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림 한가운데서

3장. 사이- 해태

by바다별다락방


그는 무엇을 해야 할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상자에서 꺼낸 도구들을 정리했고, 종이도 새로 꺼내 두었다. 마음속에서는 분명한 방향이 그려지는 듯했다. 그런데 막상 연필을 들자 손이 느려졌다. 방금까지 또렷했던 생각이 미묘하게 흐려졌다.


이 선이 맞는지, 다른 선이 더 나은지. 지금 시작하는 것이 옳은지, 조금 더 기다리는 것이 옳은지. 사소한 선택 앞에서 그는 이상하게 오래 머물렀다. 결정은 크지 않았지만, 감정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자신감이 올라왔다가 곧바로 의기소침해졌다. 잘해낼 수 있을 것 같다가도, 괜히 멈추고 싶어졌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 안을 한 바퀴 돌았다. 창밖을 보았다가, 다시 종이를 보았다. 마음은 자꾸 양쪽으로 기울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데도, 그는 자꾸 스스로를 재단하려 했다. 그때 그는 알았다. 판단하려는 마음이 그를 더 흔들리게 하고 있다는 것을. 맞고 틀리고를 나누려는 순간, 감정은 더 복잡하게 섞여버린다. 그는 연필을 내려두고 잠시 숨을 골랐다.


그 순간, 바닥이 아주 미세하게 울리는 듯했다.


처음에는 자신의 맥박이 발바닥을 통해 전해지는 줄 알았다. 그러나 울림은 점점 커졌다. 바닥의 결이 미묘하게 뒤틀리기 시작했고, 그가 서 있는 자리 아래에서 느린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공기가 안쪽으로 말려 들어가듯 모였다. 그는 한 발 물러섰다. 종이가 바닥에 떨어졌다. 방 안의 사물들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약간씩 어긋나 보였다. 선반은 기울지 않았지만 기울어 보였고, 창문은 닫혀 있었지만 바람이 스며드는 듯했다.


그리고 어떤 목소리.


뚜렷한 언어는 아니었다. 그러나 분명한 방향성을 가진 파동이 사방에 던져졌다. 이게 맞다. 아니, 저게 맞다. 지금 가야 한다. 멈춰야 한다. 더 해야 한다. 그만둬야 한다. 그의 숨이 가빠졌다. 마음 안에서 수많은 기준이 동시에 일어섰다. 옳음과 옳음이 부딪혔다. 틀림과 틀림이 엉켰다. 무엇이 기준이고 무엇이 두려움인지 분간하기 어려워졌다.


바닥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서 형상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불꽃 같기도 하고 돌덩이 같기도 한 존재. 눈은 똑바로 그를 향하고 있었다. 그것은 달려오지도, 사라지지도 않았다. 다만 그가 섣불리 한쪽으로 기울지 못하게 중심을 흔들고 있었다.


해태. 그러나 그것은 이전에 만났던 동물들처럼 조용히 서 있지 않았다. 이번에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네가 세우려는 기준은 누구의 것인가. 네가 두려워하는 틀림은 어디서 왔는가.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 대답이 여러 개라서 입을 열 수 없었다.


그는 움찔했다. 아무것도 확실히 말할 수 없는 자신이 작게 느껴졌다. 그러나 동시에, 소용돌이 한가운데에서 이상하게도 발바닥의 감각은 살아있었다. 흔들리고 있었지만,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았다. 해태는 답을 주지 않았다. 대신 혼란을 더 또렷하게 만들어주었다. 질서가 깨지고, 감정이 섞이고, 기준이 흔들렸다. 그는 처음으로 알았다. 옳고 그름을 고르는 일이 아니라, 흔들리는 채로 서 있는 일이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었음을.


소용돌이는 서서히 잦아들었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았다.







이 온라인카지노북은 소설도 에세이도 아닌, 마음의 창에서 꺼내온 감각을 적어 내려간 기록입니다.

‘그 사람’을 따라가며 자신의 감각이 머무는 지점을 천천히 느껴보셔도 좋겠습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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