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력 시작은 독서가 아니라 생각 말하기
요즘 아이들의 문해력에 관심이 많다.
아이들의 문해력이 떨어졌다고 하니
부모들도 걱정이 많다.
그러다 보니 ‘문해력’이라는 단어 앞뒤로
참 많은 것들이 붙는다.
문해력에 좋은 바카라,
문해력 독서,
문해력 논술,
문해력 교육.
심지어 한자 교육까지.
마치 이것들을 하나씩 시키다 보면
아이의 문해력이 자연스럽게 좋아질 것처럼 말한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최근 들어 자주보이는 모습이 있다.
바카라을 읽을 수 있는데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소리 내어 읽으라고 하면 잘 읽는다.
글자도 안다.
그런데 읽은 뒤 물어보면 막힌다.
“이 아이는 지금 어떤 기분일까?”
“왜 이렇게 행동했을까?”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 것 같아?”
“너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
대답하지 못한다.
분명 읽었지만 답은 못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바카라이 어려운가 싶었다.
조금 더 쉬운 바카라을 주면 되지 않을까.
문장이 짧고,
어휘가 쉽고,
아이들이 이해하기 쉬운 내용의 글을 읽혔다.
그런데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읽기는 읽는데 여전히 묻는 순간 멈췄다.
그 모습을 계속 보다 보니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글을 못 읽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건 아닐까.
글을 이해한다는 것은 글자를 눈으로 따라가는 것과는 다른 일이다.
한 문장을 읽고 그 문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인물의 행동을 보고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생각해야 한다.
앞의 내용을 바탕으로
뒤에 일어날 일을 짐작하기도 해야 한다.
글에 직접 쓰여 있지 않은 마음을
상황을 통해 추측하기도 해야 한다.
결국 글을 이해하는 과정에는
계속해서 ‘생각’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생각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아이에게
바카라부터 많이 읽히면 어떻게 될까.
아이는 ‘읽는 것’에만 집중한다.
첫 줄부터 마지막 줄까지 읽었으니
바카라을 읽었다고 생각한다.
10쪽을 읽었고,
20쪽을 읽었고,
한 권을 다 읽었으니
오늘의 독서는 끝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글자를 읽는 것과
글을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
그래서 나는 문해력을 이야기할 때마다
독서보다 먼저 해봤으면 하는 것이 있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
거창한 토의토론이나 논술부터 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가장 가까운
‘나’에 대한 생각부터 시작하면 된다.
“오늘 왜 기분이 좋았어?”
“왜 속상했어?”
“아까는 왜 화가 났어?”
“왜 그 장난감을 갖고 싶어?”
처음에는 아이가 대답한다.
“그냥요.”
“좋아서요.”
“싫어서요.”
“짜증 나서요.”
어쩌면 우리는 여기서
대화를 끝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 번만 더 물어보면 좋겠다.
“왜 좋았는데?”
“어떤 점이 싫었어?”
“무엇 때문에 짜증이 났어?”
아이 스스로 자신의 감정과 행동에
이유를 붙여보게 하는 것이다.
“친구 때문에 화났어요.”
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친구가 제가 좋아하는 물건을 허락 없이 만졌어요.
저는 그 물건을 소중하게 생각하는데
물어보지도 않고 만지는 모습을 보니까 기분이 나빴고 화가 났어요.”
라고 말할 수 있도록.
이 차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떠올리고,
왜 그런 감정이 생겼는지 생각하고,
그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찾아보고,
그것을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말로 표현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아이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이 과정이 우리가 글을 읽을 때 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 인물은 왜 화가 났을까?”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
“이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평소 자신의 감정조차
‘그냥’, ‘짜증 나’, ‘싫어’로 끝내던 아이에게
바카라 속 인물의 복잡한 감정을
문장과 상황을 통해 추론하라고 하면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도 어려운데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들여다볼까.
그래서 문해력의 시작은
꼭 바카라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밥을 먹다가도 할 수 있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도 할 수 있고,
자기 전에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면서도 할 수 있다.
오늘 무엇이 재미있었는지.
왜 재미있었는지.
무엇이 속상했는지.
왜 속상했는지.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아이가 자신의 생각에
‘왜’를 붙여 말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어쩌면 이것이
문해력을 위한 가장 쉬운 시작일지도 모른다.
물론 독서는 중요하다.
바카라을 읽으며 아이는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수많은 상황을 만나고,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접하고,
새로운 어휘와 표현을 배운다.
하지만 바카라을 많이 읽는다고
저절로 생각하는 힘까지 생기는 것은 아니다.
한 권을 읽더라도
그 안에서 무엇을 생각했는지가 중요하다.
그리고 바카라 속에서 생각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삶 속에서 생각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생각하고,
그 생각의 이유를 찾고,
그것을 말로 표현하는 것.
나는 이것이
문해력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바카라을 펼치는 것은
그다음이어도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