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학습법
아이들에게 새로운 것을 가르치다 보면
참 재미있는 순간이 있다.
처음 배울 때는 그렇게 어려워하던 것을
어느 순간 너무나 당연하게 사용한다.
한글이 그렇다.
처음에는 글자 하나를 읽는 것도 어려웠다.
‘ㄱ’과 ‘ㅏ’를 합쳐 ‘가’를 만들고,
글자를 하나씩 이어 읽으며
겨우 한 문장을 완성했다.
덧셈과 뺄셈도 마찬가지다.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가며 계산하고,
받아 올림 하나에도 한참을 고민했던 아이가
어느 순간부터는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덧셈과 뺄셈을 한다.
“3,000원짜리 두 개니까 6,000원이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계산한다.
그렇게 처음에 어렵다고 하기 싫다고 하던 것들이
왜 어느 순간 쉬워졌을까.
물론 아이가 배우고 성장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고 생각한다.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한글은 학교에서만 만나지 않는다.
길을 걸으면서 간판을 읽고,
과자 봉지를 보면서 글자를 보고,
휴대폰을 보면서도 글을 읽는다.
숫자 중 자연수도 마찬가지다.
가격을 보고,
시간을 보고,
날짜를 보고,
점수를 본다.
배운 뒤에도 일상에서
수없이 다시 만난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
‘공부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알고 있는 것’이 된다.
반대로 아이들이 어려워하는 것들을 생각해 보면 어떨까.
분수, 소수, 나눗셈.
그리고 외국어.
학교와 학원에서는 자주 만나지만,
교실과 학원 밖으로 나오면 사용할 일이 크게 줄어든다.
어쩌다 마주치더라도
의식하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그래서 아이에게는 계속 낯설다.
독서도 비슷하다.
어릴 때부터 그림바카라과 만화바카라을 많이 접한 아이에게
그림이 많은 바카라은 편하다.
반면 글자가 빼곡한 바카라을 펼치면
읽기도 전에 부담스러워한다.
“너무 길어요.”
“글씨가 너무 많아요.”
내용이 정말 어려워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때로는
그저 익숙하지 않아서 어렵다고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사람은 익숙한 것을 편하게 느낀다.
반대로 낯선 것은 불편하다.
그리고 우리는 가능하면
불편한 것보다 편한 것을 선택하려 한다.
그래서 학습의 시작에서는
'익숙함'을 잘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잘하게 만드는 것보다
먼저 자주 만나게 해주는 것이다.
분수가 어렵다면
문제집에서만 분수를 만나게 하지 않는 것.
피자를 나누면서도 이야기해 보고,
케이크를 자르면서도 이야기해 보고,
생활 속에서 반과 절반을 찾아보는 것.
영어가 어렵다면
영어를 공부하는 한 시간에만 만나게 하지 않는 것.
좋아하는 노래에서도 만나고,
영상에서도 만나고,
아주 짧은 문장이라도 생활 속에서 사용해 보는 것.
긴 글을 어려워한다면
처음부터 많은 양을 읽히기보다
조금씩 줄글을 만나는 시간을 늘려가는 것.
중요한 것은
‘이건 어려운 공부야.’라는 생각보다
‘이거 어디서 많이 봤는데?’라는 느낌을 먼저 만들어주는 것이다.
낯선 것이 익숙해지면
학습을 시작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도 줄어든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익숙함이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어느 순간부터는
오히려 익숙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아는데 실수했어요.”
한 번이라면 정말 실수일 수 있다.
그런데 비슷한 문제에서
계속 같은 실수를 한다.
그런데도 아이는 말한다.
“원래 아는 건데요.”
여기에서 익숙함의 함정이 생긴다.
여러 번 본 것과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을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문제를 보는 순간
‘이거 해봤어.’
라는 생각이 들고,
그 익숙함을
‘이거 알아.’
라고 착각한다.
그리고 이 착각은 틀린 이유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는 치명적인 방향으로 나가간다.
몰랐던 것이 아니라
그저 실수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이 부족한 부분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리고 비슷한 문제가 나오면
다시 틀린다.
그래서 학습의 어느 순간부터는
익숙함에서 아이를 조금 꺼내줄 필요가 있다.
늘 풀던 문제보다
조금 더 생각해야 하는 문제를 만나게 하고,
늘 읽던 수준보다
조금 어려운 글을 읽어보고,
익숙한 방식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보게 하는 것이다.
때로는 환경을 바꾸는 것도 좋다.
늘 같은 사람과 이야기했다면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들어보는 것이다.
독서모임에 가볼 수도 있고,
아이들이 서로 생각을 이야기하는 모임에 참여할 수도 있다.
그곳에서는 자신과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난다.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에
누군가는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진다.
그 순간 아이는 알게 된다.
‘내가 알고 있는 게 전부는 아니구나.’
나는 이 경험도
공부에서 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익숙함은 아이에게
시작할 용기를 준다.
하지만 낯섦은 아이에게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한다.
그래서 학습에서는
둘 다 필요하다.
처음에는 익숙하게.
자주 보고,
자주 사용하고,
자주 경험하면서
‘어렵다’를
‘할 만하다’로 바꾸는 것.
그리고 충분히 익숙해졌다면
조금 낯설게.
조금 더 어려운 문제를 만나고,
새로운 환경에 들어가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만나면서
‘나는 알아’를
‘정말 알고 있는 걸까?’로 바꾸는 것.
기초를 만들 때는 익숙함을 이용하고,
성장을 위해서는 낯섦을 이용한다.
아이에게 언제나 편안한 공부만 줄 필요도 없고,
언제나 어려운 공부만 줄 필요도 없다.
지금 우리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조금 더 익숙해지는 것인지,
아니면 이제 익숙함에서 벗어나는 것인지.
그것을 알아보는 것.
어쩌면 부모가 아이의 공부를 도울 때
가장 먼저 살펴봐야 할 부분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