와 수십 채의 주택을 투자 목적으로 보유한 사람의 이해관계 역시 다르다.
종부세는 바로 이런 차이를 다뤄야 하는 세제다.
그런데 정치가 이를 ‘상위 1%를 때리는 세금’으로 단순화하면 세금은 정바카라이 아니라 응징의 수단이 된다.
이것이 한국 진보정치가 반복해 온 오래된 함정이다.
부자를 때리면 서민에게 박수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날의 한국 슬롯에서 그 공식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한국의 중산층 상당수에게 부동산은 단순한 투자상품이 아니라 노후자산이기 때문이다.
강남 아파트를 가진 사람만 부동산 보유자가 아니다.
서울과 수도권에 집을 가진 평범한 중산층도 집값과 보유세에 민감하다. 지방의 주택 소유자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에게 “상위 1%에게 세금을 더 걷겠다”는 말은 정치적으로 통쾌할 수 있지만, 곧바로 이런 질문이 따라온다.
“그다음에는 누구인가?”
그래서 조국의 정치적 메시지가 확장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는 민주당보다 더 선명한 진보를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상당수 유권자는 더 이상 ‘더 진보적인 말’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현실적인 해결바카라을 원한다.
집값을 어떻게 낮출 것인가.
노후자산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청년에게 어떻게 주거 기회를 제공할 것인가.
세금을 어떻게 공정하게 설계할 것인가.
그리고 경제성장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여기에는 단순한 선악 구도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조국의 또 다른 문제는 ‘입진보’라는 이미지다.
말로는 가장 급진적인 개혁을 주장하지만 실제 정치에서 자신이 무엇을 바꾸었는지는 불분명하다는 인식이다.
물론 이것 역시 조국에게 불공정한 평가일 수 있다. 그러나 정치는 사실의 총합만으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다. 국민이 정치인을 어떻게 기억하느냐가 훨씬 중요하다.
조국은 교수였다.
법학자였다.
개혁과 공정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국민에게 각인된 정치적 이미지는 ‘말과 삶 사이의 간극’이었다.
이것은 정치인에게 치명적이다.
왜냐하면 진보 정치인은 보수 정치인보다 오히려 더 높은 도덕적 기준을 요구받기 때문이다.
보수 정치인이 성장과 시장을 이야기하면 국민은 정바카라의 결과를 평가한다.
그러나 진보 정치인이 공정과 정의를 이야기하면 국민은 그 정치인의 삶까지 들여다본다.
말과 행동이 다르면 정치적 타격은 훨씬 커진다.
그런 의미에서 조국에게 ‘강남 좌파’라는 프레임은 단순히 “부자인데 왜 진보냐”는 공격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근본적인 질문이다.
“당신은 과연 누구의 삶을 대표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조국은 아직 충분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조국혁신당의 정당 지지율이 장기간 한 자릿수, 그것도 낮은 한 자릿수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은 이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든다.
조국은 민주당보다 더 급진적인 목소리를 내면 자신의 지지층이 확대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반대일 가능성이 크다.
왼쪽으로 한 발 더 나갈수록 기존 민주당 지지층 가운데 일부는 조국에게 관심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중도층과 무당층에게는 오히려 거리가 멀어진다.
결국 조국은 ‘열렬한 지지층’을 가지고 있지만 ‘확장 가능한 지지층’을 갖지 못하는 정치인이 될 위험이 있다.
이것이 팬덤 정치의 함정이다.
팬덤은 정치인을 강하게 만들어준다.
그러나 팬덤만으로 정권을 만들 수는 없다.
정권을 만들려면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표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조국의 정치적 한계가 드러난다.
조국이 민주당을 공격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민주당보다 더 진보적인 말을 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부자를 비판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어려운 것은 자신의 과거와 이미지에서 벗어나면서도 새로운 유권자를 설득하는 것이다.
그것이 정치다.
그래서 이번 종부세 논쟁은 단순한 세금 논쟁이 아니다.
‘강남 좌파’ 조국이 부자를 비판하는 역설을 드러낸 사건이다.
부자를 비판하려면 자신이 부자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자신이 비판하는 슬롯적 특권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지, 그리고 자신에게도 동일한 기준을 적용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진보는 남을 심판하는 언어가 아니다.
자신에게도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는 태도다.
조국이 정말 민주당보다 더 진보적인 정치를 하고 싶다면 이제 부자를 더 세게 공격할 것이 아니라 자신부터 설명해야 한다.
왜 자신이 말하는 공정이 과거의 논란을 넘어설 수 있는지.
왜 자신의 정치가 단순한 ‘강남 좌파의 도덕적 우월감’이 아닌지.
왜 조국혁신당이 민주당보다 더 필요한 정당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비판하는 그 ‘상위 1%’와 자신은 정치적으로 무엇이 다른지를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그 답을 내놓지 못한 채 계속해서 부자와 민주당을 향해 손가락을 겨눈다면, 국민은 결국 이렇게 물을 것이다.
“당신이 비판하는 특권은 정말 남의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진보는 개혁이 아니다.
그저 말 잘하는 특권층의 도덕적 우월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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