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여럿이 온다.
웃음이 많은 날에
잔이 가득한 날에
볕이 좋은 날에
하지만 사람은
떠날 때 비로소 보인다.
누가 가고
누가 남는지
남는다는 말
남다와 남
같은 소리를 두고
하나는 머물고 하나는 멀다.
끝까지 남는 사람은
더는 남이 아니다.
남아 준 만큼
남에서 우리가 된다.
겉에 머무는 사람은 많고
곁에 머무는 사람은 적다.
겉과 곁은
소리 하나 차이지만
거리는 한 생애만큼 멀다.
추사 김정희가
제주 바닷가로 귀양을 갔을 때
세상의 발길은 하나둘 끊겼다.
그런데 제자 이상적은
멀리 청나라에서 어렵게 구한 바카라을
거듭 바다 건너 보내왔다.
추사는 마음에 답해
그림 한 폭을 그렸다.
쓸쓸한 집 한 채 곁에
소나무와 잣나무 몇 그루
세한도(歲寒圖)였다.
그리고 '논어'의 한 구절을 적었다.
날이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안다.
봄에는 모든 나무가 푸르다.
누가 소나무인지
누가 잠시 푸른 잎인지
아무도 모른다.
겨울이 와야 안다.
잎이 다 떨어진 들판에
끝까지 푸른 채로 서 있는
한 그루
가치라는 말을
소리 내어 읽으면
같이라는 말이 된다.
어쩌면 사람 가치란
얼마나 빛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같이 있어 주느냐인지 모른다.
좋은 날에 오는 사람은 손님이고
궂은날에 오는 사람은 식구다.
웃을 때 곁에 있는 사람은 벗이고
울 때 곁에 있는 사람은 기둥이다.
많은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모두가 떠난 자리에
한 사람이면 된다.
한 사람이 세상 하나가 된다.
내 겨울에 남아준 한 사람을
묻는다.
나는 누구의 겨울에 남았던가
화려한 꽃이 되지 못해도 괜찮다.
누군가의 추운 계절에
끝까지 푸르게 서 있는
소나무 한 그루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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