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생에서 퇴사준비생이 될 때까지
우리 부모님은 좋은 대학, 좋은 회사에 들어가라는 말을 하시는 분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직업에서 의미를 찾으라고,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하셨다. 덕분에 나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에 동감하며 지내오던 순수했던 내가 달라지기 시작한건 대학원을 마치고 다시 취업 준비생이 되었을 때였다. 그때부터 아마 나의 사상이 달라졌을 거다.
취업 준비생들 사이에는 꽤 명확한 성공의 기준이 있었다. 대기업, 높은 연봉, 정규직. 이름만 대면 아는 회사에 들어가서 오래 안정적으로 다니는 것. 그게 안정적인 삶으로 가는 가장 확실한 길처럼 여겨졌다. 그리고 나도 어느새 그 기준을 따르고 있었다.
한동안 대기업 취업에만 매달렸다. 어떤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보다 그 회사가 얼마나 유명한지가 먼저였다. 나와 잘 맞는 조직인지 따져보기도 전에 이름난 기업들의 채용 공고부터 뒤졌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기는 내 인생에서 기억에 강하게 각인될 정도로 암흑기였다. 내가 원하는 일과 남들이 좋다고 하는 온라인 게임 사이에서 우선순위가 뒤집혀 있었고, 당연히 지원 결과도 신통치 않았다. 자소서 글빨로 서류는 용케 잘 통과했지만 면접에서 떨어지기 일쑤였다. 회사마다 원하는 사람이 다른데, 나는 정작 내가 어떤 회사에서 잘할 수 있는 사람인지 충분히 고민하지 않았던 것이다. 요즘 말로 '핏'이 맞는가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번은 국내 최고의 기업으로 꼽히는 곳의 신입공채 임원 면접까지 올라간 적이 있었다.
면접관이 물었다.
"우리 회사에서 무엇을 얻고 싶습니까?"
내 대답은 이랬다.
"소속감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머리가 잠시 어떻게 됐었는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나 싶다. 그런데 웃긴 건, 그게 당시에는 꽤 진심이었다는 거다.
10년 전의 나는 회사에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자부심을 느끼고 싶었다. 그 안에서 인정받고, 충성스럽게 일하고, 내가 조직에 기여하고 있다는 감각을 보상으로 삼고 싶었다.
지금의 나와는 많이 다른 사상이다.
물론 이름만 대면 알만한 큰 회사에 들어가려던 이유가 그것뿐은 아니었다.
나는 언젠가 내 사업을 하고, 내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다. 회사 생활은 그때를 위한 준비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조직에서 배우고, 돈을 모으고, 전문성을 쌓는 시간. 내 머릿속에는 대략 10년쯤 경력을 쌓은 뒤 내꺼를 시작하겠다는 나름의 타임라인도 있었다.
유명한 회사의 이름이 나중에 나를 설명해줄 간판이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성공한 사업가의 소개에 붙는 '어디 출신'이라는 한 줄처럼. 내가 무엇을 할 줄 아는 사람인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간편하고 근사한 증명서 하나쯤 갖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나는 온라인 게임인으로 영원히 남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언젠가 나갈 생각으로 들어가려 했으면서, 한편으로는 그 안에서는 누구보다 인정받고 싶어 했다.
그런데 요즘은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안정적인 회사는
앞으로도 과연 안정적일까.
회사가 멀쩡해도 내가 속한 팀은 없어질 수 있다. 팀이 남아도 내가 하던 일이 바뀔 수 있고, 익숙하던 직업의 모양이 통째로 달라질 수도 있다.
나는 회사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막상 일을 시작하고 나서야 대기업보다 스타트업이 나와 잘 맞는다는 걸 알게 됐다.
스타트업은 사람이 적으니 한 명이 일당백을 해야 했다. 내 손을 거치지 않으면 진행되지 않는 일도 많았고, 내가 내린 결정이 실제 결과에 반영되는 속도도 빨랐다.
