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0년, 하버드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두 권짜리 '심리학의 원리'를 펴내며
마음의 문턱에 대해 적었다.
우리의 눈과 귀로는
매 순간 수없는 것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창밖 마차 소리, 옆자리 기침,
벽시계 초침, 먼 곳의 웃음
그러나 마음은 그중 아주 작은 조각만 붙든다,
나머지는 강물 위의 낙엽처럼
말없이 흘러간다.
그는 이렇게 썼다.
지혜로워진다는 것은
무엇을 그냥 지나쳐도 되는지 아는 일이다.
반세기가 지난 1953년,
영국 과학자 콜린 체리는
마음의 문턱을 실험실로 가져왔다.
한 사람의 두 귀에
서로 다른 목소리를 동시에 들려주고
한쪽만 따라 말해보라고 했다.
사람들은 해냈다.
다른 쪽 귀로는 분명 소리가 들어오는데도
말의 내용은 거의 남지 않았다.
체리는 그것을 칵테일파티 효과라고 불렀다.
수십 개의 대화가 뒤섞인 방에서도
우리는 한 사람의 목소리를 따라갈 수 있다.
듣는다는 것은
모든 소리를 받아들이는 일이 아니라
어떤 소리 곁에 머물지 고르는 일이었다.
지나가며 던진 한마디를
밤새 되새겼고
돌아서며 흘린 비아냥에도
끝내 답을 달아주어야 직성이 풀렸다.
모든 말을 받아내려 했던 하루는
저녁이 되면 내 것이 아니었다.
남의 말로 가득 찬 방처럼
내 목소리가 앉을자리가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알았다.
흘려보낸다고 해서
내가 약한 것은 아니라는 것
무시한다는 것은
상대를 깔보는 일이 아니라
내 마음의 문을 내가 여닫는 일이었다.
강물은 돌을 만나도
싸우지 않고 돌아서 흐른다.
그래서 바다에 닿는다.
정원사는 모든 풀을 뽑지 않는다.
오늘 지켜야 할 꽃 곁에서만
조용히 손을 움직인다.
들리지만 듣지 않는 귀,
보이지만 따라가지 않는 눈,
그것은 무뎌짐이 아니라
오래 걷기 위해 길러낸 감각이었다.
소란은 여전히 방 안을 채우고 있다.
그 한가운데에서
내가 듣고 싶은 목소리 하나에
가만히 귀를 기울인다.
은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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