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가지고 불안을 팔지 마세요
새로운 AI 모델이 나올 때마다 어김없이 사라질거라고 거론되는 직업들이 있다.
"개발자 이제 필요 없겠네."
"영상 편집자들 어떡하냐."
"디자이너 끝났다."
심판대에 오르는 직업군은 다양하다. 여기에는 회계사, 변호사, 약사 등 전문직군 마저도 예외 없다. AI 기술에 감탄하는 건 이해한다. 그런데 왜 기술의 발전을 축하하는 자리에 꼭 누군가의 직업을 갖다 바쳐야 할까.
물론 영원한 직업은 없다. 비싸게 팔리던 기술이 흔해질 수도 있고, 그런 변화는 이미 인류의 역사 속에서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남들은 그냥 지나치는 오류를 먼저 보는 눈, 말로 다 설명하기 어려운 노하우, 틀려본 사람만 아는 감각은 시간이 만든다. 그 시간이 발표 한 번에 통째로 무효 처리되는 것처럼 말하는 건 솔직히 좀 싫다. (그렇다고 시간을 들였으니 앞으로도 같은 일을 같은 값에 할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건 나도 모른다.)
그런데 요즘 AI 이야기는 이 불안을 꽤 능숙하게 판다.
"이거 모르면 뒤쳐집니다."
"지금 안 배우면 늦습니다."
"이 직업은 곧 사라집니다."
지난주에 나온 모델을 겨우 익혔더니 이번 주에 또 나왔고, 이번 건 역대급이란다. 지난주 것도 역대급이었는데. 이쯤 되면 세상에 역대급이 너무 많다.
그래, 대단한 건 알겠어.
그래서 이게 내 월요일을 어떻게 바꾸는데?
더 신경 쓰이는 건 거기에 같이 휩쓸리는 분위기다. 새 모델이 나올 때마다 놀라고, 너도나도 폭죽을 터뜨리며 현혹한다.
감탄은 하되 내 일에 쓸 수 있는지는 천천히 따져봐도 늦지 않다. 나에게 쓸모없는 기능이라면 굳이 배우지 않아도 된다. 지금 하는 일을 잘 해내는 데 필요한 도구가 있다면 그것부터 제대로 쓰면 된다.
소신 발언 하나 하고싶다.
다 배울 필요 없다.
잘 고르면 된다.
따라가지 못해서 불안한 사람도 많을 거다. 그런 사람에게 필요한 건 정보가 더 쌓이는 게 아니라, 이건 무시해도 되고 이건 챙기면 된다는 기준 같은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AI를 안 쓴다고 해서 뒤처진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당장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것부터 내 속도대로 가져가면 된다.
여기까지 읽으면 내가 AI에 반대하는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반대다.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 AI가 밤새 올려둔 보고서부터 확인하는 사람이다. 이불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AI를 놓치고 싶진 않지만, AI에 끌려다니고 싶지도 않다. 다만, 나는 사람들이 AI를 덜 무섭게, 더 쓸모 있게 만나길 바란다.
그리고 오래 자기 일을 해온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동안 쌓아온 전문성을 버려야 하는 시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일이 바뀌고 쓰는 도구가 바뀌는 건 맞겠지만, 오히려 오랫동안 쌓아온 능력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써먹을 기회가 생긴 것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AI가 우리에게 줘야 하는 것도 ‘이제 나도 전문가급’이라는 착각보다는, 서툴러도 마음껏 실패해볼 용기 쪽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그동안 쏟아온 시간과 노력을 너무 쉽게 낡은 것으로 취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이 하는 말에도, 내 불안이 하는 말에도.
나는 이렇게 AI로 사람 겁주는 분위기에는 다소 예민해진다. 아마 내가 겁먹기 딱 좋은 자리에 있었기 때문일 거다.
나는 디자이너였다. 그리고 한동안은, 내가 하는 일이 언제까지 필요할지 확신하지 못했다.
나는 AI가 내 직업을 없앨 줄 알았다.
AI가 내 직업을 없앨거라 생각했는데, 이야기는 생각보다 조금 더 복잡하게 흘러갔다.
To be continued..