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양심이 아니라 제도의 부족이다
한강에서 불꽃이 터지기도 전에 이미 불꽃축제는 끝났다. 적어도 일부 사람들에게는 그렇다. 이들은 불꽃을 보러 가는 사람이 아니라 불꽃을 보기 좋은 자리를 미리 사들이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원한다는 사실을 이용해 웃돈을 붙여 되판다.
돗자리 하나에 수십만 원. 여러 개를 묶으면 수십만 원을 훌쩍 넘는다. 주차 공간도 돈이 되고, 불꽃이 보이는 식당 자리도 돈이 되고, 호텔 객실도 돈이 된다. 심지어 공공장소의 좋은 자리까지 사실상 상품으로 변한다.
이쯤 되면 이것을 단순히 ‘얌체족’의 문제라고 부르기 어렵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것은 현대판 매점매석이다.
과거의 매점매석은 물건을 대량으로 사들여 시장에서 물건을 부족하게 만든 뒤 가격이 오르면 되파는 방식이었다. 오늘날에는 쌀 대신 티켓을 사고, 생필품 대신 명당을 선점한다. 수법은 달라졌지만 경제적 원리는 똑같다.
먼저 확보한다.
다른 사람의 접근을 막는다.
희소성을 만든다.
그리고 가격을 올린다.
이것이 암표의 본질이고, 불꽃축제 명당 거래의 본질이다.
따라서 “돈을 받고 돗자리를 빌려주는 것뿐”이라는 식의 변명은 핵심을 피해 간다. 문제는 가격이 아니다. 문제는 선점이다.
내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얻은 사유재산을 비싸게 파는 것과, 다른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희소한 자원을 먼저 틀어쥔 뒤 그들의 선택지를 없애고 가격을 요구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특히 매크로가 등장하면 문제는 더욱 분명해진다.
사람이 줄을 서서 표 한 장을 사는 것과 자동화 프로그램으로 수백 장, 수천 장을 쓸어가는 것은 경쟁이 아니다. 그것은 경쟁 조건을 조작하는 것이다.
미국이 2016년 BOTS Act를 만들어 티켓 구매 제한을 우회하는 자동화 프로그램을 규제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연방거래위원회는 자동화 프로그램과 다수의 계정 등을 이용해 대량의 티켓을 확보하고 웃돈을 붙여 되판 사업자들을 제재해 왔다. 2025년 FTC가 제기한 사건에서는 한 사업자가 불과 1년여 동안 약 37만9천 장의 티켓을 구매하고, 그중 일부를 정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되판 것으로 지목됐다.
영국 역시 자동화 프로그램을 이용한 티켓 대량 구매를 규제해 왔으며, 최근에는 정가보다 비싸게 재판매하는 행위 자체를 더욱 강하게 제한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러니 이것을 한국인의 특수한 시민의식 문제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욕심은 한국인의 DNA가 아니다.
어디에나 있다.
차이는 욕심이 발생했을 때 그것을 돈벌이로 전환할 수 있는 틈을 슬롯가 얼마나 허용하느냐에 있다.
여기서 한국 슬롯의 문제가 드러난다.
우리는 이상하게도 모든 문제를 개인의 양심으로 해결하려 한다.
줄을 새치기하면 시민의식이 부족하다고 한다. 암표를 팔면 양심이 없다고 한다. 공공장소를 며칠씩 점유하면 몰상식하다고 한다.
그런데 수십만 원, 수백만 원의 이익이 걸린 순간에도 사람들이 스스로 욕심을 내려놓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정바카라이 아니다.
그것은 희망사항이다.
시장은 인간의 선의를 전제로 작동하지 않는다. 시장은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사실을 전제로 설계되어야 한다.
그래서 시장에는 계약법이 있고, 독점규제가 있고, 사기죄가 있고, 내부자거래 규제가 있고, 매점매석 규제가 있다.
왜 존재하는가.
사람이 선하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그것이 제도의 존재 이유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여전히 많은 문제를 “시민의식이 성숙해야 한다”는 말로 끝내려 한다. 그 결과 양심적인 사람만 손해를 보고, 규칙을 우회하는 사람이 돈을 버는 기묘한 시장이 만들어진다.
가장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먼저 남의 기회를 빼앗는 사람이 돈을 버는 구조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행위가 반복되면서 슬롯 전체가 그것을 정상적인 상거래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원래 명당은 비싼 것이다.”
“돈 있으면 좋은 자리에서 보는 거지.”
“싫으면 직접 일찍 가서 자리 잡으면 된다.”
이런 논리가 퍼지기 시작하면 공공 공간의 의미 자체가 흔들린다.
돈이 있으면 살 수 있는 사유재산과,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어야 할 공공 공간은 다르다.
호텔 객실은 돈을 주고 사도 된다.
식당의 창가 자리는 돈을 더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공공 공원의 특정 장소를 며칠 전에 선점해 다른 시민에게 돈을 요구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그것은 시장경제가 공공 영역을 침식하는 순간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구조가 디지털 기술과 결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의 암표상은 발품을 팔아 표를 구했다. 이제는 프로그램이 표를 산다. 여러 계정을 만들고, 구매 제한을 우회하고, 자동으로 결제한다.