누군가에게는 그게 부담스러운 환경이겠지만, 나는 오히려 좋았다. 내 역할이 중요하다는 게 실감 났으니까.
없으면 안 되는 사람. 대체하기 어려운 사람. 내가 빠지면 일이 안 돌아가는 사람. 온라인 게임인한테는 거의 최고의 칭찬이지 않나. 일 잘해서 인정받고, 필요한 사람이 되고, 그렇게 내 자리를 단단하게 만들면 안전할 거라고 믿었다.
나는 브랜드 디자이너라는 내 직무를 좋아했고, 맡은 프로젝트마다 애착이 컸다. 그러다 보니 회사 자체까지 좋아졌다.
돌이켜보면 내가 다녔던 회사마다 회사를 거의 연애하듯 다녔던 것 같다. 내가 만든 것을 아끼고, 그 일을 함께하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회사가 잘되면 내 일처럼 진심으로 기뻐했다. 힘든 일이 생겨도 '지금은 내 것을 만들기 전에 거쳐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버텼다.
그렇게 마음을 쏟았으니 퇴사할 때마다 후유증도 컸다.
머리로는 회사와 내가 별개라는 걸 알면서도, 마음은 좀처럼 그렇게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날 팀이 없어졌다.
팀이 사라졌고 권고사직을 당했다. 당장 돈 걱정이 됐다. 결혼을 앞두고 있었으니 더 그랬다. 그런데 막상 가장 먼저 잃어버린 건 월급이 아니었던 것 같다. 한참 남아 있던 건 이 질문이었다.
"그럼 나는 이제 뭐지?"
조직도가 바뀌었을 뿐인데 나라는 사람까지 지워진 기분이었다. 어제까지 브랜드 디자이너였는데, 오늘은 나를 뭐라고 소개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됐다.
돌이켜보면 나는 '회사가 나를 필요로 한다'와 '내가 중요한 사람이다'를 같은 말로 여기고 있었다. 근데 둘은 다르더라. 회사는 내가 하는 일이 필요해서 나를 쓴다. 상황이 바뀌면 그 일이(그리고 내가) 필요 없어질 수도 있다. 그건 회사의 입장이다. 그 일을 해온 내 시간이나 감각, 나라는 사람의 값까지 같이 없어지는 건 아닌데, 그때의 나는 둘을 떼어놓을 줄 몰랐다.
심리학에는 '매터링(mattering)'이라는 개념이 있다. 1981년에 슬롯심리학자 로젠버그와 매컬로가 정리한 건데, 내가 누군가에게 중요하고 의미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는 감각을 말한다. (학계에서 쓰는 뜻과는 결이 좀 다를 수 있다. 나는 내 경험에 이 말을 갖다 붙여본 거다.)
AI 얘기로 넓혀보면 비슷한 일이 훨씬 큰 규모로 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국제노동기구(ILO)가 2025년 5월에 낸 보고서는 전 세계 일자리 네 개 중 하나가 생성형 AI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봤다. 다만 이건 이미 일자리가 사라졌다는 숫자가 아니라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고, 통째로 대체되기보다는 일하는 방식이 바뀔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직업은 남는다. 근데 그 안에서 내가 맡던 일이 달라지면, 이름이 같은 직업을 갖고 있어도 내가 '필요한 사람'이던 자리는 바뀔 수 있다. 그때 나까지 같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나는 팀이 없어지기 전부터 좀 불안한 사람이었다. 브랜딩팀이 가장 먼저 잘리는 부서라는 걸 여러 번 겪다 보니, 조직이 개편된다거나 하던 일을 다른 방식으로 처리한다는 얘기만 나와도 유난히 신경이 곤두섰다. 언젠가 내가 필요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런데 그 불안이 꼭 나쁜 일만 한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원래 나는 내가 한 일을 밖에 알리는(블로그를 쓰거나 아티클을 쓰거나) 사람이 아니었다. 회사에서 열심히 하면 됐지, 내 이름으로 뭘 남긴다는 생각은 별로 안 했다.
