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앞두고 온라인 게임을 잃었다

유기 불안이 현실이 될 때

by엘리사

신혼집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며칠 뒤, 우리 브랜딩팀이 해체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타이밍 한번 기가 막혔다.


그 집을 고른 이유가 회사였다. 오래 다닐 생각으로 일부러 회사 근처에 구한 집이었다. 그런데 정작 나는 그 회사에 더 이상 출근하지 않게 됐다. 남편은 남편대로 원래 본사에서 일하다가 1년 동안은 다른 지역으로 출근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그러니까 회사 안 다니는 사람은 회사 근처에 살고, 회사가 먼 사람은 거기서 매일 출퇴근하는 이상한 신혼이 시작된 거다.



온라인 게임만 흔들린 게 아니었다. 결혼 이후에 그려둔 그림도 같이 방향을 잃었다.


그 회사에 들어갈 때 제일 꼼꼼히 따져본 게 모성보호 복지였다. 연봉이나 직급보다 먼저 그걸 봤다. 결혼하고도 계속 일하고 싶었고, 아이가 생기면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쓰면서 경력을 끊기지 않게 이어가고 싶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나이가 마음에 걸렸다.


30대 중반, 결혼을 앞둔 여자. 이력서에는 안 쓰여 있어도 면접관 머릿속에는 아마 비슷한 계산이 지나가지 않을까. 곧 임신하겠네, 그럼 휴직하겠네. 누가 대놓고 말하진 않겠지만, 기업들이 그다지 반길 것 같지는 않았다. 출산이랑 이직 시기가 겹치기라도 하면, 다시 회사에 들어가는 문은 지금보다 훨씬 좁아질 것 같았다.


그래서 이 회사는 나한테 그냥 다음 온라인 게임이 아니었다. 마지막 회사였다.


여기서 나가면 그다음은 무조건 창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전까지 최대한 오래 머물 곳이 필요했다. 아이를 낳고 돌아와도 내 자리가 있는 곳. 여기서 경험을 다 쌓고, 내가 정말 준비가 됐다 싶을 때, 그때 내 발로 걸어 나가면 되는 곳.


그렇게 고르고 골라서 들어간 회사였다. 여기라면 좀 오래 있어도 되겠다, 그렇게 믿었다.



무엇보다 팀이 좋았다.

나는 속으로 우리 팀을 어벤저스라고 불렀다. 팀장님을 중심으로 브랜드 마케터, 기획자, 에디터, 디자이너가 한 명씩. 다들 자기 분야에서 기획부터 실행까지 혼자서도 바카라임질 수 있는 시니어였고, 나는 디자인을 맡았다. 누가 누구 빈틈을 메우다 하루가 끝나는 팀이 아니라, 서로의 전문성을 믿고 같이 일을 만드는 팀. 일하는 게 재밌었다. 회사를 몇 군데 다녀본 사람이라면 알 거다. 이런 팀, 생각보다 잘 못 만난다.


그런 팀을 만나기 전까지,

세 번의 이직을 거치면서, 브랜드 디자이너로 일하는 내내 따라다니던 감정이 하나 있었다.


유기불안

스타트업에서 브랜드 디자이너는 처음부터 끝까지 필요한 사람일까. 초반에는 분명 필요하다. 회사가 어떤 얼굴로 세상에 나갈지 정해야 하고, 로고부터 디자인 시스템까지 만들 게 산더미니까. 그런데 시스템이 어느 정도 갖춰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걸 굴리는 사람들이 생기고, 마케터가 내가 만든 디자인 자산으로 직접 이미지를 만들기 시작한다. 회사는 더 빠른 실행을 원하고, 나도 어느새 마케팅 지원을 같이 하고 있다.


그것도 중요한 일인 건 안다. 다만 내가 하고 싶던 브랜딩과 회사가 당장 필요로 하는 일이 조금씩 멀어지는 게 느껴졌다. 회사에 여유가 있을 땐 긴 호흡의 브랜딩을 얘기할 수 있지만, 사정이 어려워지면 매출과 생존이 먼저다. 나한테 브랜딩은 미래에 대한 투자인데, 회사 입장에선 당장 감당하기 버거운 비용일 수도 있다.


실제로 내가 나온 뒤에 브랜드 디자이너를 다시 뽑지 않는 회사를 몇 번 봤다. 처음엔 꼭 필요하다던 자리가 어느 순간 조직도에서 조용히 지워지는 걸. 그래서 새 회사에 들어갈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늘 좀 불안했다.


그런데 이 회사의 면접을 보기 전 커피챗 때, 브랜드 마케터 한 분이 이런 말을 했다.


"저는 늘 유기불안이 있었거든요. 브랜딩 하는 사람이면 공감하잖아요. 팀 없어지고, 직무 없어지고, 브랜딩 할 수 없게 되고.. 근데 전 여기 와서 그게 없어졌어요."


팀원들이 좋고, 회사도 브랜딩을 진지하게 생각한다는 얘기였다. 그 말이 크게 와닿았다. 나도 딱 그렇게 느끼고 있었으니까. 여기서라면 오래 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좋아하는 브랜딩을 제대로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AI가 디자이너를 대체한다는 얘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속으로 먼저 나온 말은 이거였다.


에이.. 또요?

