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편이 되어주되 잘못까지 편들지는 말아요

양쪽 말을 듣기 전까지는 판단하지 말아요

byM ent

두 사람이 싸웠다. 한 사람에게 물어본다.

“왜 싸웠어?”

아마 그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상대방이 잘못한 것처럼 느껴질 가능성이 크다.


이번에는 상대방에게 똑같이 물어본다.

“왜 싸웠어?”

신기하게도 이번에는 처음 이야기했던 사람이 잘못한 것처럼 느껴진다.


둘 중 한 명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걸까?

꼭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해석하고 말한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는 순간,
객관적인 의견을 듣고 싶은 마음만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싶고, 내 마음을 이해받고 싶고,
때로는 내 편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그러다 보니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자신에게 유리한 이야기는 조금 더 크게 말하고
불리한 이야기는 많이 작게 말하게 된다.


내가 받은 상처는 자세히 기억하지만,

내가 상대에게 준 상처는 잘 기억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래서 한쪽의 이야기만 듣고 어떤 일을 판단하는 것은 생각보다 위험하다.

이런 모습은 뉴스에서 자주 볼 수 있다.


같은 사건을 다루는데도 누구를 취재했는지,
어떤 장면을 보여주는지, 어떤 말을 제목으로 뽑았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실은 하나일지 몰라도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은 하나가 아니기 때문에 사실이 여러 가지로 보인다.


아이들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학교에서 친구와 다툰 아이가 집에 가서 말한다.

“걔가 먼저 나한테 뭐라고 했어.”

“선생님이 나한테만 뭐라고 했어.”

“나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걔가 먼저 때렸어.”


그 이야기를 들은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

속상하고 화가 날 것이다.

내 아이가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데
당연히 지금 당장 쫓아가서 따지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아이의 말을 믿어주고 싶은 것도
부모로서 너무나 자연스러운 마음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번만 더 생각해 보면 좋겠다.

아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다.

아이도 자신의 입장에서 그 일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뜻이다.


“걔가 먼저 나한테 뭐라고 했어.”

그전에 내가 친구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는 빠져 있을 수 있다.

“선생님이 나한테만 뭐라고 했어.”

선생님이 여러 번 하지 말라고 이야기했다는 사실은 빠져 있을 수 있다.

“걔가 먼저 때렸어.”

그전에 내가 친구의 물건을 빼앗았다는 이야기는 뒤로 숨길 수 있다.


어른도 자신의 잘못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다.

하물며 아이는 어떨까.


그래서 아이의 말을 믿어주는 것과 아이의 말만 듣고 판단하는 것은
다른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당연히 부모가 아이의 편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밖에서 힘든 일을 겪었을 때, 언제든 돌아와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손가락질하더라도
마지막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막아주는 사람.

그런 존재가 부모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의 편이 되어주는 것과

아이의 모든 행동을 옳다고 말해주는 것은 다르다.


“엄마 아빠는 네 편이야.”

이 말 뒤에는 어쩌면, 한 문장이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네가 잘못한 행동까지 옳다고 해줄 수는 없어.”


아이의 이야기만 듣고
상대 아이를 탓하고, 상대 부모를 탓하고, 선생님을 탓하고,
학교를 탓하는 일이 반복되면 아이는 무엇을 배우게 될까.


처음에는 ‘엄마 아빠는 언제나 내 편이구나.’

라는 든든함을 배울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반복되면 어느 순간

‘나는 잘못하지 않았어.’

‘문제가 생기면 항상 상대방에게 이유가 있어.’

‘어차피 엄마 아빠는 내편이고 이 일을 해결해 줄 거야.’

라고 생각하게 될 수도 있다.


그때부터 부모는 아이를 지켜주는 울타리가 아니라,
자신의 어떠한 행동을 돌아보지 않아도 되는 면죄부가 될 수 있다.


아이들은 많은 실수를 한다.

친구에게 나쁜 말을 할 수도 있고,
욕심을 부릴 수도 있고,
거짓말을 할 수도 있고,
순간적인 감정을 참지 못할 수도 있다.

아이니까, 아직 배우지 못했으니까 그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돌아보고,
상대방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잘못한 것이 있다면 인정하고,
필요하다면 사과하고,
다음에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생각하는 것.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잘못하지 했을 때, 회피하는 경험이 아니라
잘못했을 때 인정하는 경험인지도 모른다.

그 경험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부모라는 어른이어야 하지 않을까.


아이가 울면서 또는 화난 모습으로 돌아온 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할 때
나는 이런 질문을 해봤으면 좋겠다.

“그래서 걔가 왜 그랬을까?”

“그전에 너는 어떻게 했어?”

“선생님은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


그리고 가능하다면 상대방의 이야기도 들어봤으면 좋겠다.

아이를 의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아이를 제대로 믿어주기 위해서다.


내 아이가 소중하기 때문에 아이의 말만 믿는 것이 아니라,

내 아이가 소중하기 때문에 아이가 자신의 행동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그것이 어른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내 편이 필요하다.

특히 아이에게는 무슨 일이 있어도 돌아갈 수 있는 든든한 내 편이 필요하다.

하지만 진짜 내 편은 내가 잘못했을 때조차
“넌 아무 잘못 없어.”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아닐 것이다.


내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을 때, 잠시 멈춰 세워주는 사람.

내가 듣기 싫어하더라도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말해주는 사람.

그리고 잘못을 인정하고 돌아왔을 때, 다시 손을 잡아주고 안아주는 사람.


나는 그것이 아이에게 필요한 ‘내 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언제나 너의 편이야.

하지만 옳지 않은 행동까지
너의 편이 되어줄 수는 없어.


어쩌면 아이에게 줘야 하는 진정한 사랑은 이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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