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편하고, 딸은 바쁘고
태국으로 출발하기 전, 준비해야 할 것들이 꽤 많았다. 긴 일정이기도 했고, 태국 내에서 도시를 이동하기도 해야 했다. 더욱이 내가 걱정이 많은 편이라서 혹시 모를 상황들도 대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 사실 효도 관광으로 내가 태국을 선택한 이유가 있었다. 관광대국답게 태국엔 여행자를 위한 편의 서비스가 많이 있어서 사실상 돈만 쓰면 되는 구조가 가능했다. 물론 어딜 가든 돈을 쓰면 편안한 여행이 된다. 하지만 또 너무 비싼 돈을 쓸 수 없는 사정도 있고, 아빠 성격상 또 비싼 서비스를 이용한다고 하면 싫어하실 것이 뻔했다. 그런 점에서 태국이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아빠의 환갑 때 내가 일본 여행을 효도 관광으로 모시고 갔었는데, 내 체력과 나의 컨디션만 생각하고 무작정 걷다가 아빠 발에서 피가 났었다. 아빠는 괜찮다고 웃었지만, 나는 그 일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마저도 10년 전의 일이었으니, 나는 더 신경을 써야 했다. 그래서 아빠의 이번 여행은 무조건 몸도 마음도 편안하셔야 했다.
그래서 미리 준비한 것 중 하나가 ‘영문 처방전’이었다. 심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빠에겐 지병이 있고 그 때문에 매일 드시는 약들이 있었다. 약을 챙겨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혹시라도 현지에서 아빠의 건강에 문제가 생겼을 때를 대비해야 했다. 아빠의 기저질환을 말로 설명을 못해도 드시는 약을 보면 의사는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다음으로 신경을 쓴 것은 비행편이었다. 나는 태국을 이전에도 여행했었는데 그때마다 저가항공을 즐겨 탔다. 공항에서 밤샘도 하고 새벽 첫 비행기를 타는 일도 별거 아니었다. 그러나 아빠를 모시고 가는 효도 관광에서 그럴 수는 없었다. 항공편이 조금 비싸도, 조금 더 편안한 좌석을 택하고, 시간대도 집에서 적당한 시간에 출발하는 것을 택했다. 방콕까지는 6시간 가까이 걸리는데, 이 정도 장시간 이동은 아빠에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때문에 나는 사전에 화장실이 멀지 않고 활동이 불편하시지 않을 만한 좌석을 선택해 두었다. 또 무거운 캐리어를 무리 없이 이송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까지 다 했다.
우리의 비행기는 저녁 7시에 인천공항에서 출발하는 비행편이었다. 집에서 점심을 먹고, 여유 있게 공항으로 이동할 수 있는 시간을 택했다. 공항에 도착해서는 마찬가지로 미리 준비한 카드로 공항 라운지에 식사하러 갔다. 먹성이 좋은 아빠이시기에 나는 라운지 식사를 회심의 카드로 준비했던 거였는데, 엄마와 달리 아빠는 그저 식당은 식당이지 뭐 하는 분위기셨다.
“그 카드로 여기 공짜인 거라니까.”
이럴 때 내세울 건 내가 얼마나 알뜰살뜰하게 잘 준비했는가를 어필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점심 먹은 지 오래 지나지 않아서 생각보다 아빠가 잘 드시지는 않았다. 시간대를 고려하지 못한 것은 내 패착이었다. 그래도 우리의 비행시간을 기다리며 게이트 근처에서 대기하는 동안 아빠는 꽤나 즐거워 보이셨다. 아빠의 첫 장거리 비행은 생각보다 더 순조로웠다. 좌석도 편안해하셨고, 기내식도 잘 드셨다. 6시간 정도가 걸려 우리는 수완나품 공항에 도착했다. 내 한 가지 걱정은 공항이 붐비는 것이었는데, 다행히 입국 심사가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방콕은 입국 심사 때 지문을 찍어야 해서 나는 잠시 걱정을 했다. 아빠의 엄지손가락은 지문이 닳아서 잘 찍히지 않기 때문이었다. 예전에 여권을 만들러 갔을 때 그로 인해서 어찌나 애를 먹었는지 모른다. 나 개인도 해외를 나갈 때는 입국 심사가 신경이 쓰이는데, 부모님을 모시고 나갈 때는 정말이지 배로 예민해지기 마련이었다. 더욱이 지난 독일 여행 때 너무 장시간 기다리면서 고생했던 터라 태국에서 순조롭게 입국 심사를 하고 나니 큰 짐을 내려놓은 듯 편안했다.
짐을 찾고 밖으로 나왔을 때, 이미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그러나 사전에 택시를 예약해 두었기 때문에 크게 걱정은 없었다. 그 시간대에 도착하는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택시를 예약하고 와서 매우 많은 회사들이 고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빠는 그게 또 내심 신기하신 모양이었다.
“태국은 관광이 주산업이잖아. 여긴 어지간한 여행자 서비스가 다 있고, 가격도 저렴해.”
아빠에겐 가격도 저렴하다는 이야기를 꼭 해야 했다. 그래야 조금 더 편하게 즐기실 테니까 말이다. 우리의 담당 기사님이 오기 전에 나는 잠시 공항 편의점에 갔다. 시간이 늦기도 했고, 우리가 머물 호텔 가까이엔 편의점이 없어서 간단한 간식과 물을 사야 했다. 편의점에 다녀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택시가 배정되어 안내를 받았다. 공항 앞에서 만난 택시 기사님은 친절하게 우리의 짐을 챙겨주었고, 우리가 머물 호텔에 안전하게 내려주었다. 일정상 방콕에서도 조금 외곽 쪽에 있는 저렴한 호텔을 예약했는데, 우리가 도착하자 직원이 서둘러 나와 짐을 또 챙겨주었다. 호텔 프런트가 2층에 있어서 그 앞까지 친절하게 짐을 옮겨 주었고, 덕분에 나는 아빠를 모시고 편안하게 체크인을 할 수 있었다. 방콕 외곽인 데다 워낙 저렴하게 예약을 해서 호텔에 대한 기대가 크지는 않았는데, 방도 넓고 깨끗했다. 아빠도 꽤 만족스러워하셨다.
“여기가 얼마라고?”
“6만 원!”
“괜찮네.”
“아니 일정 때문에 이 지역에서 숙소 찾는데, 여기만큼 괜찮은 데가 없더라고.”
나는 얼마나 가성비 넘치는 선택이었는지 다시금 강조하며 말했다. 아빠는 무조건 싸다고 좋아하시는 짠돌이 타입은 아니지만, 좋은 것을 싸게 잘 사는 것은 좋아하시는 분이다. 내가 태국 여행에서 아빠에게 어필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이거였다. 이후로도 여행 내내 나는 가성비 넘치는 선택은 아빠에게 자랑했다. 반대의 경우? 비싸다고 마냥 싫어하시는 분도 아니라서 그땐 또 그것대로 아빠를 위한 특별한 선물이라고 말씀드리면 되는 거였다. 아낄 땐 아끼고, 쓸 땐 쓰는 지혜로운 딸이라는 것만 잘 보여드리면 아빠는 충분히 기뻐하실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