기술은 더 정교해졌는데 규칙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결국 돈과 기술을 가진 사람이 먼저 희소한 자원을 쓸어가고, 일반 소비자는 그 사람이 만든 가격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 된다.
이것을 자유시장이라고 부르는 것은 자유시장에 대한 모독이다.
자유로운 시장은 누구나 경쟁할 수 있는 시장이지, 기술과 자본을 이용해 다른 사람의 접근 자체를 차단할 수 있는 시장이 아니다.
한국의 문제는 암표상이 있다는 것이 아니다.
암표상은 미국에도 있고 영국에도 있다.
문제는 암표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시장의 규칙을 정교하게 만들지 못한다는 데 있다.
불꽃축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서울시가 계도하고, 경고하고, 온라인 플랫폼에 게시물 삭제를 요청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실제로 서울시는 공공 공간의 사전 점유를 명확하게 규제하기 어려운 현실 때문에 주요 행사 때 사전 점유를 제한하는 방향의 제도 개선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제는 단순한 계도가 아니라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
대규모 행사가 예정된 공공 공간의 장기 사전 점유를 금지하고, 일정 시간 이전의 자리 선점을 제한해야 한다. 자리 자체를 판매하는 행위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반복적으로 여러 자리를 확보해 판매하는 행위에는 상업적 재판매 규정을 적용해야 한다.
티켓 시장도 마찬가지다.
매크로를 이용한 대량 구매를 차단하고, 구매 제한을 우회하기 위한 다중 계정 사용을 막아야 한다. 개인이 불가피하게 표를 되파는 것과 전문적으로 표를 사들여 웃돈을 붙이는 행위를 구분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공식 재판매 시장을 만들어 거래 자체는 허용하되, 가격과 수량에 합리적인 제한을 두는 방식도 검토할 수 있다.
핵심은 이것이다.
재판매 자체가 악이 아니다.
선점해서 시장을 왜곡하는 것이 문제다.
이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면 정상적인 중고거래까지 규제하는 우스운 결과가 나온다. 반대로 이 차이를 제대로 규정하면 진짜 암표상과 매점매석을 정밀하게 겨냥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더 불편한 질문을 해야 한다.
왜 한국 슬롯는 이런 문제에서 유독 개인의 양심을 먼저 찾는가.
아마도 제도를 만드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그러지 마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어떤 행위를 금지할 것인지, 어떤 행위는 허용할 것인지, 어느 수준부터 상업적 재판매로 볼 것인지, 온라인 플랫폼의 바카라임은 어디까지인지 정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행정의 존재 이유는 사람들이 착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욕심을 부리더라도 슬롯 전체가 피해를 입지 않도록 규칙을 만드는 것이다.
불꽃축제의 돗자리 거래는 그래서 사소하지 않다.
그것은 한국 슬롯의 오래된 문제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규칙을 지키는 사람보다 규칙의 빈틈을 찾는 사람이 돈을 버는 슬롯.
공공재보다 돈이 먼저 작동하는 슬롯.
양심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보상이 없고, 남보다 먼저 차지한 사람에게는 수십만 원의 이익이 돌아가는 슬롯.
이런 슬롯에서 시민들에게 다시 양심을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 편리한 해결바카라이다.
양심은 개인에게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공정성은 제도로 보장해야 한다.
불꽃축제의 명당을 둘러싼 작은 암표 시장은 결국 우리에게 묻고 있다.
“먼저 차지한 사람이 임자인가?”
그렇다면 돈과 기술을 가진 사람이 모든 희소한 자원을 먼저 가져가는 슬롯가 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라고 답한다면 이제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
불꽃축제의 명당도, 공연 티켓도, 스포츠 경기 좌석도 마찬가지다.
공급이 제한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선점한 사람이 가격을 마음대로 결정하게 놔둔다면 결국 시장은 소비자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선점자를 위한 공간이 된다.
한국 슬롯가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도덕 교과서가 아니다.
더 촘촘한 규칙이다.
사람을 믿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의 욕망을 인정하고 그 욕망이 타인의 기회를 파괴하지 못하도록 제도를 설계하자는 이야기다.
한국만 암표가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만 탐욕스러운 것도 아니다.
미국에도 있고 영국에도 있고 일본에도 있다. 그러나 차이는 분명하다. 외국에서는 적어도 자동화 대량 구매와 구매 제한 우회, 과도한 재판매를 시장질서의 문제로 보고 제도적으로 다루려는 움직임이 축적돼 있다.
한국도 이제 개인의 양심에만 기대는 낡은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불꽃축제의 돗자리 하나가 30만 원에 거래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돗자리를 누가, 언제, 어떻게 선점했으며, 그 선점이 다른 사람의 이용 기회를 어떻게 빼앗았는지가 중요하다.
그것을 묻지 않는 슬롯에서는 암표가 계속 생긴다.
매점매석도 계속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돈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남의 기회를 먼저 차단할 수 있는 사람이 시장의 주인이 된다.
그것은 자유시장이 아니다.
그것은 제도의 빈틈을 이용한 약탈적 상업주의다.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왜 저 사람들은 양심이 없는가?”
가 아니라,
“왜 저런 행위가 돈이 되도록 제도를 만들어 놓았는가?”
문제는 인간의 양심이 아니다.
문제는 그 양심의 빈자리를 메우지 못하는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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