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롬프트를 가르치다 인간을 연구하게 된 이유
AI를 가르치면서 가장 난감한 순간은 수강생이 어려운 질문을 할 때가 아니다. 지난주에 자신 있게 가르친 내용이 이번 주에 틀린 정보가 되어버렸을 때다.
심지어 이런 일도 있었다. 당시 이미지 생성과 편집 성능을 비교해 보고, 수강생들에게 제미나이 프로 구독을 추천했다. 내 작업 기준으로는 나노바나나가 더 유용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ChatGPT 이미지 기능이 대폭 업데이트됐다. 다음 수업에서 나는 지난번 추천을 정정해야 했다.
아니, 이럴 거면 구독 추천도 일기예보처럼 해야 하나.
오늘의 추천 모델.
내일은 바뀔 수 있음.
웃프게도 실제로 겪은 일이다.
처음부터 이런 고민을 했던 건 아니다. AI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저 재미있었다. 그동안 머릿속에만 담아두었던 이미지를 새로운 방식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내가 취미로 시작한 지식이 돈을 받고 배울 만한 것이 된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했다. 그때부터 어쩌면 내가 회사 밖에 남긴 흔적들이 새로운 일을 데려올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처음에는 내가 겪은 시행착오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어떤 프롬프트를 쓰면 원하는 이미지를 얻을 수 있는지, 이미지의 일부를 수정하려면 어떤 순서로 접근해야 하는지, 브랜드의 톤앤매너를 유지하려면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나도 수없이 실패하면서 배운 것들이었다.
문제는 그 시행착오가 너무 금방 낡은 것이 되어버린다는 것.
AI 콘텐츠 디자인과 브랜딩 강의를 VOD로 제작하면서 예상하지 못한 문제를 발견했다. 촬영할 때만 해도 분명 최신 정보였는데, 영상을 편집하고 출시를 준비하는 사이 새로운 기능이 나오는 것이다. 강의에서 한참 설명했던 인터페이스가 어느새 달라져있기도 했다. 수강생에게 돈을 받고 제공하는 강의인데, 출시하기도 전에 내용이 낡아간다니. 이건 좀 곤란했다.
그래서 차라리 현장 강의가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때그때 달라진 내용을 알려주면 되니까. 하지만 현장 강의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난주에 설명했던 기능이 이번 주에 달라져 있었고, 내가 직접 찾아낸 문제 해결법이 다음 주에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기도 했다. 특정 모델이 가장 좋다고 추천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모델을 추천해야 하는 일도 생겼다. 이 쯤 되니 AI 강의에도 유통기한을 표시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이 바닥에는 영원한 1등이 없었다. 왕좌에서 숨좀 돌릴라 치면 벌써 다음 모델이 의자를 빼고 있었다.
업데이트는 당연히 따라가야 한다. 새로운 기능을 직접 써보고, 어떤 작업에 적합한지 비교하고, 이전에는 안 되던 일이 이제 되는지 확인하는 과정은 여전히 재미있다. 지금도 내 작업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다만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가르치는 것 중에서 다음 업데이트가 나와도 여전히 유효한 것은 무엇일까?
AI 기술 업데이트에 종속되지 않는
변하지 않는 가치는 무엇일까?
더 좋은 프롬프트 구조, 더 효율적인 작업 순서, 더 정확한 수정 방법. 물론 이런 것들은 중요하다. 지금 당장 작업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특히 그렇다. 하지만 수업을 하다 보니 기술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차이가 눈에 들어왔다.
같은 도구를 알려줘도
사람마다 전혀 다른 결과물을 만들었다.
어떤 사람은 AI가 처음 내놓은 결과에 만족했고, 어떤 사람은 열 번을 고쳐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프롬프트를 능숙하게 작성하면서도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 정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도구에는 서툴지만 만들고 싶은 것이 분명한 사람도 있었다.
그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 취향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사람은 왜 어떤 이미지를 보고 좋다고 느낄까. 무엇이 창작자에게 자기 것이라는 감각을 줄까.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그래서 내 관심은 조금씩 넓어졌다. 이제는 인간의 판단과 창의성, 심리학과 인지과학, 행동을 함께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결국 인공지능도 인간을 빼닮아가는 것이니, 그걸 잘 하기 위해선 인간을 들여다보는 것을 빼놓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프롬프트를 잘 쓰는 방법이 궁금했는데, 이제는 사람들이 왜 그런 질문을 하고, 왜 비슷한 답을 선택하고, 어떻게해야 창의적인 답변을 뽑아낼 수 있는지가 더 궁금해졌다.
요즘은 이런 변화들을 기록하고 연결하는 작업도 하고 있다. 이미지 생성 업계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거시적인 흐름을 관찰하고 있다. 그 변화들을 추적하며 나름의 전망을 정리하는 'AI 스위프트 맵'도 만들고 있다.
여기서 하나 스포하자면, 나는 머지않아 프롬프트 작성법조차 크게 중요하지 않아지는 시대가 올 거라고 예상한다. 몇 년 전만 해도 AI가 알아들을 만한 단어를 골라 정교하게 조합해야 했다. 그런데 지금은 일상적인 말로 설명해도 제법 그럴듯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계속 이 흐름으로 고도화 될 것이다.
그런데 정작 나는 요즘 프롬프팅 연구에 더 빠져 있다. 조금 모순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다. 다만 관심사가 예전과는 달라졌다. 과거에는 AI가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듣게 만드는 데 집중했다면, 요즘은 AI에게 얼마나 색다른 발상을 끌어낼 수 있을지가 더 궁금하다.
가령 누구나 그럴듯한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면, 어떻게 해야 남들과 비슷한 결과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익숙한 답을 내놓는 AI에게 어떻게 낯선 관점을 제안할 수 있을까. 인간이 오랫동안 연구해 온 창의적 사고법을 AI와의 작업에 적용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사실 이런 궁금증 때문에 아이디어 발상법에 관한 바카라을 100권 넘게 모았다. 디자인을 하면서 익힌 방법론부터 창의성 연구, 서로 무관한 개념을 연결하는 사고법까지. 요즘은 이 방법들을 프롬프팅에 적용하고 직접 실험하는 재미에 빠져 있다. 잘 먹히는 방법도 있고, 생각보다 별 효과가 없는 방법도 있다. 그 결과들을 정리하다 보니 노션이 터져나갈 지경이다.
내가 지향하는 건 어쩌면 '인문학적 프롬프팅' 또는 '창의적 프롬프팅'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아직 정확한 이름을 붙이진 못했지만, 기술적인 명령어를 잘 조합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인간의 사고방식과 창의성을 AI 활용에 접목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세상에 뿌리고 싶다. 나는 인간의 창의성을 AI가 증폭시켜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그 수혜를 경험하기도 했기에 그 경험을 방법론화 해서 모두와 공유하고 싶다.
그동안 쌓아둔 실험과 연구 결과들은 앞으로 온라인카지노와 SNS를 통해 하나씩 풀어볼 생각이다. 그리고 바카라으로도 출판할 계획을 갖고 있다. AI 특유의 뻔한 결과에서 벗어나는 방법, 창의적 발상법을 활용한 프롬프팅, 이미지 생성 기술의 변화와 그다음에 올 것들까지. 혼자 재미있어하며 모아둔 자료가 꽤 많다.
사실 이걸 언제 다 정리해서 공개할 수 있을지가 더 큰 문제다. 공부하고 실험하는 속도보다 궁금한 게 생기는 속도가 더 빠르다. 노션에 쌓아둔 자료는 계속 늘어나고, 새로운 AI 모델은 또 나온다.
아무래도 당분간 심심할 일은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