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혜인, 내로남불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국고보조금은 정당의 권리가 아니라 국민이 정치에 투자하는 돈이다

byFrancis Lee

정치인의 내로남불을 비판하는 것은 쉽다.

과거에는 국고보조금을 ‘기생충 정치’라고 비판했던 정치인이 오늘날에는 그 국고보조금의 혜택을 지키기 위해 의원직을 유지하려 한다면, 누구라도 모순을 지적할 것이다.

실제로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2020년 기본소득당이 국고보조금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기자회견에 참여했다. 당시 기본소득당은 국고보조금을 노린 정당의 이합집산을 ‘기생충 정치’라고 비판했다. 그런데 이제는 자신이 유일한 현역 의원인 기본소득당의 원내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의원직을 내려놓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정치적 반대자들이 이를 내로남불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여기서 끝내면 너무 쉽다.

나는 오히려 이 사건을 개인의 양심 문제로만 보는 것에 반대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정치인이 원칙을 지키는 것보다 원칙을 버리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 되도록 만들어 놓은 정치제도에 있다.

국고보조금은 정당의 권리가 아니다.

국민이 정당과 민주주의에 투자하는 공적 자금이다.

그런데 한국 정치에서는 어느 순간부터 정당들이 국고보조금을 마치 자신들의 당연한 권리처럼 생각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정당은 국민의 지지를 받아야 존재하는 조직이다. 그렇다면 원칙적으로 정당의 가장 중요한 재원은 당원과 국민에게서 나와야 한다.

당비를 내는 당원이 있어야 하고, 정치인을 후원하는 국민이 있어야 하며, 정바카라에 공감하는 시민이 기꺼이 돈을 내야 한다.

그런데 국가가 정당에 상당한 규모의 재정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하면 정치의 경제적 구조가 달라진다.

정당이 국민에게 선택받는 조직에서 국가로부터 지원받는 조직으로 변할 위험이 생긴다.

정당의 생존을 결정하는 것이 국민의 후원과 당비가 아니라 의석과 득표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용혜인 논란은 바로 이 구조의 모순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기본소득당은 의원 한 명의 존재가 단순히 의석 하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 한 석이 원내정당이라는 정치적 지위와 정당의 재정적 기반에 연결된다.

그러니 의원에게 의원직을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순간 그것은 단순히 정치적 결단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당의 생존을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정치인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정치인은 성인군자가 아니다.

정당도 수도원이 아니다.

정치인은 권력을 얻으려 하고 정당은 살아남으려 한다.

그렇다면 제도는 정치인이 자기 조직의 생존을 위해 행동할 것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설계해야 한다.

정치인의 양심에 기대서는 안 된다.

이것이 민주주의 제도의 기본 원리다.

그런데 한국의 국고보조금 제도는 정치인에게 묘한 유인을 제공한다.

의석을 유지하면 돈이 따라온다.

정당의 지위가 유지되면 국가 지원이 따라온다.

선거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두면 국민에게서 직접 후원받지 않더라도 국가 재정이 정치조직의 운영을 떠받친다.

이렇게 되면 정치인은 국민에게만 바카라임지는 것이 아니라 제도의 조건에도 매달리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내로남불’이 구조적으로 생산된다.

과거에 국고보조금을 비판했던 정당도 막상 국회에 들어오면 국고보조금을 포기하기 어려워진다.

남이 받을 때는 특혜처럼 보이던 것이 내가 받을 때는 민주주의를 위한 공적 지원으로 보인다.

이것은 용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당이 다르면 표현만 달라질 뿐 구조는 같다.

그렇다면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은 어떨까.

흥미로운 것은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도 정당에 공적 자금을 지원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국고보조금은 무조건 폐지해야 한다’는 식의 단순한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지원하느냐이다.

독일은 좋은 비교 대상이다.

독일 역시 정당에 국가가 일부 재정을 지원한다. 하지만 그 제도의 철학은 정당을 국가가 먹여 살리는 것이 아니다.

정당의 슬롯적 뿌리를 측정하고 그에 따라 국가가 일부를 보조하는 방식이다.

연방의회에 따르면 독일의 국가 정당재정은 선거 득표뿐 아니라 당원 및 의원의 회비, 개인의 합법적인 기부금 등을 함께 기준으로 삼는다. 더 중요한 것은 국가 지원금이 정당의 자체 수입보다 많을 수 없다는 ‘상대적 상한’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원칙이다.

국가가 정당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만든 정당에 국가가 일부 보조하는 것이다.

즉, 정당의 생존을 국가가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정당이 먼저 슬롯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당원도 있어야 하고 기부자도 있어야 하고 유권자의 지지도 있어야 한다.

국가 지원은 그 뒤를 따라간다.

독일의 제도가 보여주는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국고보조금은 정당의 독립적인 생존수단이 아니라 시민슬롯에 뿌리내린 정당을 부분적으로 지원하는 장치라는 것이다.

더욱이 독일은 정당의 국가 지원 총액에도 절대적 상한을 두고 있다. 2026년에는 그 상한이 약 2억3237만 유로로 설정되어 있다.