그러다 AI 얘기가 슬슬 돌기 시작했다. 지금처럼 다들 쓰던 때가 아니었고, 나도 이게 어디까지 갈지 몰랐다. IT 업계 종사자여서 개발자들과 소통할 일이 많았고, 마침 내가 또 코딩교육과 밀접한 회사들만 다녔던 탓에 그들을 통해서 새로운 정보를 빠르게 받을 수 있었다. 그 덕에 AI를 남들보다 빠른 시기에 접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처음 AI를 접했을 때 심상치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아는 일의 규칙이 꽤 바뀔 수도 있겠다. 그럼 나도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
미드저니에 한창 빠져있을 무렵, 회사에 다니면서 퇴근 후 온라인카지노에 글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미래를 정확히 맞혀서 움직인 건 아니다. 뭘 대비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냥 뭔가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보험을 하나 들어두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 회사 밖에서도 존재한다'는 증거를 조금씩 쌓아두는 보험. 회사로부터 버려지고 나서가 아니라 버려지기 전에 먼저 움직이게 했으니, 그 유기불안이 어쩌면 내 생존 본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온라인카지노북이 <어느 날 브랜드가 사람이 되었다>다. 연재를 마치고 나서 글을 인상 깊게 읽었다는 분에게 연락이 왔고, 그게 강의 출시로 이어졌다.
시간이 좀 지나서 그 일을 다시 보니 다르게 보였다. 내 두 번째 직업은 이력서를 넣어서 얻은 게 아니었다. 누구한테 뽑아달라고 부탁한 적도 없다. 내가 해온 생각을 남겨뒀을 뿐인데, 그걸 읽은 사람이 나를 찾아왔다. 구직 사이트가 아니라 과거의 내가 남겨둔 글에서 온 일이었다.
물론 글을 쓴다고 다 연락이 오는 건 아니다. 운도 따랐을 거고, 기록이 생활비를 벌어다 주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그때 처음 알았다. 회사 안의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와 별개로, 회사 밖에서 나를 발견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걸. 명함 없이도 내 콘텐츠가 나를 설명하고 있었다는 걸. 그게 생각보다 든든했다.
우리는 평생온라인 게임이 사라졌다는 말에는 꽤 익숙해졌다. 근데 평생직업도 없을 수 있다는 건 아직 낯설다. 디자이너는 평생 디자이너로, 개발자는 평생 개발자로 살아야 할까. 물론 한 분야를 깊이 파는 삶은 지금도 멋지고, 나도 그런 사람들을 존경한다. 다만 지금 하는 일이 나를 설명하는 유일한 말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 직업과 나를 같은 걸로 놓으면, 직업이 흔들릴 때 나까지 같이 흔들리니까.
그렇다고 직업을 자주 갈아타라는 말은 아니다. 요즘 내가 생각하는 '건설적인 피봇'은 그쪽이 아니다. 지금의 직함이 사라져도 나까지 같이 사라지지 않도록, 어디로 옮겨가도 가져갈 수 있는 걸 쌓아두는 쪽이다. 내가 쓴 글, 만든 작품, 공부한 흔적, 같이 일한 사람들과의 관계. 이런 건 회사 조직도에 들어가지 않는다.
예전의 나는 없어지지 않을 회사를 찾았다. 요즘의 나는 내가 있던 곳이 없어져도 나까지 없어지지 않을 것들을 쌓고 있다. 어쩌면 안정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 자리를 찾는 일이 아니라, 자리가 바뀌어도 나한테 남는 걸 늘려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글 하나. 작품 하나. 연구 하나. 누군가가 기억해주는 이름 하나.
[참고자료]
ILO·NASK (2025. 5.). Generative AI and Jobs: A Refined Global Index of Occupational Exposure. ILO Working Paper 140.
Rosenberg, M., & McCullough, B. C. (1981). Mattering: Inferred significance and mental health among adolescents. Research in Community and Mental Health, 2, 163–1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