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사이
그는 그림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종이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창가 쪽으로 걸어가 빛에 비추어 보았다. 흰 면 위에 남은 선들이 이전보다 또렷하게 보였다. 빛이 스치는 각도에 따라 선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또렷해 보이던 부분이 흐려졌고, 흐려 보이던 자리가 도드라졌다. 그는 잠시 그 변화를 따라 눈을 움직였다. 하나로 보이던 형상이 빛과 그림자 사이에서 여러 겹으로 갈라졌다.
창밖의 소리가 안으로 스며들었다. 누군가 웃었고, 차가 지나갔고, 멀리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겹쳤다. 바람이 건물 사이를 비집고 흘렀다. 종이를 들고 있던 그의 손이 아주 조금 흔들렸다. 그 흔들림 속에서 선들은 서로 포개져 보였다. 안과 밖, 고요와 소란, 확신과 망설임이 한 장의 종이 위에서 뒤섞였다.
그는 알고 있었다. 경계를 세웠다고 해서 흔들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선이 생긴 자리에서 더 많은 것들이 부딪히기 시작한다는 것을. 지켜야 할 것이 생긴 순간, 외부의 기척은 더 또렷해진다. 빛은 종이를 통과했고, 창틀의 그림자가 그 위에 길게 드리워졌다. 그가 그린 선과 바깥의 그림자가 섞이면서 형상은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그의 안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벅찬 감이 남아 있었지만, 그 아래에는 설명할 수 없는 공허가 얇게 깔려 있었다. 잘해내고 싶다는 마음과 그냥 두고 싶다는 마음이 한 자리에 겹쳤다. 감정은 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았다. 서로 다른 물줄기가 한곳에 모여 소용돌이치는 것처럼, 여러 결이 동시에 스쳤다.
그는 그 혼합을 밀어내지 않았다. 정리하려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 어지러움이 살아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세상과 연결된다는 것은 단단해지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온도가 스며드는 일이라는 생각이 조용히 자리 잡았다.
종이 위의 코끼리가 빛에 따라 미묘하게 흔들려 보였다. 마치 경계 위에서 안과 밖을 동시에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그는 그 흔들림을 한동안 따라보았다. 무너지지 않으면서도 고정되지 않는 상태. 질서가 조금 흐트러진 자리에서, 또 다른 결이 천천히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 온라인카지노북은 소설도 에세이도 아닌, 마음의 창에서 꺼내온 감각을 적어 내려간 기록입니다.
‘그 사람’을 따라가며 자신의 감각이 머무는 지점을 천천히 느껴보셔도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