이런 장치를 두는 이유는 간단하다.

정당이 국가 돈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정당의 국가로부터의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 연방의회가 설명하듯 독일의 정당재정제도 역시 국가 지원이 정당의 자체 재원을 넘어서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영국은 더욱 흥미롭다.

영국에도 정당에 대한 공적 지원이 있지만 범위가 제한적이다.

대표적인 것이 ‘Policy Development Grants’다. 2025~26 회계연도 기준 연간 200만 파운드 규모이며, 하원에 최소 두 명의 현역 의원을 가진 정당을 대상으로 정바카라 개발을 지원하는 제도다.

즉, 모든 정당의 일상적인 정치활동을 국가가 폭넓게 재정 지원하는 방식과는 거리가 있다.

영국은 대신 정치자금에 대한 투명성과 기부금 규제를 중요하게 다룬다. 허용된 출처에서만 기부금과 대출을 받을 수 있으며 일정 규모 이상의 자금은 선거관리위원회에 보고하도록 한다.

프랑스 역시 정당에 공적 자금을 지원한다.

하지만 프랑스의 방식도 선거 결과와 정치적 대표성을 중심으로 국가 지원을 배분하면서, 성평등 의무를 지키지 않은 정당에는 재정상 불이익을 주는 구조를 갖고 있다. 2024년 공적 지원액도 정당별 선거 결과와 의회 대표성 등에 따라 차등 배분됐다.

결국 독일·영국·프랑스의 사례는 한 가지 사실을 보여준다.

선진 민주주의 국가라고 해서 국고보조금을 없앤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중요한 것은 ‘정당에게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정당이 시민슬롯와 유권자에게 바카라임을 지도록 돈의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다.

이 차이를 한국은 제대로 고민해야 한다.

국고보조금의 존재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고보조금이 정치인의 행동을 어떻게 바꾸느냐이다.

정당이 국민에게 당비를 걷고 후원금을 모으려면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정바카라도 설명해야 하고 정치인도 설명해야 한다.

당원이 왜 이 정당을 지지해야 하는지 설득해야 한다.

하지만 국가에서 일정한 돈이 자동적으로 들어온다면 그 절박함은 떨어진다.

정치조직은 국민에게 손을 벌리지 않아도 된다.

그 순간 정치와 시민 사이의 연결고리가 약해질 수 있다.

그래서 국고보조금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야 한다.

국고보조금은 정당의 권리가 아니다.

국민이 정치에 투자하는 돈이다.

따라서 정당은 그 돈을 받을 권리를 주장하기 전에 왜 국민이 자신들에게 세금을 투자해야 하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이 원칙에서 보면 현재의 제도는 근본적으로 다시 설계할 필요가 있다.

첫째, 국고보조금의 기본 원칙을 ‘정당 지원’에서 ‘시민의 정치 참여 지원’으로 바꿔야 한다.

국가가 정당에 일괄적으로 돈을 주는 방식보다 국민 개개인이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에게 일정한 범위 안에서 정치기부를 할 수 있도록 국가가 매칭해 주는 방식이 더 민주적일 수 있다.

예를 들어 국민이 1만 원을 정당에 기부하면 국가가 일정 비율을 추가로 매칭하는 방식이다.

그러면 국가 돈이 정당으로 직접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정치적 선택을 거쳐 정당으로 간다.

돈의 주인은 국가가 아니라 국민이라는 원칙을 회복할 수 있다.

둘째, 의원 수에 따른 자동적인 정당 지원은 대폭 축소하거나 폐지할 필요가 있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이지 정당의 재정적 자산이 아니다.

그런데 의원 한 명이 정당의 재정적 생존을 좌우한다면 정치인은 의원직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대신 당의 자산으로 붙잡아 두려는 유인을 갖게 된다.

이번 용혜인 논란이 바로 그 문제를 보여준다.

셋째, 국고보조금은 정당의 ‘존립비’가 아니라 정바카라개발과 정치교육 등 명확한 공익적 목적에 한정할 필요가 있다.

독일의 사례처럼 국가 지원이 정당의 자체 재원을 넘어가지 못하도록 하는 원칙도 참고할 만하다.

넷째, 정당의 국고보조금 사용 내역은 지금보다 훨씬 투명해야 한다.

국민이 세금을 내고 정당에 돈을 주는 것이라면 국민은 그 돈이 어디에 사용됐는지 알 권리가 있다.

정당 운영비, 인건비, 정바카라개발비, 홍보비 등을 세세하게 공개하고 일정 기준 이상은 국민이 쉽게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국고보조금을 받는 정당은 공공기관에 준하는 회계 투명성을 요구받아야 한다.

그리고 다섯째가 가장 중요하다.

국고보조금 제도를 손보는 정치적 결정권을 국회가 독점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정당 국고보조금은 결국 정치인 자신들이 수혜자가 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월급을 자신이 결정하는 것과 비슷한 이해충돌이 발생한다.

