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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불러주면, 파도는 낮아진다

by은파랑

2007년,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한 연구실
신경과학자 매튜 리버먼은
사람들을 커다란 뇌 스캐너 안에 눕혔다.

그리고 화면 위에
성난 얼굴, 겁에 질린 얼굴을 차례로 비추었다.

순간 뇌 깊은 곳의 편도체는
작은 경보처럼 환하게 켜졌다.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자리였다.

이번에는 한 가지를 바꾸었다.
얼굴을 보는 사람에게
표정의 이름을 말해보라고 했다.

화난 얼굴
두려운 얼굴

이름을 붙이는 동안
경보의 불빛은 조금씩 잦아들었고
이마 뒤쪽, 생각을 맡은 자리가
조용히 깨어났다.

리버먼은 그것을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일이라 불렀다.
말이 된 감정은 파도의 높이가 낮아진다.

감정은 나를 덮치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손님이었다.
이름을 불러주면 비로소
문 앞에 선 얼굴이 보였다.

사소한 한마디에
가슴이 먼저 달려 나가고
말보다 빠르게 얼굴이 굳었던 저녁

그때 화났다고 생각했다.
그 감정이 곧 나라고 믿었다.

그러나 한참 뒤
숨을 고르고 마음을 들여다보니
그곳에는 분노가 아니라
서운함이 웅크리고 있었다.

인정받지 못했다는 작은 외로움이
화라는 외투를 걸치고 서 있었다.

이름을 알게 되자
외투가 풀렸고
그 앞에 조용히 앉을 수 있었다.

감정에 끌려다니지 않는다는 것은
감정을 누르는 일이 아니다.

파도를 막으려 손을 뻗는 대신
해변에 서서
파도의 이름을 불러보는 일이다.

지금 밀려오는 것은 불안이구나
지금 차오르는 것은 서운함이구나

그렇게 말해주는 사이
파도는 나를 지나
먼바다로 돌아간다.

감정이 오고 가는 동안에도
해변에 서 있다
젖은 발목으로,
그러나 쓰러지지 않은 채

은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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