디자이너 자리가 위태롭다는 얘기는 처음이 아니었다. 이쯤 되면 별로 놀랍지도 않다. 디자인 툴이 쉬워졌을 때도, 템플릿이 흔해졌을 때도, 마케터들이 피그마로 직접 디자인하기 시작했을 때도 비슷한 말을 들었다. 그때마다 디자인의 문턱은 조금씩 낮아졌고, AI는 그 속도를 확 올릴 것처럼 보였다.


웃긴 건 정작 회사에서 AI를 제일 잘 쓰는 사람 중 하나가 나였다는 거다. 2023년부터 생성형 AI를 이것저것 만져보고 있었고, 그 무렵엔 AI 강의도 론칭했던 참이었다. 동료들이 쓰는 법을 물어오면 알려주고, 업무용 챗봇을 만들어서 나눠 쓰기도 했다. 새 도구가 나오면 일단 만져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라.


그래서 이 도구들이 어떤 일을 바꿔놓을지도 대충은 짐작하고 있었다. 회사가 늘 최고 완성도의 디자인을 원하는 건 아니다. 때로는 지금 당장 내보낼 수 있는 결과물이 더 급하다. 퀄리티를 조금 내려놓더라도 빨리 만들고 빨리 반응을 보는 게 사업엔 나을 때가 있다. AI가 가장 먼저 바꿀 건 그런 영역일 거라고, 강의에서도 그렇게 말하곤 했다.


그런데 그 얘기를 하던 내가 속한 브랜딩팀이 없어졌다.


분명히 해두자면, 회사가 강제로 우리 팀을 정리한 건 아니었다. 당시의 회사 사정상 조직을 조정해야 했다. 대표님과 면담을 했고, 위로금을 포함한 조건에 합의해서 권고사직으로 나왔다. 왜 그런 결정을 해야 했는지는 이해했다.


그래도 마음 한쪽에서는 이런 생각이 스쳤다. 강의실에서 남 얘기처럼 하던 그 변화가, 결국 나한테도 왔구나.


사실 제일 아팠던 건 일자리를 잃은 게 아니었다.


우리 팀은 그때 꽤 오래 공들인 프로젝트를 내놓으려고 달려가던 중이었다. 기획하고, 다듬고, 갈아엎고, 또 다듬으면서 정이 잔뜩 든 일이었다. 드디어 우리 팀이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이제야 브랜딩팀이 뭘 할 수 있는지 보여줄 수 있겠다고.


그 프로젝트는 결국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나는 그게 제일 슬펐다. 온라인 게임을 잃은 것보다, 우리가 같이 만든 걸 끝까지 보여주지 못했다는 게 훨씬 오래 남았다. 그렇게 재밌게 일하던 사람들이 모여서 이제 막 제대로 해보려던 일이, 시작도 못 하고 사라졌으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퇴사하고 나서 마음이 온통 무너지진 않았다.


나는 원래 언젠가 회사를 그만둘 사람이었으니까. 첫 온라인 게임에 들어갈 때부터 마음 한구석엔 언젠가 내 일을 하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회사에서 쌓는 경험도, 배우는 기술도, 만나는 사람들도 다 언젠가 내 브랜드를 만들기 위한 과정이라고 여겼다. 혼자 정한 도제 생활 같은 거랄까.


그래서 회사 밖에서도 계속 뭔가를 만들었다. AI로 작품을 만들고, 전시를 하고, 글을 쓰고, 강의를 했다.


남들이 인스타그램에 포트폴리오를 올릴 때 나는 이상하게 글이 좋았다. 그래서 웃기게도 온라인카지노가 나의 주요 SNS가 됐다. 나는 이미지의 화려함 보다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사람들이 들여다봐 줬으면 했다.


그게 당장 큰돈이 되진 않았다. 그래도 회사 밖에 내 흔적이 조금씩 쌓이고 있다는 감각은 꽤 든든했다. 디자인이라는 직업을 잃어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거 하나는 아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어쩌면 나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냥 계속 뭔가를 창작하는 사람이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바로 독립을 결심한 건 아니다. 면접 제안도 받았고, 직접 지원해서 면접을 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럴수록 다시 온라인 게임인으로 남고 싶은 마음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남편은 내 편이었다. 내 실력을 믿는다고, 뭐든 해낼 거라고 말해줬다. 그 말이 생각보다 큰 힘이 됐다.





오래전부터 회사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정작 그 문을 연 건 내가 아니었다. 회사가 먼저 열었다. 안녕히 가시라고.


나는 생각보다 조금 일찍, 그 문 밖으로 밀려 나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솔직히 마음이 편했던 건 아니다. 결혼하고 아이를 갖고, 그동안 어떻게 일을 이어갈지까지 다 그려뒀던 그림이 한꺼번에 흐트러졌으니까. 가족계획을 다시 짜야한다는 게 생각보다 큰 스트레스였다.


의외로 먹고사는 걱정은 별로 안 됐다. 솔직히 오기도 생겼다. 어디 한번 해보자, 그런 마음. 앞으로 일을 어떻게 이어갈지, 커리어가 끊기는 건 아닌지, 그런 불안이 거의 없었다. 나도 내가 왜 이러나 싶을 만큼. 그때의 나는 꽤 자신만만했다. 뭘 해도 어떻게든 될 거라고 믿었다.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세상이 만만하지 않다는 걸 조금 더 안다. 그래도 그때의 그 근거 없는 자신감이 없었다면, 아마 그 문 밖에서 한참을 서성였을 거다.


인생의 방향이 바뀌는 순간은 아마 이렇게 오나 보다.

하나를 제대로 끝내기도 전에, 떠밀리듯 다음 페이지가 넘어가는 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