실제로 독일에서도 정당재정과 관련한 제도는 헌법적 통제를 강하게 받고 있다. 2023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의회가 국가 정당재정의 총액 상한을 충분한 근거 없이 인상한 것을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정당의 국가 의존성을 높일 수 있는 재정 확대에는 엄격한 한계가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중요한 원리다.

정당이 국가를 지배해서도 안 되고 국가가 정당을 지배해서도 안 된다.

정당은 시민슬롯와 국가 사이에서 국민의 의사를 정치적 의사로 연결하는 조직이어야 한다.

따라서 정당의 재정 역시 시민슬롯와의 연결을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정당의 재정이 국가에 과도하게 의존하면 그 연결이 끊어진다.

국민이 없어도 정당이 살아남을 수 있다면 그 정당은 국민에게 절박하게 설명할 이유가 없다.

바로 이것이 국고보조금의 가장 위험한 역설이다.

국민의 정치 참여를 촉진하기 위해 만든 제도가 오히려 국민으로부터 정당을 독립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국고보조금을 당장 전면 폐지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국가 지원을 완전히 없애면 오히려 돈 많은 개인이나 기업, 이해집단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질 수 있다.

정당이 부유한 후원자에게 의존하는 것 역시 민주주의에는 위험하다.

따라서 답은 단순한 폐지가 아니라 ‘국민 중심의 정치재정’으로의 전환이어야 한다.

국가가 정당에 돈을 주는 방식에서 국민의 정치적 선택을 국가가 지원하는 방식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정당이 국민에게서 100원을 모았다면 국가가 일정한 한도에서 50원을 매칭해 줄 수 있다.

그러나 국민에게서 아무런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정당에게 국가가 자동적으로 거액을 지급해서는 안 된다.

국민이 선택하지 않는 정당을 국가가 계속 먹여 살리는 구조는 민주주의의 논리와 맞지 않는다.

이렇게 보면 용혜인 논란의 의미도 달라진다.

용혜인 후보자가 의원직을 유지하는 것이 법적으로 가능한가 하는 문제는 별개의 문제다.

기본소득당이 실제로 받을 국고보조금의 규모 역시 정확하게 따져야 한다. 최근 보도된 29억 원 이상의 추산액은 향후 경상보조금과 선거보조금 등을 합산한 전망치이며, 이를 곧바로 ‘용혜인이 국민 세금을 29억 원 챙긴다’고 표현하는 것은 부정확하다.

그러나 정치적 질문은 남는다.

6년 전 국고보조금을 ‘기생충 정치’라고 비판했던 정당이 지금은 그 제도의 수혜자가 되었다면, 무엇이 바뀌었는지를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과거의 생각이 틀렸다면 틀렸다고 말하면 된다.

정치인이 생각을 바꾸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생각을 바꿨다면 설명해야 한다.

그것이 정치적 바카라임이다.

그리고 국민 역시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

“용혜인이 내로남불이다”라고 말하고 끝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렇게 물어야 한다.

왜 대한민국 정치인은 국고보조금을 포기하기 어려운가.

왜 국회의원 한 명의 의석이 정당의 재정적 생존과 연결되는가.

왜 정당은 국민의 후원보다 국가의 돈에 의존할 수 있는가.

그리고 왜 정당 스스로 자신들에게 돌아갈 국고보조금의 규칙을 결정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용혜인 한 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용혜인이 사라진다고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음에는 다른 정당의 다른 정치인이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정치인이 과거에 국고보조금을 비판했다가 자신이 수혜자가 되면 또 다른 명분을 만들어낼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제도의 힘이다.

좋은 제도는 정치인에게 성인이 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정치인이 이익을 추구하더라도 국민의 이익을 침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정치인이 권력을 탐해도 제도가 그것을 제한한다.

정당이 돈을 탐해도 국민의 정치적 선택을 우회해서 국가 돈을 가져가기 어렵게 만든다.

그것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다.

따라서 이번 용혜인 논란에서 우리가 내려야 할 결론은 단순한 ‘내로남불’이 아니다.

더 근본적인 결론은 이것이다.

국고보조금은 정당의 권리가 아니다.

국민이 정치에 투자하는 돈이다.

그러므로 정당은 국민의 선택을 통해 그 돈에 접근해야 한다.

국민의 지지가 없는 정당을 국가가 무한정 연명시켜서는 안 된다.

정당이 국민에게서 멀어질수록 국가 돈에 더 의존하는 구조도 바꿔야 한다.

정당의 재정은 시민슬롯와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정당이 국민을 두려워한다.

그래야 정치인이 유권자에게 설명한다.

그래야 정치가 다시 국민에게 돌아간다.

용혜인의 내로남불을 비판하는 것으로 끝내지 말자.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한민국 정당 국고보조금 제도 자체를 다시 묻자.

폐지할 것인가.

축소할 것인가.

아니면 국민 매칭 방식으로 전환할 것인가.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정당이 국민의 세금으로 살아가면서 그 돈을 자신의 권리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는 순간, 민주주의의 주인은 국민이 아니라 정당이 된다.

그것은 국고보조금의 목적과 정반대다.

국민의 돈으로 정당을 키우는 것이 민주주의가 아니다.

국민의 선택으로 정당이 살아남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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