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0년, 파리의 서재에서
사람들은 죽은 파스칼의 종잇조각을 펼쳤다.
꿰매고 접고 또 꿰맨 메모의 숲
숲 한가운데 한 줄이 살아 있었다.
마음에는 마음의 이유가 있어서
이성은 끝내 문턱을 넘지 못한다.
평생 셈하던 손이 남긴 것은
풀이가 아니라 고백이었다.
재고 또 재어도 남는 것이 있다.
남는 것을, 우리는 사랑이라 불렀다.
이유를 대면 입술이 마르고
이유를 놓으면 가슴이 젖는 것
덕분이라는 말
덕 덕(德), 나눌 분(分)
네가 베푼 덕의 한몫이라는 뜻
내 하루가 이만큼 따뜻한 것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네가 건넨 몫이 있었기 때문이다.
빛난다는 말
빛이 난다, 빛이 나온다.
어디선가 흘러들어 온 것이 아니라 안에서 번져 나오는 것
그러니 삶이 빛나는 건
네가 불을 켜 주어서가 아니라
네 곁에서 내 안의 불이 제 이름을 찾았기 때문
너를 만나기 전의 나는
불 꺼진 방, 가구만 서 있던 방
있으나 없는 듯 머물던 시간
네가 문을 열던 날
벽은 제 빛깔을 기억해 냈고
그림자는 제 길이를 되찾았다.
창은 비로소 창이 되었고
아침은 비로소 아침이 되었고
나는 비로소 내가 되었다.
사람들은 묻는다.
왜 그렇게 환하냐.
나는 웃기만 하고 대답을 아낀다.
이유를 세어 보려다 세다 말고
말투며 걸음이며 오후의 기울기며
세다 보면 늘 사랑이 먼저 와 앉아 있어서
당신은 묻는다.
왜 나를 사랑하느냐.
나는 대답 대신
불 켜진 창 하나를
당신 쪽으로 가만히 돌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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