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독자들의 초대를 받고 서울로 나간다.
무슨 옷을 입을까.
이제 살도 찌고 시골생활에 젖어 아무 것도 어울리지 않는다.
옷장을 뒤지다가 마음처럼 옷도, 강의도 편하기로 했다.
운동화다.
운동화를 기준으로 정하니
티에 편한 바지 하나면 충분했다.
버스정류장.
시골버스는 정해진 시간은 있으나 +,- 20분이다.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그늘을 찾아 어슬렁대며
'버스가 언제 오나?'가 머리 속을 채우려 할 때,
순간,
바로 위다!
꾀꼬리!
아주 가까이에 있다.
노랑 녀석은 우거진 상수리나뭇잎 사이에서 언뜻언뜻 기척만 드러낸다.
'아름답다'로 조립된 활자로는 담아낼 수 없는 소리다.
그 소리를 따라 내 시선은 가지 사이사이를 훑는다.
녀석의 소리는
옆에서 흐르는 물소리까지 보태져
강위 도로를 질주하는 오토바이 소리까지 삼켰다.
나뭇가지를 훑던 눈에
개복숭아가 주렁주렁 열린 것까지 포착되니
'버스가 왜 안오지?'라는 생각도 사라졌다.
나는 때로, 아니 자주 불필요한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오래 고민하는 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시간은 충분하고 버스는 알아서 올텐데
나는 '버스는 언제 오지?'로 머리 속을 채운다.
많든 다양하든 크든
머리 속의 것을 비우는 데
사소한 기척 하나면 되었다.
감각을 열고
그저 있는 자리에서
들리고 보이는 것으로 충분했다.
'버스는 왜 안 오나?'같은 소소한 것에서
'결과는 언제쯤 오나?'
'삶이 이렇게 흘러도 되나?'까지.
마치 깊이 사유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어떤 흐름을 붙잡으려는 것일 뿐이다.
무슨 옷을 입고 어떤 강의를 할까?는 운동화에서 풀렸고
버스가 제 때 와야 하는데 왜 안오지?는 꾀꼬리 소리에서 떨쳐졌다.
그 많은 생각은 결국 '따위'가 되는데도
나는 자주 '따위'에 잠긴다.
사소한 기척이
일상의 기적으로 연결된다.
기적은
초월된 힘으로부터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다.
늘 그 자리에 있는 존재를 일상에 들여
흘러가는 삶의 어떤 지점에서
그 이유를 알게 된다면
그것이 기적이다.
운동화를 떠올린 기척이,
꾀꼬리를 들은 기척이
내 삶의 어떤 곳, 어떤 순간에 어떤 이유로 드러날까.
내 기척을 알아챘는지
노랑 녀석이 가지 사이에서 뾰로록~~ 나타나더니 멀리 가버렸다.
소리는 멈췄고
내 귀에는 물 흐르는 소리만 남았지만
정류장 근처의 노란 물결이 눈에 닿았다.
생각을 내리니 눈과 귀가 열린다.
아니, 사소한 기척이 눈과 귀를 열었고
생각은 떨쳐졌다.
그래,
잠기지 말자.
열고 살자.
지금의 감각을 느끼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렇게 삶은
내 예상이나 예측, 예견이 아니라
전혀 알 수 없는 어떤 이유로 흐르고 있으니...
-2026. 5. 31.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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